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케이블 TV 및 쇼핑몰 인수, '내수 기업' 함정 벗어나야

‘홀로서기 8년’...확장 기지개 켠 구본걸
홀로서기 8년 차를 맞은 구본걸 LF 회장의 행보에 재계 및 금융 투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구 회장은 의류 업계가 성장 정체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한편 올 들어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LF는 아직 일반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기업이다. 하지만 ‘LG패션’이라고 하면 조금이라도 패션이나 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알 수 있는 이름이다. LF는 1974년 반도패션이라는 이름으로 패션 사업을 시작했다. 2006년 LG상사에서 법인이 분리되면서 패션 전문 기업으로 독자적인 발을 내디뎠다. 2007년 LG에서 계열 분리했고 2014년 LG패션에서 LF로 사명을 바꿨다. 현재 LF는 닥스·마에스트로·헤지스·질스튜어트·라푸마 등 30여 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LF를 이끄는 구 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다. 아버지는 구인회 회장의 차남 고 구자승 전 LG상사 사장으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사촌 동생이다. 구본걸 회장이 LG와 계열 분리한 2007년만 해도 LF의 매출은 7000억 원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간 구 회장은 LF를 착실히 키웠다. 2014년 말 기준 LF의 매출은 계열 분리 당시의 두 배인 1조4600억 원으로 성장했다.

의류에서 라이프스타일로 무게 이동
LF는 사명 변경 후 내실을 다지는 데 무엇보다 많은 힘을 썼다. 이유는 금융 위기 이후 지속된 경기 악화로 패션업 전반의 실적 성장이 정체됐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소비 심리가 냉각된 최근 2~3년간의 패션업은 더 힘들었다. 실제로 LF가 거둔 지난해 매출(1조4600억 원)은 전년보다 1.7% 줄어든 숫자다.
하지만 LF는 ‘내실 경영’으로 어려움을 돌파했다. LF의 영업이익은 3년째 늘고 있다. 2014년 말 기준 영업이익은 956억 원으로 전년보다 오히려 12.8% 늘었다. 영업이익률 역시 2012년 7%에서 지난해 8%로 늘었다. 이익이 늘어나니 재무 건전성도 좋아졌다. LF의 현재 보유 현금 자산은 2조 원에 이른다. 즉 그간은 과감한 투자보다 내실 다지기에 나섰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시작하려는 단계인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LF는 올해 상반기에만 5개가 넘는 굵직한 신규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인수·합병(M&A)이다. 구 회장은 5월 쇼핑몰 기업 트라이시클과 라이프스타일 전문 채널 ‘헤럴드동아TV’를 잇달아 인수했다.
목표는 두 가지다. 구 회장은 그동안 백화점 중심의 오프라인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을 꾸준히 주문해 왔다. 그 대신 온라인 비즈니스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트라이시클을 인수, 성장 잠재력이 큰 온라인 플랫폼을 확보해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과거 60% 이상이었던 LF의 백화점 매출 비율은 현재 40%까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이나 아울렛 등 성장하는 판매 채널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이런 투자는 제품 가격 현실화에 따른 매출 증대 그리고 마진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LF가 인수한 트라이시클은 2001년 설립된 온라인 쇼핑몰 ‘하프클럽닷컴’이 핵심이다. 트라이시클은 트렌디몰 ‘오가게’, 유아·아동몰 ‘보리보리’, 스포츠·아웃도어 전문 몰 ‘아웃도어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하프클럽닷컴은 2001년 설립된 온라인 1위 패션몰(랭키닷컴)이다. 트라시클에는 현재 1700여 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가입 회원 수만 400만 명에 달한다.
LF는 동시에 기존의 의류 및 잡화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종합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헤럴드동아 인수는 이 전략의 핵심이다.
헤럴드동아는 1999년 첫 방송을 시작한 여성 라이프스타일 전문 케이블 방송인 헤럴드동아TV와 함께 2007년 글로벌 패션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패션스쿨 ‘디아프(DIAF)’를 운영하고 있다. LF는 이 두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콘텐츠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 LF는 향후 헤럴드동아TV의 다양한 콘텐츠를 자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채널들과 제휴함으로써 점차 치열해지는 플랫폼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주력 부문의 성장 둔화는 ‘숙제’
라이프스타일 사업의 일환으로 직접 운영하는 아울렛 사업에도 진출했다. 구 회장은 계열사인 LF네트웍스를 통해 전남 광양시에 교외형 아울렛을 내년까지 완공하기로 했다. 이 밖에 프랑스 명품 침구 브랜드 ‘잘라’와 독점 수입 계약을 했고 내년엔 침구 업체 파란엘림과 손잡고 ‘헤지스’에 침구 라인을 론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행 용품 전문 편집 숍인 ‘라움보야지’를 론칭하고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구 회장은 이와 함께 마진율 확보에도 주력 중이다. 의류에 비해 마진율이 높은 가방·신발·지갑 등 잡화 액세서리 부문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구 회장은 최근 벨기에 프리미엄 가방 브랜드인 ‘헤드그렌’을 론칭, 지난 7월부터 국내시장에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헤드그랜은 10~30대 남녀 고객을 주 타깃으로 10만~20만 원 수준의 실용적인 제품을 내놓았다.
또 지난 3월부터 유명 신발 브랜드인 ‘버켄스탁’의 국내 판권을 확보해 공식 수입하고 있다. 버켄스탁은 200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의 신발 업체로, LF가 공식 수입 및 영업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기 전부터도 국내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인기를 끈 브랜드다.
업계에서는 구 회장의 이러한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경기 부진으로 남성복과 여성복이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진이 많은 액세서리 카테고리를 확대한 것은 옳은 변화”라며 “온라인몰의 활용 역시 백화점 수수료, 재고 관리 비용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제품 회전율이 높아 수익성이 좋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직 LF가 확실한 턴어라운드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LF가 최근 국내에서 나타나는 의류 양극화 소비에 불리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매출의 57%를 차지할 정도로 주력 분야인 남성복과 스포츠·캐주얼 부문 매출이 부진한 상황이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남성복과 스포츠 캐주얼 부문은 성장성이 둔화하는 대표 분야”라며 “실적 개선을 뚜렷하게 이룰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닥스·헤지스 등 기존 LF의 브랜드는 이미 시장 안착화가 진행된 브랜드”라며 “이 카테고리는 또 최근 고가(백화점·아울렛)와 저가(SPA 의류)로 양분화되는 트렌드에 가장 취약한 중가 가격대 포지셔닝이어서 성장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LF는 내수 기업으로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며 “좀 더 적극적인 장기 성장 전략을 쌓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돋보기> 구본걸 LF 회장은…
구본걸 LF 회장은 1980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를 마쳤다. 미국 회계법인 쿠퍼스앤드라이브랜드 근무를 시작으로 LG증권 회장실 재무팀, LG전자·LG산전(현 LS산전) 등 계열사를 두루 거치면서 잔뼈가 굵은 재무통으로 활약했다. 이후 2004년 LG상사 패션 부문장을 맡으면서 패션 업계에 발을 디뎠다. 2006년 LG패션이 LG상사에서 법인 분리되면서부터 독자적으로 LF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