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서영의 명품 이야기-루이 비통⑤]


펑크·팝 예술가와 협업, 보수 이미지 변신…“전통 지키면서 끊임없는 재탄생, 루이 비통 힘 원천”
[명품 이야기]루이 비통의 의류 진출…마크 제이콥스, 전통에 혁신 입혀 대성공
[명품 이야기]루이 비통의 의류 진출…마크 제이콥스, 전통에 혁신 입혀 대성공
[한경비즈니스 칼럼=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루이 비통과 모에 헤네시가 합병해 탄생한 LVMH그룹을 이끌게 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1997년 루이 비통의 브랜드 다각화에 나섰다. 가방 위주에서 벗어나 패션 산업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루이 비통 역사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였다.


아르노 회장은 이 변화를 전사적으로 준비했다. 패션산업 진출은 루이 비통으로선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자칫 역사적 전통과의 단절은 위기를 부를 수 있는 모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루이 비통의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패션업에 잘 스며들었다. 루이 비통이라는 전통과 조화를 잘 이루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됐다. 특유의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창작품들이 만들어졌다. 가죽 제품 전문 브랜드인 루이 비통의 역사는 한층 더 빛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 루이 비통에 영입돼 일한 패션 경영자 장 마크 루비에는 “패션업계로 발을 넓히려는 시도는 불가피했다”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패션업 진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루이 비통은 엄청난 이윤을 내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상태였지만 모노그램과 에피라인 등에서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며 “패션을 통한 신선한 감각과 경쾌한 느낌을 살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르노 회장이 패션업계에 진출할 때는 물론 고민도 있었다. 패션업의 특성상 시즌성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패션쇼 무대에 올릴 컬렉션들이 갖는 일시적·한시적 속성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명품에 걸맞은 작품들을 선보야 하는 게 업계의 숙명이라는 것을 아르노 회장은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를 위한 첫 과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열정적인 아트 디렉터를 확보하는 것이다.
[명품 이야기]루이 비통의 의류 진출…마크 제이콥스, 전통에 혁신 입혀 대성공
제이콥스, 16년간 수많은 혁신적 감각의 창작품 내놔


그래서 영입한 사람이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 출신의 신예 마크 제이콥스였다. 그는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가 수여하는 페리 엘리스 디자이너상을 24세 때 최연소로 수상한 바 있다. 제이콥스는 34세 때인 1997년 루이 비통에 들어와 이듬해 첫 의류와 슈즈 컬렉션을 내놓았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2013년까지 루이 비통에서 여성복·남성복·액세서리를 관장하는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수많은 혁신적 감각의 창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루이 비통 매출은 제이콥스 영입 이후 급상승했고 세계 패션계의 히어로로 떠올랐다. 제이콥스는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파괴시켜야 한다”는 해체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모노그램 디자인은 예술인들과의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탄생했다. 2001년 펑크와 팝 콘셉트의 그래피티(벽 또는 화면에 스크래치를 내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린 낙서 같은 그림·문자) 디자이너인 스티븐 스트라우스와 협업한 게 대표적이다. 모노그램 패턴 위에 그래피티가 더해진 ‘그래피티 백’은 기존 루이 비통 모노그램 가방보다 30% 비쌌지만 불티나게 팔렸다. 주로 20~30대 젊은 부유층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래피티 백은 단조롭던 모노그램 패턴을 다양한 형태로 변모시켜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루이 비통의 새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 일본의 무라카미 타카시와의 협업도 히트했다. 무라카미는 일본의 앤디 워홀로 불리는 네오 팝 아티스트다. 두 사람의 협업으로 화려한 원색의 멀티 컬러 가방과 액세서리가 탄생했고 세계 패션 트렌드를 이끌었다. 2012년엔 물방울 호박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세계적 설치 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와의 협업도 호평을 받았다.


이 같은 제이콥스의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루이 비통은 보수적인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전통과 혁신, 젊은 감각의 조화는 상업적인 성공만 가져온 게 아니었다. 상업적인 제품을 현대 예술 작품으로 승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이콥스 영입 이후 광고 캠페인도 달라졌다. 광고 속엔 아방가르드적 디자인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8년 모노그램 베르니 라인을 인간의 7대 죄악을 주제로 삼은 광고 속에 차례로 등장시킨 것이다.
[명품 이야기]루이 비통의 의류 진출…마크 제이콥스, 전통에 혁신 입혀 대성공
최고의 품질 보증, 창의·실용성 균형이 톱 명품 비결


150년 전통의 브랜드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가 있다. 루이 비통은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두 번의 세계 대전, 주기적으로 닥친 경제 위기와 테러·전쟁·전염병 등. 이로 인해 발생한 관광객 감소는 가방 위주의 제품 구성상 루이 비통에 큰 타격을 입히는 외부 요인이었다. 하지만 루이 비통은 매번 위기를 극복했고 제품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판치는 모조품과 경쟁 과다로 인해 명품업계에 불어 닥친 역풍도 루이 비통의 앞길을 막지는 못했다. 그 비결은 뭘까.

아르노 회장의 사업 전략 결실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최고의 품질 보증 신념, 제이콥스의 사례에서 확인되듯 창의성과 실용성 간의 균형, 과감한 신산업 분야로의 진출 등이다. 한 세기 반을 이어 온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 직원들의 열정, 일관성 있는 제품 개발 전략 등도 세계적 명품 브랜드로 우뚝 서게 한 또 다른 비결이다.


1990년부터 20년 넘게 루이 비통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이브 카르셀의 공도 크다. 그의 말은 루이 비통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로 우뚝 서게 됐는지 짐작하게 한다. “루이 비통만이 가진 특성은 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접목하는 능력이다. 제이콥스가 탄생시킨 모노그램 베르니나 모노그램 멀티 컬러 라인은 루이 비통과 모노그램의 모습을 완연히 담고 있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엿보인다. 이 업계는 늘 다양성을 보여 왔고 오늘날에는 그러한 특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역사적 틀 안에서 전통을 지키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려면 그 안에서 매우 세심하게 균형을 맞춰 나가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능력이 루이 비통 힘의 원천이다. 이것은 잃어버린 천국을 향한 메마른 환상도 아니고 과거를 무시한 채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재창조도 아니다. 끊임없이 전통을 다시 쓰고 재발견하는 작업이다.”

2014년 신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카르셀의 이 말은 비단 패션 업계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의CEO들도 새길 만하다.
[명품 이야기]루이 비통의 의류 진출…마크 제이콥스, 전통에 혁신 입혀 대성공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0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