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SK텔레콤·엔씨, 미래 사업 위해 수십 년 사용한 사명 변경 추진
-새로운 사명 통해 체질 전환·사업 확장 목표
기아는 ‘차’ 떼고 SKT는 ‘통신’ 버리고…주력 사업 지우기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기업들이 사명(社名)에서 주력 사업 지우기에 한창이다. 자동차 제조업을 영위하는 기아차는 ‘자동차’를 떼고 통신 사업이 주력인 SK텔레콤은 ‘텔레콤’을 떼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들이 수십 년간 사용해온 사명을 변경하려는 이유는 기존 사명이 기업의 미래 방향성을 담지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과 사업 다각화를 통해 미래 신사업 비중을 높이고 있다. 기업 간 합종연횡, 이종산업과의 융합이 가속화하는 시대에 특정 이미지로 고착화된 기존 사명으로는 사업 확장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기아·SK텔레콤, 미래 신사업 위한 체질 전환

기아자동차는 사명에서 ‘자동차’를 빼고 ‘기아(KIA)’로 변경한다. 송호성 기아차 사장은 2021년 1월 5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신년 메시지를 통해 “사명과 기업 이미지(CI)를 포함한 모든 브랜드 자산의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도시 내 교통 및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클린 모빌리티 기아(CLEAN MOBILITY KIA)를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는 최근 서울 양재동 사옥의 엠블럼도 ‘기아 모터스(KIA MOTORS)’에서 ‘기아(KIA)’로 교체했다. 1990년 기아산업에서 기아자동차로 이름을 변경한 후 30여 년 만이다. 새로운 CI는 1월 6일 공개할 예정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에 머무르지 않고 모빌리티(이동수단) 전반을 아우르는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정 회장은 2019년 임직원 타운홀 미팅에서 “미래 우리의 매출 비중은 자동차가 50%, 나머지 30%는 개인용 비행체(PAV), 20%는 로보틱스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커넥티드카,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UAM), 로보틱스 등 미래 모빌리티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도 ‘현대 모빌리티’ 등으로 미래 사업 방향성을 담은 이름으로 사명을 변경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기아는 ‘차’ 떼고 SKT는 ‘통신’ 버리고…주력 사업 지우기
인공지능(AI) 빅테크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탈(脫)통신에 속도를 높이고 있는 SK텔레콤도 사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으나 ‘초협력’이라는 의미를 담은 ‘SK하이퍼커넥터’, ‘T 스퀘어’, ‘SK투모로우’, ‘SK테크놀로지’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사명 변경을 통해 주력 사업인 통신 서비스의 영역을 뛰어넘어 AI 관련 사업을 총괄하는 빅테크 기업으로 진화하는 체질 개선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SK하이닉스 부회장은 2020년 1월 열린 ‘CES 2020’에서 “기업 정체성에 걸맞은 사명 변경을 고민할 때가 됐다”며 “이동통신(MNO) 사업 매출이 전체의 50% 미만으로 가게 되면 텔레콤보다는 하이퍼커넥터(초연결) 의미를 담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명 변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최 회장은 2019년 경기 이천포럼에서 “기업 이름에 에너지, 화학 등이 들어가면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며 “과거엔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적 가치와 맞지 않을 수 있고, 환경에 피해를 주는 기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아는 ‘차’ 떼고 SKT는 ‘통신’ 버리고…주력 사업 지우기


◆ 엔씨, 게임사업 넘어 금융·엔터테인먼트 분야로 다각화

게임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가 사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9월 ‘엔씨’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상호 변경을 위한 가등기를 올렸다. 엔씨소프트는 앞서 2020년 1월 CI(기업 이미지) 변경을 통해 기존 ‘엔씨소프트(NCSOFT)’에서 ‘소프트(SOFT)’를 빼고 ‘엔씨(NC)’만 있는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대표의 아내인 윤송이 엔씨소프트 최고전략책임자(CSO)의 주도 아래 리브랜딩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게임사업을 넘어 금융과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AI 사업은 윤 CSO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2011년부터 AI 연구를 시작해 현재 AI 센터와 NLP 센터 산하에 5개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전문 연구인력은 200명에 달한다. AI 연구성과를 활용해 최근 금융과 미디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2020년 10월 KB증권, 디셈버앤컴퍼니와 손잡고 ‘AI 간편투자 증권사’를 위한 합작법인(JV)을 출범했다. 디셈버앤컴퍼니는 AI 자산 관리(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핀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김 대표가 최대주주, 윤 CSO가 2대주주다. 엔씨소프트는 2020년 8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전담하는 자회사 ‘클렙(KLAP)’을 세우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엔씨소프트는 CJ ENM과도 연내 합작법인을 설립해 콘텐츠와 IT를 융합한 다양한 콘텐츠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그룹)은 최근 사명을 ‘한국앤컴퍼니’로 변경했다. 새로운 사명에는 전략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미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지속 성장을 실현해 나가겠다는 그룹의 장기적 비전과 의지가 담겼다. 또한 기업 브랜드인 ‘한국(HANKOOK)’을 사명에 반영해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고 통합 브랜드 체계를 갖춰 비즈니스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명 변경은 이름이 유사한 중소기업과 상호명을 둘러싼 소송을 진행 중인 데에 따른 것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3세 경영 체제를 본격화하면서 첨단기술 기반의 혁신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019년 5월 주력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와 지주회사인 한국타이어앤월드와이드의 사명을 각각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변경한 바 있다. 2019년 11월 코스닥 상장사 한국테크놀로지가 이름이 유사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상대로 상표권 침해를 주장하며 상호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양 사는 법적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0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