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지식과 경험 원조가 더 중요하죠"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후진국에서 원조 제공국으로 변신한 유일한 나라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으로서 개발도상국의 국제적 공적 원조에 기여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1983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부설 특수 전문대학원으로 출발한 KDI국제정책대학원은 경제·사회정책 분야를 중심으로 개발 전략과 노하우에 목말라하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 관계자들의 요람으로 성장했다. 전홍택 원장은 “여러 개도국에서 한국의 발전 배경과 정책에 관심이 지대하다”며 “다양한 지식 공유 사업을 통해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원장은 1990년부터 KDI에 몸담아 온 동북아시아 경제·금융 및 정책 전문가다.
전홍택 KDI국제정책대학원장
대학원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KDI를 모태로 1998년 3월 55명의 학생들과 함께 첫 학기를 열었습니다. 경제 개발 자문 기관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학원 석·박사과정만으로 이뤄진 정책학 분야에 특화된 대학원이죠. 특히 경제·사회정책 분야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학생 수 등 현황이 궁금합니다.
“올해 입학생 400명 중 석사과정이 395명, 나머지가 박사과정입니다. 정책학·개발정책학과 함께 올해 신설된 공공관리학 등 3개 과정에 특화돼 있죠. 처음 문을 열 때부터 국제적 감각을 지닌 정책·개발 분야의 세계적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현재 학생의 반 정도가 개도국 출신입니다. 자국 정부나 공공 기관, 비정부기구(NGO) 등 공공 분야에 경험이 있는 인재들이죠. 모두 자국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모티베이션이 강한 분들입니다. 한국의 발전 배경과 정책에 관심이 무척 많아요. 지난 17년간 모두 113개국의 학생들이 찾았습니다.”

교학 업무 외에 개도국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식 공유 사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1년에 80여 개 개도국에서 찾아오는데, 사실 이들의 관심은 단순한 물적 원조가 아닙니다. 차관 등 물적 원조의 효과가 생각만큼 없다는 게 국제사회 공적개발원조(ODA)의 트렌드죠. 원조 받는 나라가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지식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경제 발전과 성장에 자본뿐만 아니라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이 요즘 학계의 인식이죠.”

지식 공유 사업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기획재정부에서 만든 지식 공유 프로그램 등이 널리 알려지면서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번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 회의에서도 지식 공유 사업이 의제 중 하나였죠. 이미 G20·OECD·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에선 개도국 대상의 지식 공유 사업에 한국이 가장 적절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선진국이 100~150년 걸린 성장을 변변한 자원도 없이 인적 개발 중심으로 몇 십 년 만에 이뤄낸 유일한 사례죠. 한국이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도 강국으로 갈 수 있는 대표 브랜드가 된 것이죠.”

구체적인 지식 공유 사업 내용은 무엇입니까.
“KDI대학원의 개도국 대상 원조 사업의 핵심이 바로 지식 공유입니다. 먼저 한국 발전 경험 종합 데이터베이스(DB)인 K-디벨로피디아(Developedia)가 있습니다. 한국의 발전 노하우와 지식을 국제사회가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설한 온라인 DB로 2012년에 개설됐습니다. 각종 보고서를 비롯해 연구 논문, 주요 통계, 동영상 같은 시청각 자료 등을 3만 건 이상 모았고 매일 30건 이상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누적 방문국 180개국에 월평균 100개국이 이용하고 있죠. 지난해에는 청와대가 지정한 경제 부문 정부 주요 포털로 등재됐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알려져 연구에 매우 유용한 데이터베이스로 쓰이고 있습니다.”

지식 공유 모듈화 사업도 추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지식 공유는 크게 정책 자문과 모듈화 사업, 공동 자문으로 이뤄집니다. 그중 KDI가 정책 자문을, 대학원이 모듈화 사업을, 수출입은행이 공동 자문을 맡고 있죠. 모듈화 사업은 말 그대도 체계적인 정리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케이스 스터디라고 보면 좋은데, 전자정부·새마을운동·수출진흥정책·교육정책 등 사례별·테마별로 자료를 정리해 원클릭 열람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죠. 현재 모듈화 보고서는 경제일반·행정·농어업 등 총 9개 분야에 대해 138개의 국영문 보고서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상태입니다.”

개도국마다 당면한 발전 이슈가 다를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지난 5월부터 한 달간 K-디벨로피디아에서 설문 조사를 진행한 배경이죠. 83개 개도국 출신의 공무원 및 연구자 4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이 자국 정책 입안자라면 어떤 분야에 관한 한국의 정책 및 선례를 가장 배우고 싶은가’를 주제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국가별 발전 단계, 각국이 처한 상황, 리더십 등에 의해 관심 분야가 달랐는데, 한국의 교육이 11%의 응답률로 가장 인기 있는 주제로 꼽혔죠. 그 뒤를 사회 기반 시설, 국제무역 분야가 이었습니다.”

개도국 지원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이 미국·중국 같은 초강대국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들 파워로서 국제 규범을 정하고 금융 위기를 논의하는 핵심 국가의 역할 정도는 해야 하죠. 국제적 파트너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제 원조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닐지라도 한국 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에도 직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국의 전력 산업을 진단해 주고 이를 해결할 컨설팅을 제공했다면 자연스럽게 실무 적임자로 한국 기업이 들어가게 되는 식이죠. 지식 공유 사업은 적은 자본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업입니다.”

앞으로 지식 공유 사업의 목표와 비전이 궁금합니다.
“K-디벨로피디아 사업 등 지식 공유 관련 DB를 좀 더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당면 과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고유의 개도국 지원 프로그램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인적자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개도국 스스로 돈을 내 가며 연수를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도 선진국 모방에 그쳤지만 이제는 한국만의 고유한 프로그램으로 선진국과 경쟁해야 합니다. 인도는 매년 100여 명의 중간 관리자를 해외에 연수를 보내는데, 과거 미국이 도맡았던 것을 지금은 한국이 하고 있어요. 글로벌 미들 파워로서 선진국이 독식하고 있는 컨설팅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야 합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