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상권보다 이면 상권 주목...미군 기지 이전 이후 기대감도

[상권지도⑥ 해방촌·경리단 뒷길] 복잡한 이태원, 경리단길 피해 ‘발길’
“이태원 프리덤 저 찬란한 불빛/ 이태원 프리덤 젊음이 가득한 세상 ”

어느 가수가 노래했듯 이태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화려한 밤 문화다. 오래전부터 국내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이 주로 모여들었던 이태원은 늘 낯설고 새로운 문화가 넘쳐나는 동네였다. 자유를 찾아 모여든 젊은이들에게는 일종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요즘 이태원에서 가장 ‘핫’하다는 해방촌과 경리단길 뒷골목도 다르지 않다. 저녁 어스름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서서히 활기가 돈다. 주택가 사이에서 시끌벅적한 록 음악이 흘러나오고 수제 맥주집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힌다. 수많은 가게를 가득 채우는 건 20~30대 젊은이들의 열기다. 이제 막 그 불씨가 옮겨 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해방촌길과 경리단길은 ‘젊고, 자유롭고, 그래서 더욱 뜨거운’ 곳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강여름.이지연 인턴기자




해방촌길 상권 “주민 5명 중 1명 외국인...수제버거의 메카”

요즘엔 ‘해방촌’이라는 정식 명칭보다 ‘HBC’로 불리는 게 더욱 익숙하다. 해방촌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발음이 어려운 한국어 대신 ‘해방촌’의 앞글자를 따 ‘HBC’라고 부른던 게 그대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만큼 해방촌은 국내를 찾은 외국인들에게 더 친숙한 상권이다.

이태원과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해방촌이 외국인들의 거주지로 각광받기 시작한 건 오래전부터다. 특히 최근 2~3년 새 그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용산구청 용산통계연감에 따르면 2013년 1분기 해방촌이 위치한 용산2가동에 거주하는 것으로 등록된 외국인은 1079명이었다. 이 숫자가 2014년 1분기엔 1109명, 2015년 1분기엔 1315명으로 늘었다. 현재 용산2가동의 전체 인구수는 5829명이다. 주민 5명 중 1명꼴로 외국인인 셈이다.

[상권지도⑥ 해방촌·경리단 뒷길] 복잡한 이태원, 경리단길 피해 ‘발길’


해방촌이 ‘포스트 경리단길’로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5년 사이에 늘어난 외국인을 타깃으로 한 이국적인 레스토랑과 펍(Pub)이 모여들었다. 감자튀김이나 버팔로윙 같은 핑거푸드와 맥주를 판매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중에서도 ‘필리스 펍’은 해방촌 토박이 외국인들의 모임 장소다. 주문도 영어로 하는 것이 더 편하다. 한국어 보다 영어 수다가 더 자연스러운 ‘낯선 분위기’는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분위기를 대표할 만한 업종이 수제버거다. 해방촌 상권이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도 이곳 수제버거의 원조로 손꼽히는 ‘자코비’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다. 자코비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내장파괴 버거’라는 별칭을 얻으며 입소문을 탔다. 현재 해방촌길에는 자코비를 포함해 모두 8개의 수제버거집이 모여있다. 그중 수제버거만 판매하는 가게가 3곳이다. 점포 수로만 보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확실한’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

