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투자자 불안감 극단에서 벗어나는 시기…후퇴보다 전진 염두에 둬야


[한경비즈니스 칼럼=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주가가 강하다. 경제지표도 좋지 않고 기업 실적도 기대에 못 미치지만 코스피지수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인식됐던 2100을 넘어선 이후에도 굳건하다. 여전히 조정 위험에 대비하자는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상승세가 하락 반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연초 이후 주가가 강세를 보일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 ‘낮아진 기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의 확산 봉합되는 시점

주가는 기대와 숫자와의 힘겨루기다. 기대가 높으면 숫자가 잘 나와도 주가가 나아가지 못하지만 기대가 낮으면 숫자가 그냥 그래도 주가는 전진한다.

물론 주가 상승이 낮은 기대만에 힘입은 것이었다면 지속되기 힘들다. 향후 경기와 실적에 대한 신뢰 회복이 수반돼야 ‘주가의 선행성’이라는 전형적 패턴으로 진행될 수 있다.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완화돼야 기대치가 정상 경로에 들어서고 위험신호가 개선되는 흐름이 지속될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분쟁,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 등 매크로 불확실성이 당장 수면 아래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증시는 경제학자들이 그리는 합리적 세계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더 일반적인 정글이다. 너무 많은 변수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상황’과 ‘불확실성’은 다른 것이다. 현재 각 경제 주체의 심리 상태가 불안하다고 해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시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2018년 12월 중국 차이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7을 기록하며 모두 기준선(50)을 밑돌았다. 2019년 첫 거래일 시장에 비보가 전해졌고 1월 3일 코스피지수는 2000을 깨고 내려갔다. 차이신 제조업 PMI의 서베이 대상 대부분은 민간·중소기업으로, 중국의 수출 경기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IT·소재·산업재’ 주목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내 중소기업의 부진은 글로벌 경제의 하방 압력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왔다. 차이신 제조업 PMI의 부진은 글로벌 경기 부진 우려를 반영한 것이지만 실상 더 큰 문제는 신용 경색이다.

중국 민간 기업들에 대한 상업은행들의 대출 비율은 25~35% 수준이다. 2017년 말부터 이어진 과도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은 그림자 금융의 증가 추세를 늦췄지만 민간·중소기업들의 신용 경색 문제를 야기했다.

결국 중국 정책 당국은 지난해 11월 중순 대출 쿼터제를 통해 충분한 유동성 채널을 확보했다. 특히 상업은행은 1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시 지급준비율(지준율) 특별 우대 조치를 추진했고 두 차례의 지준율 인하 방안까지 발표했다. 당국의 이 같은 완화적 통화정책 스탠스에 따라 중소기업들의 신용 경색 문제는 점진적으로 후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중국의 지표도 점진적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 2018년 12월 미국 공급자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는 54.1로, 2016년 11월(53.4)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직전 달인 11월 대비 5.2%포인트 하락으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큰 월간 하락 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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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규 수주 부진은 우려를 키울 만했다. 신규 수주가 11%포인트 하락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신규 수주와 재고지수 간 차이가 마이너스 0.1%포인트로 역전된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었다.

하지만 미국 ISM 제조업지수의 급락 역시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ISM 제조업 PMI와 유사하게 움직이면서 시기적으로 먼저 발표되는 필라델피아 중앙은행(Fed) 서베이지수는 1월 지표가 17.0으로 전달(9.1) 대비 상승했고 아직 ISM 제조업 PMI가 기준선을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 분쟁 봉합 국면

미국 경제 주체들이 자신감을 잃어가자 미국 Fed의 발검음도 빨라지는 추세다. Fed의 베이지북에서도 대부분 지역에서 경기에 대해 낙관적 기대가 이전에 비해 약화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리처드 클라리다 Fed 부의장을 비롯한 위원들도 Fed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위원 가운데 매우 매파적인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 Fed 총재마저 당분간 추가 금리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며 Fed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따라서 Fed는 올해 하반기에 금리를 1회 인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차이신 제조업 PMI와 미국 ISM 제조업지수의 공통점은 서베이 데이터에 근거한 경제지표라는 점이다. 서베이 경제지표는 말 그대로 설문 조사 데이터에 근거한 지표다. 조사 대상자의 주관적 판단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경기가 악화하는 국면에서 빠르게 경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경기 수준과 위치는 파악하기 힘들다. 한마디로 서베이 지표만으로는 경기에 대한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서베이 지표와 달리 경제심리지수(ESI)는 실제 발표된 경제지표가 시장 전망치에 얼마나 부합했는지를 지수화한 지표로, 기대와 실제 지표와의 괴리를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ESI가 플러스면 예상치를 웃돌아 긍정적 상황, 반대로 마이너스면 예상치를 밑돌아 부정적 상황인 것을 의미한다. 실제치와 예상치의 괴리를 가지고 지수화했다는 점에서 지표 자체가 경기의 국면 전환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기대와 실제 지표와의 현의 충족 여부를 ESI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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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글로벌·미국·중국 ESI는 각각 마이너스 24.3, 마이너스 23.8, 마이너스 27.6으로 모두 전월 대비 하락했다. 12월 ESI의 전월 대비 급락은 여전히 기대치에 비해 실물 경제지표가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마이너스권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실물 지표는 더욱 악화할 것이고 그에 따른 경제지표 부진이 뉴스 헤드인을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표가 악화될수록 정책 강도는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의지가 확고하고 중국 역시 지준율 인하, 지방 특정 채권 발행 확대 등 완화적 정책을 내놓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을 초래한 경제지표 부진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G2 국가의 완화적 정책 스탠스 강화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눈높이 조정이 더 진행되겠지만 주가의 선행성을 감안할 때가 됐다. 여전히 기대보다 우려가 지배하는 구간이지만 제기되는 위험 요소들은 익숙한 반면 펀더멘털 개선 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너무 인색하다. 주가는 기대와 희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많은 이가 시장을 좋거나 나쁘게 보고 있을 때’ 오히려 그 반대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게 낫다.

팔 사람이 이미 많이 판 섹터의 비율을 다시 높일 필요가 있다. 상반기만 놓고 보면 좋아서 오른 곳이 아닌 더 이상 나빠질 곳이 없는 업종(IT·소재·산업재)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낮아진 기대치대로 실적은 악화됐고 주가도 급락했다.

하지만 실적이 예상대로 나빠졌다는 것이 확인됐다면 주가는 이미 돌아섰을 가능성이 높다. 기정사실화(페타콩플리)됐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중 무역 갈등이 서서히 봉합돼 간다는 시나리오를 택했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는 무역 분쟁의 피해를 반영해 섹터에 대한 리스크 테이킹이 정당화된다.

2018년 하반기 이후 매크로 불확실성의 확대 국면에서 경제 주체와 시장 참가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해 있다. 바닥은 매수가 늘어서가 아니라 매도가 진정될 때 출현한다. 외국인은 2018년에 충분히 팔았고 이제 사고 있다. 국내 기관들의 주식 비율도 높지 않다. 지금은 후퇴보다 전진을 염두에 둘 시기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1호(2019.02.11 ~ 2019.02.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