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ESG 경영 시대’ 국내 54개 그룹 지배구조 점수는]
-2021 한경비즈니스 기업 지배구조 랭킹
-공시 대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개선 현황 분석
-총수 일가, 책임 묻는 이사 등재율 감소세
사외이사 늘었지만 내부 거래 99% 원안 통과…지배 주주 견제 장치 ‘미흡’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기업 지배 구조는 기업 내부의 의사 결정 시스템, 이사회와 감사의 역할과 기능, 경영자와 주주와의 관계 등을 총칭하는 기업 경영의 통제 시스템이다. 한국의 기업 지배 구조 개선 논의는 1997년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본격화했다. 낙후된 지배 구조가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바람직한 기업 지배 구조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이 투명하고 건강한 지배 구조를 갖추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현재 사외이사·내부위원회·전자투표제 등 지배 주주나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구비 실태는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2020년 사외이사 선임과 내부위원회 설치 등에서 법정 기준을 크게 웃돌아 충족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양적 개선에 비해 운영 내용 등 질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개선할 부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는 대규모 내부 거래 관련 안건의 99% 이상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등 실질적 심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외이사 늘었지만 내부 거래 99% 원안 통과…지배 주주 견제 장치 ‘미흡’


◆ 이사 등재 회피하는 대기업 총수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2020년 공시 대상 기업집단의 지배 구조 현황’에 따르면 총수 일가의 이사 등재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총수가 있는 51개 집단(그룹)의 계열사 1905개 중 총수 일가가 1명 이상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16.4%(313개)에 불과하다. 2019년 17.8%보다 1.4%포인트 감소한 것이다.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5.7%(108개)였다. 2019년 대비 1.8%포인트 감소했다. SM(-23개), 롯데(-4개), GS(-2개), 삼성(-1개) 등에서 총수 본인의 이사 등재 회사 수가 감소했다. SM은 총수가 기업집단 내 건설·해운 업종 등 큰 규모의 주요 회사 위주로 이사 등재하는 것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총수 본인의 이사 등재 회사가 다수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총수 일가 이사 등재 비율은 주력 회사, 지주회사, 사익편취 규제 대상 및 규제 사각지대 회사에 집중돼 있었다. 주력 회사에서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39.8%로 전체 회사(16.4%)나 기타 회사 등재 비율(14.8%)보다 높다.

특히 지주회사 전환 체제에서 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의 총수 일가 이사 비율은 80.8%에 달했고 총수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도 50.5%로 높게 나타났다. 주력회사와 지주회사는 총수 일가의 지분이 많아 이사로 등재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 총수 2~3세가 이사로 등재된 68개 회사 중 사익 편취 규제 대상 회사(32개)와 사각지대 회사(14개)가 차지하는 비율은 67.6%로 나타났다.

반면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대기업집단은 삼성·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CJ·대림·미래에셋·금호아시아나·효성·코오롱·이랜드·DB·네이버·한국타이어·태광·동원·삼천리·동국제강·하이트진로·유진 등 20개였다. 이 가운데 삼성·신세계·CJ·미래에셋·이랜드·DB·네이버·태광·삼천리·동국제강 등 10개 집단은 총수와 2~3세 모두 단 한 곳의 계열사에서도 이사를 맡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총수 일가가 등기 임원을 맡으면 손해배상 등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는 만큼 이사 등재를 회피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보유 지분을 통해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총수들의 등기 이사직 외면 현상은 책임 경영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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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영·SM, 10개 이상 이사 등재 ‘겸직왕’


총수 일가의 이사 겸직 현황을 보면 1인당 평균 2.1개의 이사 직함, 총수 본인은 3.5개의 이사 직함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근 부영 회장(17개)과 우오현 SM 회장(11개)은 각각 10개 이상의 계열사에서 이사로 등재돼 있었다.

총수 일가의 1인당 평균 이사 겸직 수가 가장 많은 기업집단은 아모레퍼시픽·셀트리온·롯데(각 5개씩), 부영(4.6개), SM(4.4개), 한라(3.5개), 한국앤컴퍼니(3개) 순이었다. 총수 2~3세가 이사로 등재된 기업집단은 SM(10개), 효성(8개), 부영·태영·한국타이어(각 5개씩) 순으로 나타났다.

총수 일가는 상무에 종사하지 않는 ‘기타 비상무이사(14.3%)’보다 기업의 운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대표이사 또는 사내이사(84.0%)’로 재직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높았다. 기타 비상무이사는 사내이사·사외이사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기업의 운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지배 주주나 임원진을 견제하는 사외이사와 구별된다.

계열사 퇴직 임직원을 다시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곳도 있었다. 삼성·현대차·SK·롯데·한화·GS·KT·두산·LS·미래에셋·교보생명보험·효성·HDC·이랜드·DB·태광·삼천리·다우키움·애경 등 19개 기업집단의 35개 회사는 계열회사 퇴직 임직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42차례 선임했다. 이 중 42.9%(18건)는 사익 편취 규제 및 사각지대 회사 소속이었다. 계열회사 퇴직 임직원 출신 사외이사를 선임한 건수가 많은 집단은 다우키움(5명), 롯데(5명), 두산(4명), 태광(4명), HDC(3명), DB(3명)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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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회는 ‘거수기’…내부 거래 원안 가결 99%


이사회는 규모면에서는 법상 요건을 충족했지만 내부 거래 안건을 대부분 원안 그대로 가결하는 등 ‘거수기’ 역할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법상 2조원 이상 상장사는 3명 이상, 이사 총수의 과반을 사외이사로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58개 기업집단 소속 266개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864명으로 전체의 50.9%를 차지했다. 최근 1년간(2019년 5월~2020년 5월)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6271건) 대부분은 원안 가결(99.51%)됐다.

특히 계열사 간 대규모 내부 거래(상품·용역거래 한정)와 관련한 안건 692건은 1건을 제외한 모든 안건이 원안대로 가결됐다. 대규모 내부 거래 대부분이 수의 계약으로 이뤄졌고 안건에 수의 계약 사유조차 기재하지 않은 곳도 78.3%에 달했다. 대규모 내부 거래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사회 안건 6271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0.49%(31건)에 불과했다.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한 31건 중 부결된 안건은 (주)한화의 ‘계열금융사와의 거래 한도 승인의 건’, (주)신세계아이앤씨의 ‘사회 공헌 프로그램 다문화 지원 활동 후원 기부금 집행 승인의 건’, 금호석유화학의 ‘아시아나항공 임시 주주 총회 의결권 행사 결의의 건’ 등 모두 8건이다.

이사회 내 4개 위원회(추천위원회·감사위원회·보상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에 상정된 안건(2169건) 중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총 13건이었다. 이 중 삼성 내부위원회(제일기획과의 광고 대행 계약 체결의 건), 한진 감사위원회(회사의 전·현직 이사에 대한 소 제기 여부 결정의 건) 안건 등 4건이 부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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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2호(2021.01.18 ~ 2021.01.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