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지역의 진짜 이야기가 있는 곳, ‘관광두레’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떠나기 전 ‘현지인 맛집’을 검색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관광객에게 유명하고 붐비는 식당보다는 현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역 전문가의 선택이 더욱 믿음직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관광두레는 이러한 지역 전문가인 주민이 주도하는 지역관광 활성화 사업이다. 주민이 지역 고유의 특색을 지닌 관광사업체의 창업과 육성을 지원함으로써 더 많은 이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 관광두레의 핵심이다.

현재 전국 41개 지역에서 187개 주민사업체가 관광두레로 운영 중이다. 업종은 숙박, 식음, 여행, 체험, 레저, 기념품으로 다양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지역 고유의 자원을 활용한다는 것. 덕분에 관광두레를 찾는 여행자들은 오직 현지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관광두레의 장점은 독창적인 프로그램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역을 무대로 지역 주민이 기획한 만큼, 발생되는 수익 역시 지역에 돌아간다. 관광객의 소비가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고, 더 많은 관광객이 지역을 찾는 관광생태계의 선순환이야말로 관광두레가 만드는 긍정적인 나비효과다.
[여행] 지역의 진짜 이야기가 있는 곳, ‘관광두레’
ⓛ (주)평화오르골 - 분단의 현장을 기억하는 특별한 체험

경기도 파주시 관광두레 주민사업체인 ㈜평화오르골은 지역 내 전통공예 작가와 협업해 다양한 기념품과 체험 프로그램에 평화를 소망하는 의미를 담았다. 대표적으로 지뢰와 철모가 어우러진 평화오르골을 꼽을 수 있다. ㈜평화오르골은 이처럼 상징적인 기념품을 제작해 지역의 역사적·지리적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등 차별화된 지역 콘텐츠로 눈길을 끈다.

경기도 파주에 가면 대한민국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와 임진각 등을 찾는 관광객은 한 해 약 1000만 명에 이른다. 그런 만큼 파주에서는 안보관광, 평화관광이 주를 이룬다. 파주시 관광두레 주민사업체인 ㈜평화오르골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살려 관련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했다.

㈜평화오르골은 지난 2019년 파주시 관광두레 선정 후 지역의 활동가, 도자기 공예가, 체험 활동가, 농장 운영주 등이 모여 결성한 주민사업체다. 2020년 6월 법인을 설립하고 사업을 개시했다. 구성원들이 회의 끝에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교육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선정한 것이 오르골이었다. 파주의 소리를 담는다는 콘셉트로 시작해 도자기, 목재, 플라스틱으로 재료를 달리해서 관광기념품과 답례품을 만들었다.

㈜평화오르골은 단순히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관광객과 소비자가 직접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오르골 체험 프로그램은 매주 주말 귀한농부학교 캠핑장을 찾는 가족 고객을 대상으로 운영 중이다. 나만의 오르골 체험은 인형, 잔디, 스티커 등을 스스로 선택해서 갖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만족도가 높다. 가족과 함께 캠핑장을 찾은 신대범 씨(인천 연수구)는 “아이가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통일을 염원하면서 함께 오르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참 동안 오르골 만드는 데 집중하던 신용찬 군(8세)은 완성한 오르골을 들고 “평화를 위해 만들었어요”라고 외치며, “통일이 되면 민통선 밖으로 보내서 북한까지 가면 좋겠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여행] 지역의 진짜 이야기가 있는 곳, ‘관광두레’
② 풀꽃누리 - 느리고 천천히 색을 짓다

“아이고, 곱다 고와!” “색 좀 보소. 우째 이런 색을 만듭니꺼.” 경남 산청군 남사예담촌에 자리한 ‘풀꽃누리’ 매장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들은 천연염색가 박영진 장인이 만들어낸 색색의 천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풀꽃누리는 역사 속에서 내려오는 전통 방식으로 천을 물들인다. 풀꽃누리 대표이기도 한 박영진 장인이 색(色)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환경을 생각해 천연염색으로 옷을 지어오던 그의 어머니가 지리산의 성철스님 생가 인근에서 본격적으로 염색업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잠시 직장을 쉬고 있던 그가 호기심에 어머니를 따라나선 것이 그에게 평생의 업이 되었다.

