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10개국 모임 통해 중국 견제 포석…한국, 미·중 사이에서 시험대 오를 것

바이든 시대 주목받는 ‘D10’과 ‘쿼드’ [글로벌 현장]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외교 안보 축으로 D10과 쿼드(Quad)가 주목받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아시아 차르(최고 책임자)’인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이 미국 동맹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두 가지를 꼽으면서다.

D10은 민주주의 10개국 모임, 쿼드는 미국·일본·호주·인도가 주축이 된 안보 협의체로 둘 다 중국 견제의 성격을 갖고 있고 한국도 참여 대상으로 꼽힌다.

한국은 국제 질서에서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기회지만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에 대해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숙제가 따른다. 중국과의 관계도 변수다.
바이든 시대 주목받는 ‘D10’과 ‘쿼드’ [글로벌 현장]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국 연대 ‘D10’

캠벨 조정관은 1월 12일(현지 시간)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미국은 어떻게 아시아 질서를 강화할 수 있나’라는 기고문에서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동맹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D10과 쿼드를 꼽았다.

캠벨 조정관은 “미국은 파트너십 구축에 유연하고 혁신적일 필요가 있다”며 “모든 사안에 초점을 두는 거대 연합체를 구성하는 대신 개별적 문제에 초점을 두는 맞춤형 연합체 혹은 즉석 연합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D10을 예로 들며 “이런 연합은 무역과 기술, 공급 체인, 표준 등의 문제에 시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10은 민주주의 10개국(Democracy 10)을 뜻한다.

서방 주요 7개국(G7)에 한국·인도·호주를 추가한 개념이다. 미 국무부는 2008년 D10 개념을 구상했고 미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이 2014년부터 D10 전략 포럼을 열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해 5월 5세대 이동통신(5G) 통신망 분야에서 대중(對中) 대응 등을 위해 D10을 제안했다. 외교 전문 ‘포린폴리시’는 지난해 6월 ‘G7은 잊고 D10을 만들라’는 기고를 싣기도 했다.

D10은 바이든 대통령이 구상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와도 일맥상통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경선 주자 시절인 지난해 4월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집권하면 집권 첫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소집하겠다”고 공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을 경시하면서 미국이 세계 리더로서의 위상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후 변화 등 글로벌 현안에서 리더 역할을 못했고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부상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본다.

이를 바로잡을 해법으로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국가 연대를 꺼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인 자격으로 한 기자회견에서도 유사한 말을 했다.

중국 주도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출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면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세계 경제의 25%를 차지하고 있다”며 “또 다른 25% 혹은 그 이상인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통상 규칙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오미연 애틀랜틱카운슬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임인 민주주의 정상 회의를 통해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와 맞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중국과 일대일로 대결하기보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임을 통해 권위주의 국가의 대표 주자인 중국을 자연스럽게 견제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다.

D10이 활성화되면 미국의 중국 견제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2019년 국내총생산(GDP)을 보면 미국이 24.4%로 1위, 중국이 16.3%로 2위다. 현재 경제 성장 속도는 중국이 미국보다 빠르다.

중국이 미국 경제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예상이 많다. 게다가 인구로 보면 중국은 미국의 4.3배다. 미국 혼자만의 힘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선진국 클럽’인 G7의 경제 비율은 45.2%다. 만만치 않은 수치지만 G7에 속한 아시아 국가는 일본뿐이다.

D10엔 아시아 혹은 인도·태평양 국가로 분류되는 한국·호주·인도가 추가된다. D10의 경제 비율은 52%로 세계 경제의 절반이 넘는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의 3배가 넘는다.

미국으로선 D10이 그만큼 중국 견제에 효과적이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민주주의 정상 회의가 D10이 될지, 아니면 D11이나 D12처럼 더 많은 국가로 확대될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미국의 우방이면서 자유·인권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의 모임 형태가 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D10 시대에도 한·미 동맹 강화가 중요한 이유다. D10 같은 민주주의국 협의체가 생기는 것은 한국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선진국이 만든 규칙을 따라가는 ‘룰 팔로워(rule follower)’를 넘어 한국이 직접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룰 세터(rule setter)’로서의 위상을 굳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책임과 권한·숙제도 따른다.

권위주의 국가의 도전과 인권 문제 등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외면해선 안 된다. 예컨대 중국의 홍콩 보안법 강행 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모두 비판적 태도를 보였지만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한국이 D10 회원국이 되면 이 문제에 마냥 침묵을 지키기는 어렵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국가 안보 위협으로 꼽는 화웨이를 5G 통신망에서 배제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국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이다.

북핵 위협도 D10에서 다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실질적 핵 위협 감소 없이 제재 완화를 주장한다면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강조될 ‘쿼드’

캠벨 조정관은 D10과 함께 쿼드도 강조했다. 그는 “쿼드 확대를 통한 군사적 억지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견제 수단으로 임기 막바지에 쿼드와 여기에 한국 등을 추가하는 ‘쿼드 플러스(+)’ 구축에 속도를 냈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 종료와 함께 쿼드와 쿼드 플러스 구상도 힘을 잃을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캠벨 조정관의 기고에 비춰 볼 때 바이든 정부도 쿼드 개념을 이어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즉 D10이 무역·기술·공급체인·표준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이라면 쿼드와 쿼드 플러스는 군사·안보 측면에서 중국의 부상을 제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켄트 칼더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동아시아연구소장은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 당선 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시대에도 쿼드는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한국은 쿼드 플러스에 가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미국의 주요 동맹”이라며 “한국이 주변화돼선 안 된다”고 했다.

쿼드와 쿼드 플러스는 ‘아시아판 나토’로 불린다. 미국이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유럽에서 집단 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만든 것처럼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쿼드와 쿼드 플러스를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으로 위협을 느끼는 동남아 국가들도 쿼드에 가세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현재 쿼드 참여엔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정부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쿼드 참여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지난해 10월 한 세미나에서 한국이 미국의 ‘반중(反中) 군사 훈련’에 동참하면 “중국은 한국을 적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쿼드 참여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당선 직후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와 번영의 ‘린치핀(linchpin : 핵심 축)’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역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한 것이다. 한국은 경제 강국인데다 한·미 동맹으로 묶여 있고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다.

반면 중국은 한국을 한·미·일 동맹에서 ‘약한 고리’로 본다. 수시로 한국과 미국의 틈새를 벌리려고 한다. 바이든 정부가 쿼드와 쿼드 확대에 속도를 낸다면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서게 된다.


워싱턴(미국) = 주용석 한국경제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