[TREND]


인생의 오후가 행복하려면 돈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해피 에이징’ 액티브 시니어로 사는 법
[한경비즈니스 칼럼=윤영걸 드림업컨설팅 원장] 2020년 추석 연휴 때 TV에 방영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큰 여운을 던졌다. 러닝셔츠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등장한 73세의 가수가 직접 북을 치며 노래하고 와이어를 타고 공중에 매달리는 퍼포먼스까지 2시간 40분의 공연이 마치 2분 40초처럼 눈을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공연 중간에 내놓는 특유의 사투리 섞인 진솔한 멘트는 인생 선배로서 절절한 교훈을 던졌다. “이왕 가는 거 끌려가면 안 돼요. 우리가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가야 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 끌려가는 거고 안 하던 일을 해야 세월이 늦게 갑니다.” 그는 은퇴할 시기를 선택하려고 고심 중이라고도 했다. 떠밀리듯 은퇴하지 않고 자기 주도적으로 시기와 장소를 골라 가수 생활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얘기다. 공연을 보며 나훈아는 ‘액티브 시니어(활동적 장년)’의 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세월을 보고 한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삶을 이끌어 가려는 자세가 돋보였다.


액티브 시니어는 보통 50~64세를 중·장년층, 65세 이상을 고령층으로 구분하는데 액티브 시니어는 65~80세까지 초기 고령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액티브 시니어의 가장 큰 특징은 ‘행복하게 나이 들기(happy aging)’다. 자신감 넘치는 활동적인 삶을 통해 행복한 후반 인생을 추구한다. 이들은 넉넉한 자산과 소득을 바탕으로 이전 고령층과 달리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삶을 소중히 여기며 즐긴다.


재(財)테크가 아닌 산(産)테크의 시대

액티브 시니어의 기본 요건은 넉넉한 노후 자금과 건강이다. CJ E&M이 내놓은 알파시니어 라이프스타일 보고서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의 관심사 1위는 금융 재테크(46%), 2위는 운동 건강 관리(44%), 3위는 여행(31%), 4위는 은퇴 노후 관리(27%), 5위는 자녀(24%) 등으로 나타났다. 금융 재테크가 가장 소중하게 꼽히는 이유는 자명하다. 생물학적인 수명은 길어졌는데 자산 수명은 이에 따르지 못하는 불일치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가 도래했는 데도 불구하고 80세 이전에 보유 자산이 고갈된다면 노후 인생이 엄청 꼬이게 된다.


더구나 2020년 1월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자산 시장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고 있다. 제로에 가까운 저금리로 이자 수입은 기대하기 어렵고 쏠쏠한 수입을 올려주던 부동산 임대 수입은 세금 폭탄으로 골칫거리가 됐다. 웬만큼 저축액이 많지 않다면 길고긴 노년의 터널을 제대로 통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돈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이제 재(財)테크가 아니라 산(産)테크가 중요해졌다. 재산(財産)이라는 한자를 보면 재물 재(財), 생산 산(産)으로 나뉘어 있다. 재산은 재물과 소득이 둘 다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재물을 불리고 쌓아 올리는 저장(stock) 개념의 재테크만 생각해 왔다. 수백억 재산을 가진 부자들 중에는 제대로 돈을 쓰지 못하는 ‘부자 거지’들이 의외로 많다. 돈을 벌기도 힘들지만 지출은 더 어렵다. 하나같이 재산이 줄어드는 느낌이 고통스러워 돈을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물탱크(재산) 크기는 눈에 보이지 않고 물이 새는 것(지출)만 보이는 게 인간의 한계인 것 같다. 이제는 모아 놓은 재물이 적어도 평생 옹달샘처럼 물이 솟는 흐름(flow)을 창출하는 개념으로 바꿔 생각해야 한다.


