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 플랫폼 갖춘 기업은 세계 5곳 불과…애플 브랜드 탐나지만 자체 개발·경쟁도 자신감

[스페셜 리포트]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을 대표하는 애플이 현대차에 은밀한 제안을 했다. 서로 협력을 통해 자율주행 전기차 ‘애플카’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만약 애플과 현대차의 협력이 성사된다면 한국 완성차 업체가 글로벌 자율주행 전기차 시장의 메이저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테슬라의 독주 체제가 막을 내리고 현대차·애플 vs 테슬라의 경쟁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협상 결과에 따라 현대차가 위탁 생산 역할만 하게 된다면 애플의 하청 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현대차가 그동안 막대한 투자를 통해 준비해 온 전기차 시장을 애플에 넘겨주는 꼴이 된다. 애플이 던진 카드는 현대차에 찾아온 기회일까, 위기일까.
애플카 참여 저울질…‘전기차 빅뱅’ 핵으로 부상한 현대차그룹
‘애플카’로 자율주행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애플이 현대차에 협력을 제안했다. 지난해 12월 애플카 출시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시점에서 나온 소식이다.

구체적인 제안 내용은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두 회사가 가진 기술력과 플랫폼을 활용해 2024년까지 애플카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자는 것이 전부다.

양 사 간의 방침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협력설’이지만 벌써부터 시장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세계 최고 테크 기업인 애플과 세계 5위 완성차 기업 현대차의 만남 자체가 자동차 산업을 뛰어넘어 세계 산업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시너지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카가 현실화된다면 테슬라가 주도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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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는 애플, 차량 제조는 현대차?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두 회사가 만드는 애플카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애플이 자율주행 시스템 등 차량 소프트웨어(SW)를 담당하고 차량 제조는 현대차가 맡을 것이란 예측이다.

이를 통해 최소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 전기차 애플카가 연간 100만 대 생산될 것이란 예상이다. 만약 이러한 예상이 현실화된다면 자율주행 전기차의 대중화 시대도 훨씬 빨라질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엄청난 시너지다.

현대차에도 애플과의 협업은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애플이라는 브랜드와 ‘팬덤’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보다 수월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용 플랫폼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이른 시간 안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사실 현대차는 애플 외에도 여러 업체에 전기차 플랫폼 ‘E-GMP’를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GMP는 현대차그룹이 자체 개발해 올해 공식 출시를 앞두고 있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다.

지난해 12월 설명회에서 현대차는 다른 업체와 E-GMP를 공유할 것인지 묻는 말에 “이미 몇몇 업체에서 협력에 대한 문의가 들어왔다. 시장에서 이 플랫폼의 잠재력을 보면 더 많은 콜(요청)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플랫폼 판매’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비용이다. 자동차 산업은 연구·개발 비용이 막대한 만큼 차량 1대당 비용을 줄이는 게 관건이다. 이 때문에 완성차업계는 한 번 개발한 플랫폼을 자사의 여러 차종에 적용하는 식으로 비용을 절감해 왔다.

하지만 전기차는 아직 시장 규모가 작고 출시된 차종도 적어 이런 전략을 구사하기 어렵다. 원가 절감 압박이 덜한 고급 차량으로 포지셔닝한 미국 테슬라의 전략도 기존 완성차업계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는 다른 업체와 전기차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다. 비용 부담을 나누기 위해서다. 독일 폭스바겐은 미국 포드에, 제너럴모터스(GM)는 일본 혼다에 전기차 플랫폼을 제공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플랫폼 공유 여부가 알려지지 않은 몇 안 되는 업체였다. 애플카에 플랫폼을 제공하는 그림이 실현되면 현대차그룹에 숨통이 트이는 셈이다.

현대차가 애플 제안에 망설이는 이유

애플과 현대차의 협력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애플은 자율주행차에 탑재될 인공지능(AI)은 물론 차량용 운영체제(OS)와 반도체·배터리 등 다양한 미래차 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상당 부분 현대차와 영역이 겹친다. 애플이 현대차의 양산 노하우를 발판 삼아 단숨에 완성차 브랜드 상위권으로 올라서면 현대차가 경쟁자를 오히려 키워 주는 셈이 된다.

특히 주행 데이터는 두 기업 간 협상에서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차량에서 수집하는 각종 주행 데이터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데 쓰이는 필수 재료다.

