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강한 데다 내식성 뛰어나, 건축 소재로도 각광

인류가 타이타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공업화에 성공한 이후다. 21세기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타이타늄은 짧은 이용 역사에도 불구하고 초기 응용 분야였던 항공 우주 재료로부터 안경테, 골프채의 헤드, 테니스 라켓, 시계 같은 일상 용품뿐만 아니라 인공관절이나 뼈 같은 생체 금속으로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타이타늄이라는 금속원소의 존재를 인류가 처음 발견한 것은 1790년대 영국과 독일 등에서였다. 이후 1795년에야 이 새로운 금속원소의 이름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 신 우라노스(Ouranos)와 땅의 신 가이아(Gaia)의 자손인 ‘티탄족’의 이름을 따 ‘타이탄(Titan)’으로 명명됐다. 그 이후 각 나라의 원소 명명법에 따라 영국에서는 ‘타이타늄(Titanium)’으로, 독일에서는 ‘티탄(Titan)’으로 명명돼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1790년대 발견된 타이타늄은 금속이 아닌 금속산화물의 일종인 타이타니아(Titania, 일종의 세라믹)의 발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타이타늄은 산소·철 등과의 친화력이 무척 높아 자연 상태에서는 항상 이들과 결합된 상태의 광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금속 상태로 환원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항공 분야가 타이타늄 수요 주도
타이타늄이 금속원소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은 첫 발견 이후 1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1910년대에 본격적으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면서부터다. 미국 RPI(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에서 연구 활동을 하던 매튜 헌터 박사가 1910년 금속 타이타늄을 추출하는 환원 제조 기술인 헌터 제조법(Hunter process)을 개발하고 이후 윌리엄 크롤 박사가 기존의 공법 대비 산소·질소·철분 등의 불순물 함량이 낮은 ‘스펀지 타이타늄’을 제조해 공업화할 수 있는 크롤 제조법(Kroll process)을 개발하고 1940년에 이를 미국 특허로 등록하면서 본격적인 산업화의 계기가 완성된다.
금속원소의 비중은 0.5g/㎤으로 가장 가벼운 리튬(Lithium)에서부터 22.5g/㎤으로 가장 무거운 이리듐(Iridium)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이 중에서 타이타늄은 비중이 4.51g/㎤으로 경금속(輕金屬)으로 구분된다. 타이타늄은 알루미늄(2.71g/㎤)에 비해서는 1.6배 무겁고 철(7.87g/㎤)에 비해서는 60% 가볍다. 타이타늄이 꿈의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비강도(비중 대비 강도)와 내식성이 다른 소재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우수하기 때문이다.
타이타늄의 비강도 특성이 가장 진가를 발휘하는 부문은 항공기용 소재 분야다. 1953년 DC-7기의 엔진 넛셀 및 방화벽에 사용된 것을 시작으로, 이후 Ti-8Mn이나 Ti-6Al-4V 합금이 개발되면서 항공기용 재료로 정착됐다.
1980년대 이전까지 4% 미만이었던 타이타늄 중량 비율은 최근 개발된 보잉의 B787 기종과 에어버스의 A350 기종에는 15% 수준까지 증가했다. 전투기에서는 1970년대 초반까지 10%로 거의 일정했다가 F-14, F-15기에서는 그 사용량이 30%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타이타늄의 전 세계 수요 규모는 2012년 기준 연간 16만7000톤 수준으로 추정되며 이 중 35~40%가 항공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향후 20년간 항공 수송량은 연평균 4.6%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항공기 추가 수요만 4조9000만 달러(약 5830조 원) 규모다.
에어버스 같은 항공기 제조업체는 현재 수주량이 6400대로, 향후 9~10년의 수주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향후 타이타늄 수요는 항공 분야가 주도적으로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타이타늄의 주요 시장은 원자력발전 및 조선·산업용으로 사용되는 열교환기(Heat exchanger) 시장이다. 이 시장은 타이타늄의 주요 특성인 내식성을 적극 활용한 분야다.

인체 트러블 없는 ‘생체 금속’
여기에 사용되는 타이타늄 부품은 일반적으로 0.5mm 두께를 가지는 순타이타늄 판(sheet)을 말아 관(管)을 만들어 사용한다. 관형(管形) 열교환기는 관 바깥쪽에 물·해수 등의 냉각용 액체가 흐르게 하고 관 안쪽에서는 고온의 액체가 흘러가면서 냉매와 고온의 액체가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 열을 교환하게 된다. 여러 개의 관을 다발로 만들어 냉매와 고온 액체의 접촉 면적을 극대화한다.
