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조직과 제도보다 문화 혁신이 먼저
-종합적인 성과 평가와 관리도 전제돼야

Business people group works at a table - Table
Business people group works at a table - Table

[한경비즈니스 칼럼=한준기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애자일(agile)’ 조직이 거의 모든 기업에 화두가 되고 있다. 소위 국내 유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이 단어를 즐겨 사용하면서 그들 기업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키워드로 강조하고 있다.

애자일 경영은 디지털과 4차 산업혁명 등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관심이 더 고조되고 있는 듯 보인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애자일 조직을 지향하면서 강화된 자율성을 바탕으로 더욱 민첩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김빠지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동시에 여전히 우리 기업의 현주소는 애자일 조직으로 변신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아직 갖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작금에 모든 경영자들의 관심사가 된 애자일 조직이 몇 가지 근본적인 배경 때문에 또 한 번 잠깐 반짝하는 경영 조류로 잠시 머무르다 슬며시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한국식 위계 조직으로는 절대 성공 못해

비록 최근 젊은 신세대 경영자들을 중심으로 일부 스타트업 기업들이 애자일의 참신한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전통적인 군대식 위계 조직과 보고 체계로 이뤄져 있다. 말하자면 조직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또한 우리 기업의 절대 다수 구성원들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유연성 역시 떨어진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에 매몰돼 있고 지속적으로 자기 역할에 명확한 선을 그어 달라는 피드백이 업종과 기업의 크기를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요청되는 사항이다. 애자일 조직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철학과 180도 배치되는 모양새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 현장 중심의 소통과 상호 발전 작용의 중요한 키가 될 수 있는 종합적이면서도 상시적인 성과 관리 시스템 역시 대부분의 기업에 부재한 상태다. 개별 기업 밖으로 눈을 돌리면 산업 간의 경계가 상당히 견고해 상호 인적자원 교류가 아직 활발하지 않고 노동시장의 구조 자체 역시 경직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자일 경영을 하기 위한 객관적인 상황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자일 조직을 만드는 것이 한국 기업들이 여기에 주저앉지 않고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숙제라고 한다면 크게 세 가지 핵심 영역을 중심으로 갈 수 있는 방안을 제언한다. 바로 일하는 방식과 문화의 변화, 목표 설정과 성과 관리 방식의 변화, 새로운 조직 구조로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첫째,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애자일 경영을 구축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손대야 할 곳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 기업은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보다 조직 구조나 제도를 먼저 바꾸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조직 구조나 제도를 제대로 바꾸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제대로만 바꿀 수 있다면 결과를 만들 수 있는 합리적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애자일 조직으로 변화하기 위한 핵심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다. 이를 감안한다면 비즈니스 현장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일하는 방식과 문화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흔히 애자일 조직 문화의 벤치마킹 모델로 많이 거론되고 있는 넷플릭스·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기업을 보더라도 조직 구조나 제도에서는 획기적인 것들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과 동일한 가치를 지향하는 인력들을 타협하지 않고 절대 기준으로 정말 제대로 선발하고 그런 구성원들과 ‘정말 다른 생각과 방식으로’ 일하려고 한다. 그것이 그들을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애자일 조직으로 만든 것이다.

기업의 상황에 따라 다소 상이할 수는 있겠지만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한 번 시도해 볼만한 정신이 몇 가지 있다. 자율과 책임 정신 그리고 개방화다. 다시 넷플릭스의 사례로 넘어가 보자. 이들의 일하는 방식의 핵심은 자율과 책임이다.

지난해 만났던 이 회사 아시아·태평양본부의 채용 책임자는 그들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을 직원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의 임직원들은 룰을 싫어한다. 거꾸로 말하면 룰과 제도를 따지는 사람을 가급적 선발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본인이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지면 된다. 휴가를 쓰는 것도 그렇고 회사 비용을 사용하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단, 중요한 전제가 있다. 회사에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스타트업을 넘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한국 기업 토스(비바리퍼블리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회사 상황에 대한 최고 수준의 정보를 임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조직 개편도 ‘애자일’하게 진행해야

둘째, 목표 설정과 성과 관리 방식의 변화, 다시 말해 종합적인 성과 관리 시스템의 도입과 구체적인 실행이 꼭 필요하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애자일 조직의 핵심은 빠른 속도로 비즈니스 현장에서 계속 소통하며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제품을 개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꾸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속에서 성장과 발전이 함께 일어나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만드는 것은 당연히 개개의 관리자와 직원이다. 현재까지 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검증된 가장 좋은 방법은 목표를 같이 수립하고 사업 성과의 진도를 계속 점검하며 때로는 피드백과 코칭을 하고 과정과 결과 모두에 대해 균형 잡힌 평가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비즈니스 성과 결과만 평가하는 과거 지향적 성과 평가(performance appraisal)가 아니라 미래 지향적 육성에 초점을 둔 종합적인 성과 평가와 관리(performance assessment)가 이뤄져야만 한다.