지난 2012년 자코비에 이어 두 번째로 오픈한 수제버거집 ‘버거마인’을 운영 중인 신영섭 대표는 “지금도 해방촌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상권이라기보다는 경리단길이나 이태원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며 “자코비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에는 내국인이 늘어나긴 하지만 지금도 가게 손님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라며 “그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찾아오는 손님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해방촌의 변화는 급격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진행 중이다. 해방촌에서 20년 정도 거주했다는 K씨는 “2013년 여름 무렵부터 새로운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언덕 위쪽까지 상권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골목 안쪽은 주택가지만 해방촌길을 따라 위쪽으로 새로운 가게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해방촌에 위치한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에는 주택을 상가로 개조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안쪽 골목까지 상가들이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상권이 입소문을 타면서 임대료 역시 상승했다. 2013년 초반까지만 해도 66m²(20평) 전후의 매장 임대료가 월세 150~200만 원, 보증금 2000만 원, 권리금 5000만 원이었다. 현재는 같은 크기의 매장 임대료가 월세 300만 원, 보증금 3000만 원, 권리금 1억 원이다. 이곳에서 4년 째 가게를 운영 중인 S씨는 “2013년을 기점으로 권리금이 2배 이상, 월세는 최소 50% 이상이 올랐다”면서 “가게 임대료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땅값이 올라 이곳에 살던 외국 거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는 66m²(20평) 이상의 매물은 없고 50m²(15평) 전후가 대부분이다.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해방촌 중심거리에 있는 50m²(15평)의 경우 월세 200만 원, 보증금 3000만 원, 권리금 8000만 원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점포를 오픈하고자 하는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4년에 가게를 오픈한 L 씨는 “예전보다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이태원 메인 상권에 비해 저렴한 편”이라며 “이태원 중심지의 후광효과도 얻으면서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싸 이곳에 점포를 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임대료가 뛴 만큼 매출은 늘었을까. 버거마인의 신 대표는 “2013년에 비해 20% 정도 매출이 뛰었다”고 말했다. 인근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찾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장사가 잘 되는 곳은 몇 집 안 된다”며 “상권 자체가 아직은 크지 않기 때문에 ‘늘 사람이 붐비는’ 집은 정해 져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높은 회전율과 매출을 기대할 만한 중심 상권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골목 상권의 구조를 띤 해방촌은 차로 접근하기가 불편하다. 일부러 불편을 감수하고 찾아오는 소비자들이라 그만큼 취향 또한 까다롭기 마련이다. 이들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칵테일 바 투엘브(bar twelve)를 예로 들 수 있다. 테이블 12개를 운영 중인 이 칵테일바 지붕에는 숫자 전광판이 설치돼 있다. 테이블이 하나씩 찰 때마다 숫자에 불이 들어온다. 테이블이 몇 개 비었는지 밖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어 고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곳을 운영 중인 이득수 사장은 “이태원이나 경리단의 북적임을 피해 일종의 ‘얼리 어답터’들이 주로 찾아오는 상권”이라며 “그만큼 ‘화젯거리’를 만들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개성이 강한 가게들이 많다”고 말했다.



해방촌길이 ‘포스트 경리단길’로 꼽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경리단길 맞은 편, 해방촌길이 시작되는 지점과 맞닿아 있는 용산미군기지 부지 때문이다. 2016년 미군기지 이전이 완료된 후 이 부지가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해방촌길 상권이 새로운 도약을 맞을 수도 있다. 이경희 한국창업연구소장은 “용산미군기지 중 약 243m²가 대규모 공원으로 개발될 계획이기 때문에 완공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아직은 먼 얘기지만, 이 일대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상권 축이 경리단길에서 해방촌길로 옮겨 갈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경리단길 뒷골목상권 “추롯 골목, 권리금만 8000만~1억원”



경리단길은 최근 2~3년 사이에 주목 받기 시작한 신흥명소지만 이 지역 상권은 이미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2012년 국군재정관리단이 새로 들어서고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소개된 것이 시작점이었다.

배우 조인성의 동생이 운영 중이라는 경리단길 카페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단골집이 있는 장소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경리단길이 빈번하게 언급됐다. 국군재정관리단에서부터 남산하얏트호텔로 이어진 메인도로는 어느새 빈틈없이 상가가 들어찼고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장소가 됐다. 이태원의 복잡함을 피해 ‘한가롭고 여유로운’ 경리단길을 찾던 사람들이 이제는 새로운 곳을 물색 중이다. 경리단길보다 ‘경리단길 뒷골목’이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이유다.

[상권지도⑥ 해방촌·경리단 뒷길] 복잡한 이태원, 경리단길 피해 ‘발길’


경리단길 뒤편에 숨어 있는 경리단사잇길은 가장 유명한 뒷골목 중 하나다. 약 130m 정도의 짧은 거리에 골목의 폭 또한 매우 비좁다. 이전에는 슬럼화된 느낌이 강해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꽤 많은 맛집이 숨어있는 ‘보물길’이다. 베이커리, 펍, 일본라멘 집 등 이국적인 식당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특히 수제 맥주 가게들이 유명하다. 더부스, 헤픈포어지, 맥파이, 테이크아웃드로잉 등이 대표주자다. 이 일대 ‘피맥(피자+맥주)를 이끌고 있는 더부스는 지난 2012년 ‘한국 맥주가 대동강 맥주보다 맛 없다’는 기사를 쓴 다니엘 튜더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일을 그만 두고 오픈한 곳이다. 지난 10월 이 지역에서 ‘길맥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경리단사잇길은 경리단의 골목 중 가장 임대료가 높은 편이다. 33m²(10평) 기준 보증금 7000~8000만원, 월 임대료는 200만원 정도다. 권리금도 8000만원~1억 원 사이로 비싼 편에 속한다. 인근 K공인중개사 관계자는 “2년 전 권리금이 5000만원 선이었던 것과 비교해 오름세가 가파르다”며 “사잇길이라 저렴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녹사평대로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임대료나 권리금이 경리단길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워낙 짧은 골목이다보니 매물도 많지 않다. 현재 사잇길의 점포수는 약 20여개 정도다. 녹사평대로와 맞닿아 있는 점포의 경우 33m²기준 월 임대료가 350만원까지 치솟았다.