한 예로 테슬라는 자사 차량에서 조작 정보는 물론 센서에 인식된 주변 환경 정보까지 수집하며 자율주행 기술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앞서 애플은 독일 BMW나 메르세데스-벤츠와도 협력을 타진했지만 데이터와 디자인에 대한 권한을 두고 이견을 보이다 끝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애플은 현대차보다 앞선 2014년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을 위한 타이탄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2019년에는 테슬라 부사장 출신을 임원으로 영입하면서 완성차를 목표로 차세대 배터리 자체를 개발한다는 전략까지 세웠었다.

이런 애플의 행보에 자동차업계 일각에서는 대만 폭스콘이 애플 아이폰을 단순 위탁 생산했듯이 현대차가 애플의 ‘하도급’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애플이 규모의 경제를 갖출 정도로 애플카를 대량 생산할지도 미지수다. 애플이 과거 애플TV를 만들 때도 당초 기대와 달리 마니아나 수집가들에게 판매하는 물량 정도만 생산하고 말았다.

미래 전기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OS의 독립 문제도 현대차의 고민거리다. 현대차는 미래차 전쟁에서 테크 기업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자체 운영체제를 독자 개발해 왔다.

독자 운영체제를 확보하고 있어야 자율주행차 개발뿐만 아니라 인포테인먼트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과거 PC 시절부터 자신들의 OS를 배타적이고 독점적으로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다시 말해 애플카에도 자신들의 OS를 집어넣어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까지 모두 장악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현대차로서는 독자 OS 개발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미 현대차는 반자율주행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했기 때문에 굳이 애플과 협력하지 않아도 독자적인 자율주행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내년에는 스티어링 휠을 잡지 않아도 주행이 가능한 레벨 3의 자율주행차 출시를 앞두고 있다.

또 앱티브(Aptiv)와 자율주행 연구를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 ‘모셔널’을 통해 무인 택시 사업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아닌 기아가 애플카 개발을 담당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현대차보다 글로벌 영향력이 약한 기아가 애플과 협력할 경우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애플을 사로잡은 현대차의 시장성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갖춘 자동차 업체는 현대차를 포함해 테슬라·GM·폭스바겐·도요타 등 5곳 정도다.

그중 애플이 현대차에 동맹을 제안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독보적인 IT 기술력을 갖춘 애플이기에 자동차 업체로서는 서로 협력하길 원하고 있는데 현대차를 콕 찍어 제안했다는 것은 그만큼 현대차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욱이 애플은 과거 테슬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고 거부했었던 터라 급성장한 테슬라를 보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테슬라의 인수 제안 시기는 2016년 또는 2017년으로 애플이 한창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다. 당시 테슬라가 팔려고 했던 가격은 약 600억 달러(약 66조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지난해 말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를 통해 “과거 테슬라를 애플에 매각하려고 했지만 팀 쿡 애플 CEO는 만나주지도 않았다”는 글까지 올리며 약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 테슬라의 시가 총액이 2020년 말 기준 약 860조원이니 애플로서는 높아진 테슬라의 콧대를 간절히 누르고 싶어 할 만도 하다.

이런 애플이 같은 미국 기업인 GM이나 포드도 아닌 현대차에 협력을 제안했다. 현대차가 가지고 있는 전기차에 대한 기술력과 방향성에서 양 사의 협력이 불러올 수 있는 시너지가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생산·제조 플랫폼이 없는 애플에 현대차는 매력적인 협력 대상이다. 실제 현대차는 세계 5위권의 완성차 생산 기반과 3위의 친환경차 판매 실적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최근 수년 사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보여 온 미래차에 대한 투자는 애플이 자랑으로 삼아 오던 ‘혁신’을 보이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

정 회장은 2018년 그룹 총수 역할을 수행하며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실제로 미래 기술 관련 역량 확대에 주력했다. 2018년 이후 약 4조원을 투자해 외부 기술 기업을 인수·합병(M&A)하며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현대차(기아 포함)는 2017년 10위권 밖에 있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순위를 지난해 3위(3분기 누적 기준)까지 끌어올렸다. 국내 2만7548대, 해외 15만610대로 총 17만8158대를 판매했고 이는 전년 대비 국내 18.7%, 해외에서 93% 증가한 수치다.

