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문재인 정권 창출 산실 역할…
조직 주도한 서훈·양정철 비공개 회동 계기, 한국당은 ‘총선 기획설’제기
다시 주목받는 文정권 산실 '재수회·심천회·광흥창팀'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서훈 국정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양정철 원장의 비공개 회동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선거 후보 캠프에서 대선 프로젝트를 주도한 조직들이 주목받고 있다. 재수회(再修會)․심천회(心天會)․광흥창팀 등이 대표적이다.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3.53% 포인트 차(51.55% 대 48.02%)로 패배했다. 그런 만큼 문 후보 측은 2017년 19대 대선에선 가용 자원을 총동원했다. 재수회․심천회․광흥창팀도 이런 차원에서 꾸려졌다.

재수회는 2012년 대선 직후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다시 만들자’는 취지로 문 후보 측근 인사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심천회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문 후보를 정책적으로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광흥창팀은 문 후보 캠프 실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마포 광흥창역 인근에 사무실이 차려져 그런 이름을 붙였다.

◆ 자유한국당, ‘총선 기획설’ ‘코드 인사 진원’ 의혹 제기

서 원장과 양 원장은 재수회에서 함께 활동했다. 서 원장은 재수회뿐만 아니라 심천회 멤버이기도 했고 양 원장은 광흥창팀도 이끌었다. 두 사람은 문 후보 대선 프로젝트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이 두 사람의 회동을 단순하게 보지 않는 이유다. 더군다나 서 원장은 정보 기관 수장이고 양 원장은 내년 국회의원 총선 전략을 짜는 ‘컨트롤 타워’ 임무를 맡았다.

특히 양 원장은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핵심으로 통한다. 그는 민주연구원장을 맡으면서 “총선 병참기지 역할을 하겠다”고 한 터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과거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정보 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며 “특히 두 사람 모두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안팎의 여러 조직에서 핵심적인 일을 함께한 만큼 이번 만남 배후에 그런 조직들이 연관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고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하 선거 벙커와 같은 곳에서 여론을 움직이고 선거를 기획하고 있는 것 아닌지 정치 퇴보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고 말했다. 양 원장과 민주당은 이런 의혹에 대해 강력 부인하고 있다.

양 원장은 “기자가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총선 이야기가 오갈 수 있겠느냐. 상식적으로 판단해 달라”며 ‘총선기획설’에 대해 연일 반박했다. 한국당이 서 원장과 양 원장의 사적 만남을 빌미로 강효상 한국당 의원의 외교 기밀 유출 사건을 물타기하고 있다는 게 민주당의 판단이다.

다만 재수회의 역할을 두고선 여당 내부에서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총선 밑그림을 그리는데 친문 실세인 재수회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에서 재수회 소속 실세들이 적지 않다.

서 원장과 양 원장 외에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조윤제 주미 대사,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제19대 문재인 대선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 신현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등이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탁현민 대통령 비서실 행사기획 자문위원도 모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천회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심천회는 2013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 직후 만들어졌다. 심천은 조선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의 어록 가운데 ‘심문천답(心問天答)’에서 따왔다. 마음이 하늘에 물어보면 답을 준다는 뜻이다. 지식인들이 국민의 마음을 간절히 모으면 미래의 소명이 하늘의 뜻에 따라 우리의 마음속에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모임 이름을 이렇게 정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심천회 멤버들과 만나 정치·경제·외교·복지 등 각 분야의 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원장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현 정부 출범 직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에 발탁됐다가 낙마한 조대엽 고려대 교수,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정해구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송재호 국가균형발전위원장,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이 있다.

심천회는 문 대통령이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정책뿐만 아니라 정치적 조언도 했다. 2015년엔 문 대통령에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당정치에서 리더십을 증명하지 않으면 대선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다시 주목받는 文정권 산실 '재수회·심천회·광흥창팀'


◆ “기자가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총선 이야기 할 수 있나”


문 대통령은 2016년 7월 심천회 회원들에게 대선에 대비한 싱크탱크를 만들 것을 요청했다. 3개월 뒤 심천회에서 외연을 넓혀 교수 등 각계 전문가 500여 명을 발기인으로 발족한 것이 ‘정책공간 국민성장’이다.

조윤제 주미대사가 소장, 김기정 전 2차장이 연구위원장, 조대엽 교수가 연구부소장, 서 원장이 안보외교분과위원장을 각각 맡았다. 김현철 전 대통령 경제보좌관, 연세대 교수였던 최종건 현 청와대 평화기획비서관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정책공간 국민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공약 창출의 산실이 됐다. 집권 전반기뿐만 아니라 후반기에도 각 분야 인재풀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광흥창팀은 19대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문재인 대통령 측이 2016년 10월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에 사무실을 내고 가동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면면을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광흥창팀원들은 2012년부터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준비했던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을 중심으로 한 친문(친문재인) 측근 그룹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합류하면서 13명으로 꾸려졌다.

이들은 단순 보좌 차원을 넘어 중요한 정무적 판단, 인물 영입, 선거 전략과 메시지 작성 등 대선 전반을 총괄적으로 기획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을 준비하면서 여의도 금강빌딩에 만들었던 금강팀과 성격이 비슷하다. 금강팀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이끌었다.

광흥창팀 13명 가운데 11명이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에 입성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현 외교특별보좌관), 한병도 전 정무수석(현 외교특별보좌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오종식 연설기획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조한기 제1부속비서관, 이진석 정책조정비서관,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김종천 전 의전비서관,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실 행정관(현 행사기획 자문위원) 등이다.

광흥창팀이 그대로 청와대 요직으로 옮겨 갔다는 말까지 나왔다. 친문 중에서도 친문 실세들이다. 광흥창팀에서 직능을 담당했던 안영배 씨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집권 후반기 국회에서 문재인 정권을 뒷받침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야당에선 적지 않은 비판이 나온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들 조직들이 문재인 정부의 ‘코드 인사’‘돌려막기 인사’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며 “집권 후반기에도 국정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이런 인사 경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