박영진 대표는 <교합총서> <동의보감> 등 고문헌을 파고들며 전통 염색 기법을 연구했다. 동시에 전통 염료를 찾아 전국 팔도를 누볐다. 신나무, 도토리, 오배자, 오리나무, 가죽나무… 산지에 간다고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무의 껍질 성분인 ‘황백피’는 장마철에만 채취가 가능하다. 이렇게 각종 재료와 기법을 바탕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것이 13년. 역사에 남겨진 173가지 전통색 재현에 성공했다.

그사이 박 대표는 만물박사가 되었다. 색채학은 기본이고 한문학, 식물학, 술 담그는 법까지. 그 이유는 염색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청색을 만드는 과정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한 해 앞선 가을과 겨울에 걸쳐서부터 밑작업이 필요하다. 콩대를 태워 재를 만들고, 소나무 장작으로 굴껍질을 태워 자연 석횟가루를 만든다. 봄이 되면 푸른빛을 내는 식물인 ‘쪽’을 심고 7~8월에 수확한다. 쪽을 석회와 섞으면 비로소 걸쭉한 니람(泥藍· 염료)이 된다. 이를 가을에 준비해둔 콩대 잿물, 직접 만든 막걸리 밑술과 조청을 넣고 30일간 발효한다. 발효된 염액에 원단을 넣고, 햇볕에 말리는 과정을 3~4회 반복한다. 약 430일에 걸친 이 과정을 지나고 나서야 푸른색이 완성된다.

현재 풀꽃누리의 고민은 천연염색을 이어갈 후계자 양성이다. 오랜 세월 전국을 누비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재현한 173가지 전통색을 제대로 전승하지 않으면 다시 잊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워낙 고되고 지난한 작업이라 천연염색을 배우러 왔다가도 중도 포기하는 이가 많다. 풀꽃누리가 최근 ‘산청173’이라는 법인을 설립한 배경에도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박 대표가 재현한 우리나라 전통 색상 173가지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엽서 등 생활 소품으로 판매해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전통색을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여행] 지역의 진짜 이야기가 있는 곳, ‘관광두레’
③ 크래프트 유니온 협동조합 - 속초에 가시거든 울산바위 바라보는 몽트비어 기억하기

“저 창밖으로 보이는 게 울산바위예요.” 크래프트 유니온 협동조합(이하 몽트비어)의 박도영 이사가 가리키는 곳에 외설악의 자랑인 울산바위가 구름 사이에 잔잔하다. 몽트(MONT)는 불어로 ‘산’을 뜻한다. 박 이사가 지역의 자랑이자 자부심인 속초의 울산바위를 첫인사처럼 일러준 까닭은 몽트비어의 아이덴티티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강인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원도 설악산, 깊고 푸른 동해바다의 기운을 끌어안은 몽트비어는 지역을 대표하는 수제 맥주 전문 브랜드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몽트비어는 온라인 동호회에서 시작됐다. 맥주가 좋아서 맥주를 만드는 수준까지 도달한 회원들 중 강원도 출신 마니아들이 주축이 되어 2016년 수제맥주 양조장을 건설한 것. 박이사는 동호회 시절부터 우리나라와 세계의 각종 맥주를 섭렵하며 나만의 맥주, 대한민국 대표 맥주 만들기를 소원했다. 그는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오늘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가 꼽는 조력자는 바로 엄기동 PD. 속초 출신으로 관광 및 지역경제 분야 등 다방면에 열의가 높았던 그는 2018년 속초시 사회적경제네트워크 사무국장에서 관광두레 PD로 새 옷을 입었다. 관광두레 PD를 쉽게 정의하면 선수를 서포트하는 매니저, 소속 연예인을 최고의 셀럽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밀착 지원하는 매니저라고도 할 수 있겠다. 관광두레 PD는 주민사업체가그 지역 고유의 색을 지닌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과연 딸기를 사용한 맥주의 맛은 어떨까? 일단 향기부터 맛있다. 코끝에 맴도는 딸기 향은 식전주처럼 입맛을 돋우기 충분하고, 한 모금 넘겼을 때도입 안에 달콤한 과일 향이 머문다. 복숭아는 껍질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벗기고, 딸기 역시 씨 하나 섞이지 않도록 면보에 원물을 걸러내는 공정을 거쳤다. 말 그대로 노동집약적 생산의 결과물인데 농가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는 이 과정 자체가 이뤄질 수 없기도 하다. 현재 시판을 앞두고 있는 샤인머스캣도 양양곰마을의 복숭아나 응골마을의 딸기처럼 지역 농가와 상생하는 전략을 펼쳤다.