앞으로의 현대차의 시장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2040년부터 미국·유럽·중국 등 글로벌 주요 지역에서 내연기관차를 판매하지 않기로 하는 등 친환경 모빌리티 시대를 향한 행보를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2025년까지 23차종 이상의 전기차를 내놓을 계획이라며 “2025년에는 전기차를 100만 대 판매하고 시장점유율을 10% 이상 기록해 전기차 부문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 밖에 정 회장은 미래 모빌리티 선점을 위해 전방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작년 말 미국 로봇 업체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9600억원에 인수하며 모빌리티 생태계 확장에 나섰고 2400억원을 사재 출자하는 등 책임 경영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미국 앱티브와 2조4000억원씩 투자해 자율주행 합작사인 ‘모셔널’을 설립했고 싱가포르에는 미래 모빌리티 전진 기지 격인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를 착공해 글로벌 대규모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기아’의 사명을 변경하고 제조업 중심에서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로보틱스와 같은 신성장 분야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 새로운 모빌리티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갈 것”이라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합리화하고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에 부합하는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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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IT 업체의 합종연횡 ‘빅뱅’

2021년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IT 기업들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130여 년 동안 내연기관이 장악해 온 자동차 산업은 유독 진입 장벽이 견고하고 높았다. 휘발유·경유차 등 내연기관의 특성상 기술력과 안정성이 높게 요구됐기 때문이다.

자동차 브랜드 중 100년이 넘는 곳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내연기관에서 모빌리티 시대로 전환되면서 견고했던 장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변화의 중심엔 2003년 창업한 테슬라가 있다. 지난해 총 5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한 미국 테슬라는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을 단숨에 제치고 자동차업계 1위(시가총액 기준)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생산과 판매 생태계가 무너진 가운데 테슬라는 독주했다.

진입 장벽이 무너지자 세계 곳곳에서 합종연횡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애플 아이폰의 위탁 생산 업체로 유명한 대만 폭스콘은 중국 자동차 회사 지리와 자동차 주문 제작 전문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지리는 중국의 최대 검색 엔진 바이두와 전기차 생산을 위한 합작사 ‘바이두 자동차’도 만들었다.

미국에 상장된 중국 전기차 3인방에 투자한 곳도 IT 회사다. 웨이라이는 텐센트, 샤오펑모터스는 알리바바와 샤오미, 리샹은 메이퇀이 주요 주주다. 연간 4만 대를 파는 웨이라이의 시가 총액이 지난해 374만 대를 판 현대차보다 2배 더 많다.

GM의 자회사 크루즈는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장기적 차원의 전략 관계를 수립했다. 양 사는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엔지니어링,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 제조 노하우 등을 상호 공유하고 자율주행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협력할 예정이다.

크루즈는 자율주행차용 클라우드 컴퓨팅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에지 컴퓨팅 플랫폼인 애저(Azure)를 활용해 독자적인 자율주행차 솔루션의 대규모 상용화를 이끌 계획이다.

MS 역시 고객 주도형 제품 혁신을 강화하고 애저의 지속적인 투자를 기반으로 글로벌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일본의 소니도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1’에서 전기차 ‘비전 S(Vision S)’ 프로토타입의 주행 영상을 공개하며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다. 비전 S는 소니가 지난해 ‘CES 2020’에서 공개한 첫 전기차 모델이다.

소니의 이미지 센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이 장착된다. 자율주행은 레벨2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완성차 시장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평가다.

한편 애플이 현대차와 협력을 제안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이 삼성전자로 향하고 있다. 애플과 함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경쟁사인 만큼 삼성전자도 ‘갤럭시카’로 자율주행 전기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삼성그룹이 완성차 사업 경험을 가지고 있고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까지 만들 수 있는 기술 역량을 충분히 갖춘 만큼 갤러시카 출시를 기다리는 이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당장 갤럭시카 개발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 진출설이 제기될 때마다 삼성 측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완성차에 진출하지 않는 이유를 ‘파트너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에서 찾고 있다.

삼성이 완성차에 뛰어든다면 수많은 고객사가 삼성을 경쟁자이자 위협 요인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파트너였던 삼성이 경쟁자가 되면 고객사들이 삼성과 거래를 끊거나 핵심 부품을 무기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