노후 재무 목표를 ‘퇴직 공무원처럼 연금 받자’로 정하면 어떨까. ‘국민연금+알파’가 되도록 추가로 연금 상품에 가입해 수령액을 늘리자는 얘기다. ‘국민-퇴직-개인’으로 이어지는 연금의 3층 보장은 은퇴 설계의 기본이다. 눈치 빠른 중산층 주부들이 국민연금에 자발적으로 납입(임의가입)하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지급을 보장하고 물가 상승률에 연동해 사망할 때까지 지급된다. 하지만 단점은 수령액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한 62~64세의 최고 액수가 월 150만~180만원 안팎이니 노후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분을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으로 채우자는 얘기다.


개인연금은 경제 활동이 활발할 때 벌어들이는 수입을 가장 안전하게 노후까지 이어 갈 수 있는 상품이다. 복리 효과를 갉아먹는 주범은 세금인데 개인연금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장기 투자에 유리하다. 특히 생명보험회사의 개인연금에 가입하면 부부가 모두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장수 시대에 이만한 금융 상품을 찾기 어렵다. 사는 집을 담보로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주택연금도 권하고 싶다.


인생 3모작, 4모작을 당장 준비하라

노후에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갑자기 닥치는 질병이다. 보험은 인생의 고비마다 찾아오는 위험 회피에 유용하다. 한겨울 등반에 필요한 아이젠이라고 할까. 운동화를 신고도 겨울 산을 오를 수 있지만 아이젠이 있으면 잘 미끄러지지도 않고 넘어져도 다칠 위험이 적다. 절세와 상속에 유리한 종신보험의 주목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섣부른 예측은 부질없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세상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 졸업 후 20~30년간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 저축한 돈으로 소소하게 노년을 즐기는 모습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교육-일-퇴직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3단계의 삶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라톤 인생을 사는 동안 최소 2~3개 이상의 직업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은퇴 혹은 정년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70세 혹은 80세까지 일을 해야 한다. 지금 나이가 몇 살이든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은퇴를 최대한 늦추거나 아예 은퇴하지 말고 오랫동안 일할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인생 2모작이 아니라 3모작 4모작을 위해 당장 준비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보유 자산을 어떻게 운용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복리 효과를 충분히 누리려면 일찍부터 노후에 대비한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아는 만큼 믿어야 하고 믿는 만큼 투자해야 하는 시대다.


수명 100세 시대가 코앞에 왔다. 죽음으로 건너는 강나루가 멀어질수록 삶이 올라야 할 산은 더욱 가파르고 길다. 미국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는 ‘두 번째 산’이라는 책에서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첫째 산에서 우리는 정해진 인생 과업을 수행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재능을 연마하고 자신의 족적을 세상에 남기려고 노력하는 일 등이다. 첫째 산이 쟁취하는 것이라면 둘째 산은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 첫째 산은 정복하는 것이라면 둘째 산은 산이 나를 정복하도록 허락한다. 둘째 산에서는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이웃과 친밀하며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미국 인지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대니얼 J 레비틴은 ‘석세스 에이징(Sucess Aging)’이라는 책에서 노년을 인생 최고의 시기로 만들려면 코치(COACH) 정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호기심(Curiocity), 개방성(Openness), 관계성(Associations), 성실성(Consciousness), 건강한 습관(Healthy practies) 등 5가지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개방적인 태도 그리고 가족 이웃 친구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성실함과 건강한 생활 습관은 멋지게 나이 들어 가는 훌륭한 수단이다.


인생 후반기에는 두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 하나는 돈 문제이고 또 하나는 외로움이라는 강이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100세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행복과 불행은 결국 총감독인 자기 자신에 달렸다. 70세, 80세, 100세가 된 당신이 지금 이 순간의 당신에게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제대로 예측하고 준비한다면 장수는 저주가 아니라 선물이고 축복이다. 주체적으로 제2, 제3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인생이란 여행길에서 이제 공짜 점심은 없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6호(2020.12.07 ~ 2020.12.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