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 칼럼=김한솔 HSG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협상은 어렵다. 상대로부터 자신이 무엇인가를 얻어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상대는 그것을 주기 싫어한다. 그 역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협상에 임한다.
이처럼 가뜩이나 쉽지 않은 게 협상인데 상대가 까다롭게 나온다면 그 협상은 당연히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다. 상대가 까다롭게 나온다면 그에 맞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협상을 더 어렵게 만드는 상대와의 협상법을 함께 찾아보자.
◆적대감 가진 상대에겐 ‘인정’이 필요해
자기가 무슨 제안을 해도 혹은 제안을 하기 전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대가 있다면 어떨까. 마음 같아서야 ‘그만두자’고 해 버리고 싶지만 회사 측이나 혹은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상대라면 그럴 수 없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상대에게 무엇을 주면서 협상을 시작해야 할까’에 대해 생각한다. 작은 양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접근이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뭔가 더 받아내겠다’는 마음을 갖고 적대감을 드러낼 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누군가에게 적대감을 갖는 이유는 다양하다. 과거 어떤 불편한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조직 차원의 또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다. 정말 답답한 것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싫을 때다.
그래서 협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기와 ‘감성적’인 문제로 부딪친 상대와 어떻게 협상을 끌어갈 것인지 여부다.
감성의 문제는 감성으로 풀어야 한다. 그렇다고 문제가 뭐가 됐든 상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라는 식의 입 아픈 얘기는 하지 않겠다.
한 가지 사례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1998년 에콰도르와 페루 간 50년 넘게 이어져 온 영토 분쟁이 해결됐다. 이 문제를 맞닥뜨린 사람은 대통령이 된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에콰도르의 하밀 마후아드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그의 협상 상대는 8년간 페루를 이끌어 오고 있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었다.
그 누구도 이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갖고 있던 두 나라의 문제를 선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짜’ 대통령이 풀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마후아드 대통령은 후지모리 대통령을 처음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을 1주일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8년이나 페루를 이끌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이번 협상에서 선배님의 노하우를 많이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자국의 의사를 강하게 어필해도 시원하지 않을 판에 상대에게 배우고 싶다니 말이다. 하지만 후지모리 대통령의 경륜을 인정한 마후아드 대통령의 접근 덕분에 두 정상 간의 합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게 ‘감성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바로 상대에 대한 ‘인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게 거창한 성과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이 몰랐던 지식이나 하지 못한 경험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인정할 ‘거리’는 있다.
자기에게 적대감을 가진 사람에게 줘야 할 것도 물리적 양보보다 감성적 인정일 때가 많다. 까다롭게 구는 구매 책임자에게 이렇게 물어 보면 어떨까.
“담당자님이 저보다 관련 경험이 훨씬 더 많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는데 이런 상황에서 담당자님이라면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조언을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물론 이렇게 한 번 묻는다고 상대가 모든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친근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너무 그렇게 까다롭게 생각하지 마시고 제가 제안 드린 안을 잘 좀 검토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라는 게 있다. 도움을 받았을 때보다 자기 도움을 준 사람에게 더 큰 친밀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뇌 과학과 연관돼 있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주게 되면 뇌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싫어하는 상대에게 선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인지부조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뇌는 이미 벌어진 행동, 즉 무언가 베풀어 준 것은 바꿀 수 없으니 상대에 대한 인식, 즉 싫어한다는 인식을 바꾸고자 한다.
그래서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었으니 내가 뭔가 베풀어 준 거야’라는 식으로 정리해 버린다. 적대적 관계의 사람과의 협상을 앞두고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한 번 해 보자. 상대로부터 자신이 어떤 ‘작은’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도움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든 ‘인정’을 표현하자. 상대를 인정할 것은 아주 많다. 상대의 풍부한 경험일 수 있고 업계 관련 지식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기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상대가 중시하는 가치로 ‘환산’하라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 협상을 하다 보면 ‘가격 조건’만 주장하는 상대를 만날 때가 종종 있다.
“좋은 것 다 알겠는데 비용이 맞지 않아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올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소연한다. “가치를 봐야 하는데 돈 생각만 한다”고 말한다.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방 협상자가 회사에서 부여 받은 역할이다.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상대를 바꿀 수 없으니 달라져야 하는 것은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자신의 태도다.
답은 간단하다. 가격 조건만 따지는 상대 관점에서 ‘리프레이밍(re-framing)’하는 것이다. 우리의 강점을 상대 관심사, 즉 ‘비용’ 관점에서 설명해 주라는 것이다. 구체적 상황으로 설명해 보자.
당신이 원재료를 납품해야 하는 영업 담당자라면 협상장에 나온 구매 담당자에게 우리 제품이 경쟁사 것에 비해 품질이 좋다며 불량률·만족도 수치 등이 정리된 자료를 박스 채 들이 밀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이들에겐 “원재료가 좋기 때문에 완제품의 불량률이 줄어 생산원가가 줄어든다”고 설명해야 한다. 혹은 “원재료 문제로 반품 이슈가 없어 제조비용이 낮아진다”고 알려줘야 한다.
조금 다른 상황을 보자. 생산 장비를 판매하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생산 편의성이나 속도 등의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장비를 사용하기가 쉽기 때문에 장비 오작동에 따른 수리비용이 없다”거나 또는 “장비 운용 교육비가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혹은 “생산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해 줘야 한다.
자신이 줄 수 없는 가치, 다시 말해 상대가 표면적으로 요구하는 ‘비용 할인’을 받아들이라는 게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강점을 상대가 중시하는 가치로 ‘환산’해 제시하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제안이 가진 ‘단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협상 컨설팅을 하다 보면 가격 조건 등을 정할 때 ‘자신이 들인 인풋’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우리의 노력을 생각도 하지 않고 비싸다고만 한다’며 불평한다. 미안한 얘기지만 자신의 노력은 가격과 별 상관이 없다. 가격은 상대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정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가 중시하는 가치를 어떻게 만족시켜 줄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렇게 안건을 리프레이밍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제삼자를 활
용하는 게 좋다. 영업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고 하는 제약 영업은 대형 병원에서 처방되려면 구매팀의 결정이 필요하다. 이들의 관심사는 역시 ‘비용’이다.
하지만 의약품은 비용 외적인 경제적 지원 등을 해 주는 게 어렵다.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제삼자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의사다. 모든 처방은 결국 의사에 의해 이뤄진다.
의사들이 ‘환자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구매팀이 ‘비용 문제로 어렵다’며 마냥 버티기 힘든 상황이 생긴다. 또 다른 제삼자는 환자다. 치료를 위해 더 적합하고 좋은 약이 있는데 병원에서 처방해 주지 않는다면 환자들은 그 병원을 선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환자로 하여금 병원에 일종의 ‘압박’을 하도록 할 수도 있다.
협상은 이슈 싸움이다. 하지만 이슈가 전부는 아니다. 상대가 자기에게 어떤 감정을 갖느냐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돌릴’ 수 있느냐가 때로는 더 중요하다.
그럴 때는 항상 상대를 생각하자.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걸 자기가 어떻게 들어줄 수 있을지 찾아보자. 협상은 덜 주기 위해 경쟁하는 싸움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