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도면 따라 차량 조립 가능, 미래의 보편적 풍경 될 수도

자동차의 내연기관은 신문으로 따지면 윤전기와도 같은 존재다. 결국엔 버려야 하지만 아직은 버릴 수 없는 골치 아픈 딜레마적 상징이다. 당장의 수익이 창출되는 ‘현금 창고’지만 그것에 집착하면 미래 시장을 꿈꿀 수 없다.
1886년 이후 약 130년을 풍미한 내연기관 자동차의 역사는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은 수소연료전지차와 전기자동차가 유력하다. 두 방식은 친환경적이면서도 내연기관에 비해 부품 수가 대폭 줄어든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차량 제작의 부품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진입 장벽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입 장벽의 해체는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을 예고한다. 그 전조가 테슬라다. 테슬라는 불과 10~20년 전 전기자동차 개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통념을 깨뜨리며 자동차 시장에 돌풍처럼 진입했다. 올해만 5만 대 이상이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테슬라 공동 창업자인 엘론 머스크는 2020년까지 50만 대를 팔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슈퍼차저’ 특허까지 무료로 공개했다. 충전 인프라 구축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전략이다.
구글과 애플도 분주하다. 이들은 이미 자동차 산업에 진입했거나 진입 중이다. 구글은 차량 제조사가 될 생각이 없다고 부인하면서도 디트로이트에서 자율 주행 자동차를 양산하고 있다. 이들 신규 사업자들의 특징은 소프트웨어에서 잔뼈가 굵은 정보기술(IT) 거인이라는 점과 수소연료전지차보다 전기차 개발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내연기관 이후의 주도권을 누가 잡게 될까’라는 궁금증으로 이어지게 된다. 현재로선 어느 쪽이 우위에 설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내연기관의 자리를 모터가 대신하는 순간 신생 기업의 진입이 보다 활발해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자동차 개발 뛰어드는 네이버
얼마 전 중국 선전에서 개최된 메이커페어에선 오픈 소스 전기차가 선보였다. 대단한 기술을 보유하지 않고도 무료로 공개된 설계도면에 따라 차량을 조립하면 실제로 운행할 수 있는 수준의 차량이 뚝딱 만들어진다. 자동차 제조를 DIY 수준으로 끌어내린 사건이기도 했다. 어쩌면 포스트 내연기관의 시대에 보편화할 풍경일지도 모른다.
네이버도 부랴부랴 자동차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네이버는 로보틱스·인공지능 기술과 함께 자동차를 주요 연구·개발 대상으로 꼽았다. 기존에 축적한 기술과 연계하면 네이버판 자율 주행차를 기대할 수도 있다. 물론 네이버도 전기차 모델을 채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자동차는 하드웨어 주도형에서 소프트웨어 주도형으로 서서히 변모하고 있다. 20세기 운송 수단에 그쳤던 자동차는 이제 사용자들의 행위 데이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연결된 디바이스로 바뀌어 가고 있다. 거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사용자의 안전과 편의를 극대화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사용자 경험(UX)을 최적화하는 작업에선 소프트웨어 강자들이 앞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기차는 전자 제품과 소프트웨어 비중이 높아 이들 신생 기업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문득 11년 전 인터뷰가 떠오른다. 당시 민·관 합동 미래자동차사업단을 이끌던 한 고위 인사는 “배터리 성능이 모자라고 배터리 가격을 낮추지 못해 상품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의 예상은 안타깝게도 빗나갔다. 빗나간 예측의 틈을 타 IT 기업들이 전통 자동차 메이커들을 위협하고 있다. “저명하지만 나이가 많은 과학자가 어떤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그의 말은 틀렸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아서 클라크의 명언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이성규 블로터닷넷 매거진팀장
‘오픈 소스 전기차’…자동차도 DIY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