보통 바닷물을 냉매로 활용하는데 일반적인 금속은 바닷물의 염분에 의해 쉽게 부식되기 때문에 부식 방지를 위해 타이타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중반 이후 국내 타이타늄 수요 중 열교환기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이는 국내 원자력발전 기술 및 중공업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국내 타이타늄 열교환기용 조관 생산 업체들의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타이타늄의 또 다른 강점인 내식성을 잘 활용한 분야는 바로 생체 금속이다. 우수한 강도와 내식성 및 피로 저항성 등의 물리적 성질 때문에 타이타늄은 정형외과와 치과형 보철물, 심장 혈관 계통 의료기기 등의 핵심 소재로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특히 인공뼈로 사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다른 생체용 금속 소재와 달리 생체 섬유조직의 형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몸 안에서 생체 친화성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 개발된 Ti-Zr-Nb-Ta 합급계는 탄성계수가 60PGa 정도로 뼈의 그것과 아주 근접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국내에서도 임플란트 시장의 확대와 함께 타이타늄으로 제작된 임플란트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세계 생체 재료 시장 규모는 약 32조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스포츠·레저 분야도 타이타늄이 각광받는 분야다. 그중에서도 타이타늄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야는 골프 클럽이다. 타이타늄으로 만든 골프 클럽은 1990년 처음으로 상품화됐는데 거의 대부분이 드라이버의 헤드와 퍼터의 일부가 타이타늄 합금으로 생산되고 있다.
골프공을 보다 멀리 정확하게 날려 보내려면 골프 드라이버의 헤드의 반발력이 우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페이스가 얇으면서 강도가 높은 소재가 필요하다. 1990년대 이전까지 통상적으로 상용되던 소재는 감나무(Persimon wood)였지만 경량 고강도 타이타늄이 헤드 소재로 사용된 이후에는 완전히 대체됐다.
안경테도 타이타늄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타이타늄으로 만든 안경테는 고강도와 저탄성으로 변형량이 많아 착용감이 좋고 피부에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고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고급 안경테의 주된 소재로 타이타늄 합금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카멜레온처럼 색이 변하는 구겐하임 미술관
자동차에도 타이타늄이 사용되고 있다. 타이타늄이 자동차에 처음 적용된 것은 1956년 제너럴모터스(GM)에서 시험용 자동차로 제작된 ‘타이타늄 파이어 버드(Titanium Fire Bird) Ⅱ’부터다. GM은 이 차량의 외판을 전량 타이타늄으로 제작했지만 양산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획기적인 콘셉트카로만 기록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타이타늄 생산 업체와 자동차 업체가 협력해 2000년대 다양한 부품들을 개발했는데, 1990년대 중반까지 채용된 부품이 전무했지만 2006년에는 연간 1600톤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타이타늄 가격 불안정 등으로 2007년 1400톤으로 감소했고 급기야 2012년에는 225톤까지 줄어들었다. 자동차 분야의 타이타늄 부품 적용은 원가와 가공상의 어려움으로 사용량이 매우 제한적이며 일부 고급 차종과 경주용 차량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타이타늄이 주목받는 분야는 토목건축 분야다. 비중이 작아 기존 소재 대비 중량을 적게 할 수 있고 양극산화에 의해 고유한 타이타늄 발색이 가능한 높은 의장성과 불연성을 강점이다. 특히 스페인 빌바오에 1997년 건립된 구겐하임 미술관은 소장된 작품보다 타이타늄 외관으로 더 유명하다. ‘메탈 플라워(metal flower)’로 불리며 20세기 최고의 건축물로 찬사를 받는 이 미술관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것으로, 어느 방향에서 어떤 시간에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색상과 모습을 보인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건물 표면을 덮은 타이타늄 덕분으로, 햇빛을 받으면 미술관은 카멜레온처럼 색이 변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외벽은 타이타늄을 0.5mm 두께로 잘라 3만3000여 개를 붙였고 밖에서 주위를 돌며 바라보면 위치에 따라 바다를 항해하는 배처럼 보이기도 하고 타이타늄 외판이 마치 물 밖으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이타늄은 특히 일반적인 건축재가 사용되는 환경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거나 부식되지 않아 보수 유지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이종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인공뼈에서 항공기까지’…타이타늄의 매력
‘인공뼈에서 항공기까지’…타이타늄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