“샤인머스캣은 맛도 좋지만 비싸기로도 유명한 과일인데, 경북 상주의 샤인머스캣 농가에서 이를 이용한 맥주를 개발해달라고 먼저 제안을 했어요. 그전에 우리 지역 농가의 과일 맥주가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이죠. 일반 소비자에게 유통되는 과일은 일단 흠집이 있으면 판매가 어렵잖아요. 맛은 똑같지만 못난 과일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를 이용해 맥주를 만든다면 농가에도 새로운 유통 창구가 생기니 참 좋은 일이죠. 일단 과일 맥주가 시판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는데 각 농가의 지원 덕분에 성공적인 맥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보답할 일이라곤 품질, 디자인, 스토리텔링 등 각 맥주의 브랜드화를 잘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과정에 관광두레의 지원은 절대적이에요.”

몽트비어는 앞으로 맥주 양조에 사용하는 원료인 홉(Hop)의 재배량을 더욱 늘리고, 이를 활용한 속초 대표 맥주, 놀이와 체험을 할 수 있는 유익한 공간으로 활성화할 예정이다. “우리는 꿈을 꾸고 있었던 거야.” 조합원들의 꿈이 하룻밤 꿈이 아닌 많은 사람을 웃게 하는 꿈으로서 더욱 커나가길 걸음마다 응원한다.
[여행] 지역의 진짜 이야기가 있는 곳, ‘관광두레’
④ 문화세상고리협동조합 - 국내에서 즐기는 세계의 맛과 멋

경기도 안산시는 다문화 대표도시다. 안산시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0월 말 현재 105개국 출신의 외국인 8만76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는 안산 시민의 12%에 해당하는 수치다. 문화세상고리협동조합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살려 여행·교육·체험 상품을 꾸준히 개발해왔다. 특히 지난 2019년 관광두레 지역사업체로 선정되면서 여행객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더욱 열정을 쏟고 있다.

안산의 대표적인 다문화 거리는 원곡동 다문화특구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세계 여러 문화를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고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이색 다문화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문화세상고리협동조합(이하 문화세상고리)이 진행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원곡동 나들이’다. 문화세상고리의 구성원 중 80%를 차지하는 이주 여성들이 직접 가이드로 나서 원곡동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이드에게서 한국에 오게 된 배경, 이주민으로서 겪는 갈등과 문제 등을 직접 듣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안산, 특히 원곡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고 다문화 인식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다문화 이주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동네 투어 외에도 다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여럿이다. 원곡동 나들이와 함께 빼놓을 수없는 것이 다문화 식당을 내세운 ‘미식 투어’다. 원곡동에는 12개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200여 개 식당이 있다. 아무래도 현지 출신의 식당 사장들이 많다 보니 서울에서도 쉽게 접하지 못하는 독특한 요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투어객에게 단순히 음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해당 국가의 이야기를 조합해서 더욱 멋스럽게 안산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덕분에 프로그램 만족도가 높고, 다시 안산을 방문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문화세상고리는 여행·교육·체험 상품 등 여행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그 밖에 다문화 보드게임, 국가별 공예 키트, 세계 의상, 문구류 등 다문화 관련 상품도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다양한 상품과 여행 프로그램은 문화세상고리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교육기관이나 단체가 아닌 소수의 일반인이 직접 여행 상품을 신청하기에는 접근이 원활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문화세상고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성인, 가족 단위 투어객등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온라인 예약이 가능한 새로운 플랫폼을 올 1분기에 개발 완료할 계획이다.

김은아 매거진한경 기자 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