더욱이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기술과 산업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조직에서 공히 준비된 역량을 온전히 갖춘 인재가 부족한 현상이 발생할 것이 너무도 빤하다. 이런 종합적인 성과 관리 시스템을 통해 그 갭을 채우는 것이 효율성과 효과 측면에서 최적의 옵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운용적인 측면에서 이미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보여준 새로운 개념의 성과 관리 시스템에서 힌트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먼저 단순한 성과지표(KPI)만 수립하고 이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식적 성과지표를 넘어 과정과 상황까지 균형 있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술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이 보여준 상황에 대처하고 해결하는 적응적·대응적 성과 그리고 그 가운데 발휘한 리더십과 태도 등을 같이 포함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직원들의 공감대를 중심으로 목표 수립부터 평가 결과 확정과 그 커뮤니케이션까지 그들이 참여해 객관성과 납득성이 최대한 제고돼야 한다. 상시적인 역량 개발 중심의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성과 관리 시스템이 단순한 평가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전체 목표 달성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조직 구조를 애자일 조직에 맞게 개편해 보는 것이다. 앞서 제기한 대로 단순히 애자일한 조직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조직 구조만 덥석 바꾼다면 아마도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성공적인 애자일 조직을 운영하는 기업을 보면 현장에서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를 바꾸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조직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일환으로 성과 관리 제도에 변화를 주고 조직 구조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선택하곤 했다.

애자일 조직에 맞는 조직 개편의 핵심은 온전하게 자율적인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경영 단위를 구성하는 것, 기능적·위계적 조직이 아닌 유연한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신하는 것, 자율적인 경영 단위 간의 협업을 극대화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포지션을 운영하는 것 등이다.

이 같은 조직 구조의 변화가 전 사 차원에서 큰 범위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실험적으로 작게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어쩌면 우리 현실에서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옵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설령 조직 자체를 완전한 자율 경영 조직으로 바로 변형하지는 못하더라도 일을 진행하는 방식 자체를 권한이 확실히 부여된 프로젝트나 태스크포스 중심으로 운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좀 더 네트워크 형태의 협업이 이뤄질 수 있는 한국 조직에 최적화된 방식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조직도 속에만 갇혀 있는 부서의 ‘사일로(functional silos)’를 벗어나는 것이다.

최정예 특수부대로 구성된 미국의 합동특수부대사령부의 장병들이 2003년 이라크와 전쟁 초반에 자신들만의 조직도에 갇혀 물 흐르듯 유연하게 네트워크 조직으로 움직이는 알카에다에 고전하다가 각 조직을 연결하며 협력을 이끌어 준 브로커 역할을 만들면서 전세를 자신들의 페이스로 이끌었던 사건이나 애자일 조직으로 변신을 선언한 오렌지라이프(구 ING생명)가 조직 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각 독립 경영체 간을 조율하는 트라이브 리드(tribe lead)나 애자일 코치(agile coach) 역할을 만들어 운영하는 모습에서 충분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경영 조류가 한국 기업을 찾아왔던 것처럼 애자일 조직이라는 새로운 선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것이 또다시 한 차례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수그러들지 않는 ‘광풍’이 되게 하려면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핵심 영역부터 대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작더라도 중요한 발걸음을 떼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었고 여전히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건강한 성장은 지속적인 좋은 성과를 통해서만 이뤄지고 그것을 영속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구성원들이 만드는 기업의 문화다. 이 때문에 수많은 기업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관과 일하는 문화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고 하는 것이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도 “문화는 아침 식사로 전략을 먹는다(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고 말한 것을 보더라도 아무리 좋은 전략과 실행 계획과 제도가 있더라도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이자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 문화와 일하는 방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일상의 문화에서 시작해 제도가 바뀌고 조직의 모형도 바뀌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기대해 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6호(2019.08.05 ~ 2019.08.1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