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관리 ABC] [한경비즈니스 칼럼=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 얼마 전 인터넷 방송을 통해 드라마 ‘체르노빌’을 봤다. 필자가 리스크 관리에 별 관심이 없고 박사 과정 자격시험 준비로 여념이 없었던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소비에트연방(소련) 우크라이나에서 최악의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모든 게 베일에 싸여 있던 공산 소련 체제하에서 사고의 실상을 알 수가 없었으니 막연하게 짐작만 했던 재난이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간접적으로 사고의 실체를 알게 됐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는 국가 리스크 관리 실패의 전형이다. 이미 가동 중인 원전을 대상으로 안전 검사를 하다가 사고가 났다. 사실 원전의 안전 검사는 준공 전 이미 마쳤어야 했던 것으로 기술적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허점이다. 게다가 사고 당시 상황실의 원자로 출력을 조정했던 기사는 25세의 경력 4개월짜리 초짜로 최악의 실수가 중첩됐던 인재(人災)였다.
25년 원자로 근무 경력을 자랑하던 아나톨리 댜틀로프 상황실장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출세와 승진에 눈이 멀어 원자로의 기술적 한계는 따지지 않고 안전 검사를 밀어붙이다 사고를 낸 진범이다. 사후 대처는 어땠을까. 제대로 된 사고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불을 끄러 온 소방관들은 무방비로 방사능에 노출됐다. 원자력발전소 인근 마을 주민들도 새벽에 벌어진 생애 최고의 ‘불꽃놀이’를 어이없게도 즐긴다. 소련 정부는 사고 은폐에 급급했는데 사고 조사에 관여했던 과학자 발레리 레가소프의 목숨을 건 폭로가 없었다면 체르노빌의 진실은 영원히 묻힐 뻔했다. 체르노빌 참사는 1992년 1월 소련의 해체에도 분명 유의미한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연안에서 리히터 규모 9.1의 대지진이 발생했고 엄청난 쓰나미가 도호쿠 지역을 덮쳤다. 실종자를 포함해 인명 피해가 1만8000명, 재산 피해 20조 엔 규모로 일본 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하지만 대지진과 쓰나미의 천재(天災)만으로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지진에 따른 냉각수 공급 전원의 단절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끝내 폭발하는 상상하기도 싫은 인재가 이어졌다. 잘나가는 한 사회가 졸지에 망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했던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헛발질을 계속했다.
잘못 있다면 숨김없이 공유하고 실패의 반복 막아야
사고 실상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던 탓에 사후 대처가 허술했다는 게 중론이다. ‘원전 마피아’의 위세로 사태가 악화됐다는 정치적 음모 얘기까지 나왔고 급기야 간 나오토 내각은 실각했다. 방사능 오염수 역시 제대로 정화되지 않은 상태로 태평양에 방류되고 있어 세계적 비난을 받고 있는데 사고 후 10년 가까이 지난 오늘까지도 쓰나미와 원전 피해 지역은 여전히 불모지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1년 연기된 도쿄 올림픽의 2021년 개최가 여전히 불투명한데 후쿠시마 방사능 문제 또한 올림픽 추진 계획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게 오늘날 천재와 인재가 결합된 복합 재난의 양상이다. 지진 같은 천재가 발생한 후 어이없는 인재가 더해질 때 복합 재난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재난에 대해서는 통합 리스크 관리가 요구되는데 기술적 수단의 리스크 관리와 함께 리스크 거버넌스의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 재난 리스크 관리는 물론 정부가 주도해야 하겠지만 정부와 민간이 공조해 재난을 예방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정책 입안과 수행의 의사 결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고 유사시 업무 분담과 사후 책임 소재를 확실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재난 리스크 관리에서의 잘못을 숨김없이 공유해 유사한 실수나 실패의 반복을 막아야 마땅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1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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