경리단길에서 주택가 안쪽으로 들어서면 이름도 독특한 ‘장진우 거리’가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회나무로13가길에 위치해 있다. 경리단길 메인 도로에서 50m가량 떨어져 있는데다 경리단사잇길과 마찬가지로 길이도 200m를 넘지 않는 짧은 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숨은 골목을 찾아오는 것은 바로 이 길의 이름이기도 한 ‘장진우’ 때문이다. 사진작가 겸 셰프로 일하고 있는 장진우 사장은 이 짧은 길목에서만 현재 10여개의 가게를 운영 중이다. 2011년 문을 연 ‘장진우 식당’을 시작으로, 실내포차 ‘방범포차’, 한식전문점 ‘문오리’, 디저트 전문점 ‘프랭크’, 서양식 전문점 ‘경성스테이크’ 등이다. 식사부터 디저트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아직은 주택가의 분위기가 강하게 풍기는 조용한 골목이라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경리단길과 비교해 약 60~70% 수준이다. 33m²(10평)을 기준으로 월세는 120만~150만원 정도, 보증금은 5000만~7000만원 정도다. 권리금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진우’라는 브랜드가 워낙 강한 곳이다 보니 새로운 가게가 입점하기에는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을 수도 있다.



경리단길 골목상권 중에서도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녹사평대로 46길이다. 일명 ‘추로스 골목’으로 불리는 곳이다. 경리단길의 대표적인 맛집 중 하나인 ‘스트릿츄러스’가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채 100m가 안 되는 짧은 길이다. 이곳은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일명 ‘핑거 푸드’의 집성지다. 추로스, 닭꼬치, 토스트 등 다양한 먹을거리들을 한 곳에서 맛볼 수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이나 여름이면 마치 ‘대만의 야시장’을 방불케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한 손에는 간식, 또 다른 손에는 맥주를 들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간식을 즐기는 사람들로 발디딜틈이 없다. 인근 상인 W씨는 “경리단길을 보러 왔다가 간식거리를 먹으려는 사람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추로스골목은 경리단길 메인도로와 이어지고 하얏트호텔과도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유동인구가 흐르기에 좋은 ‘동선’을 갖추고 있는 골목이라 향후에도 성장 가능성이 높다. 이 거리의 C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올해 들어서면서부터 경리단길 메인 도로보다 녹사평대로 46길을 선호하는 창업 투자자들이 더 많다”며 “이태원에서 가장 잘나가는 곳이라 매물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임대료 또한 빠르게 오르고 있다.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L씨는 “지난 5월 가게를 열 때만해도 권리금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 지역 권리금이 49.5m²(15평) 기준 8000만 원 정도다. 불과 6개월 만에 경리단길만큼 권리금이 뛴 것이다. 보증금은 5000만원~1억원, 월 임대료는 180만원~200만 원이다. 주변 상인들은 녹사평대로46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W씨는 “새로 짓는 건물도 많고 꾸준히 인구유입이 늘고 있기 때문에 특색 있는 거리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골목 상권이 성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화젯거리’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골목상권이 뜨고 지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는 “골목까지 찾아오는 이들에게 차별화된 ‘재미’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며 “골목상권의 특색이 분명해질수록 오래동안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고, 안정적으로 상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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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개조·상가 리모델링 늘듯…독자 콘셉트 중요"

이태원 해방촌길은 경리단길과 접점을 이루는 곳에서 2차로 도로를 통해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로, 대로변에서 주택가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근린 상권 성격이 강한 곳이다. 최근 카페와 레스토랑 등 식음료 업종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제과점·안경점·약국·분식점·세탁소·동물병원 등 1차 상권과 2차 상권을 흡수할 수 있는 곳 일색이다. 주택을 개조하거나 기존 상가 주택을 리모델링해 인기 업종을 입점시키는 상업용 부동산 투자가 인기를 끄는데 해방촌길 역시 향후 이런 모습을 빈번하게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경리단길은 곳곳에 이면 골목과 점포가 관찰되며 점차 뒷길 상권이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이 중 대표적인 곳이 이태원로27길인데, 프랜차이즈 매장은 사실상 전무하며 독자적인 콘셉트를 내세운 업종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외부 상권과 단절돼 있으면서도 임대료 수준이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남산대림아파트와 접해 있는 ‘회나무로13가길’은 신생 거리이며 장진우 골목으로 점차 유명세를 타고 있다. 도보 접근만으로 수요를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에 독립형 중대형 점포가 늘어나기 힘든 구조다. 이 때문에 임대료 시세를 예측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