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출 ‘오매불망’하던 SC의 10년…국내 CEO 임명으로 위기 벗어나나

SC 제일지점 매각…역사로 남은 제일 은행
지난 3월 서울 남대문에 있는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제일지점 건물이 신세계그룹에 매각됐다. 제일은행의 전신으로, 1929년 설립된 조선저축은행 시절부터 지금의 공평동 본점으로 이전하기 전인 1987까지 본점이었던 건물이다. SC은행으로서도 의미가 큰 건물을 매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은행 측은 “신세계그룹과 손잡고 유통 채널을 이용한 새로운 금융을 선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 떨어져 나가면서 제일은행의 흔적은 한국 금융사에서 그만큼 씻겨 내려가게 됐다.

제일은행은 이른바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 중에서도 잘나가던 축에 속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외환 위기가 오기 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다른 은행과 마찬가지로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 기업 부도로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 하는 부실 은행으로 전락했다. 대우그룹의 주거래 은행이 제일은행이었고 한보·기아 등의 재벌 그룹의 부도가 잇따르면서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됐다.


제일은행, 우여곡절 끝 뉴브리지에 매각
한국에 돈을 빌려준 IMF는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의 문을 닫으라고 정부에 아우성을 쳤다. 1997년 말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에는 뱅크 런(대량 예금 인출 사태)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규모가 컸던 두 은행의 문을 닫아버리면 그렇지 않아도 쓰러져 가는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정부는 일단 공적 자금을 투입해 살리고 해외에 제일은행을 매각하겠다고 IMF에 약속한다.

관심을 보인 곳은 홍콩상하이은행(HSBC)이었다. 하지만 인수 지분이 문제였다. HSBC는 지분 100%를 인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도 나중에 제일은행이 정상화됐을 때 공적 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지분을 갖고 있어야 했다. 더구나 자산이 부실화되면 되사주는 ‘풋백옵션’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지분 100%를 모두 양보할 수는 없었다. 손해를 보장해 주는 만큼 이익에 대한 기대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훗날 정부가 부실채권 매입, 출자 등의 형태로 제일은행에 최종적으로 투입한 공적 자금은 17조8000억 원에 이른다. 이 자금을 고스란히 포기하라는 게 HSBC의 요구였다.

이 상황에서 급작스레 나타난 게 사모 펀드 뉴브리지캐피털이다. 뉴브리지는 지분 51%만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로서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HSBC는 세계 굴지의 은행, 뉴브리지는 단기 투자 펀드였다. HSBC에 파는 모양새가 더 번듯한 게 사실이었다. 당시엔 선진 금융 기법을 국내에 도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컸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결국 지분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100%에서 80%, 72.5%까지 인수 지분을 양보하긴 했지만 정부는 결국 49%를 확보할 수 있는 뉴브리지와 1998년 12월 31일 매각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뉴브리지와 협상을 최종 마무리한 것은 1999년 가을이다. 자산의 평가 방식과 가격을 깎아 주는 문제를 두고 협상이 길어졌다. 이 때문에 당시 DJ 정부에서는 매각이 빨리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그해 7월 방미(訪美)를 앞두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협상을 지휘했던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쓴 책 ‘위기를 쏘다’에도 이 같은 증언이 실려 있다.

“금감위원장실로 문제의 팩스가 들어온 것은 1999년 6월 하순께였다. 읽어 보니 기가 막혔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방미 전에 제일은행 매각이 원활히 성사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십시오.’ 청와대 한 수석급 인사가 보낸 것이었다. DJ의 조바심을 모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귀띔이 들어왔다. 청와대 공보수석실의 박선숙 비서관도 그중 하나였다. ‘위원장님이 제일은행을 팔지 않으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어요. 금감위 관료들이 사보타주(sabotage:태업)한다고도 하고….’ 한마디로 ‘이헌재가 제일은행 매각을 방해하고 있다’는 얘기가 청와대에 퍼져 있다는 것이었다. DJ가 수석들에게 ‘왜 매각이 빨리 안 되느냐’고 대놓고 짜증을 냈다는 얘기도 들렸다. 청와대는 국제 여론이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이미 ‘한국이 구조조정 의지가 없어 매각을 미루고 있다’는 외신이 나왔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압력이 들어오는 듯했다. 뉴브리지는 미국 의회에서 영향력이 컸다. 공동대표인 리처드 블럼의 부인이 미 민주당 상원의원 다이앤 파인스타인이었다. 또 다른 공동대표인 데이비드 본더먼은 공화당 실세라고 했다.”

나중에 국내 언론에는 백악관이 뉴브리지를 지원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1997년 7월 정상회담에서도 제일은행 매각이 거론됐다는 것이다.


뉴브리지는 외국자본 ‘먹튀 논란’의 원조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뉴브리지는 제일은행을 인수했다. 뉴브리지가 들인 돈은 ‘단돈’ 5000억 원. 지분 50.99%를 인수하는 조건이었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2005년 4월, 제일은행은 영국계 SC그룹에 매각된다. 이때 보유 지분을 팔면서 뉴브리지가 거둔 매각 차익은 약 1조1500억 원이다. 지금은 외국계 자본 ‘먹튀’의 대명사로 론스타가 호명되지만 따지고 보면 먹튀 논란의 원조는 뉴브리지였다. 뉴브리지의 먹튀 논란은 곧 정부의 ‘헐값 매각’ 논란이었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5000억 원이라는 ‘푼돈’을 받고 ‘그 좋은 은행’을 왜 팔았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게다가 당시 뉴브리지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한 여론은 더 뜨거워졌다(국세청은 나중에 세무조사를 통해 뒤늦게 세금을 부과했다).

정부가 제일은행에 투입한 돈은 약 17조8000억 원. 이 중 정부가 떠안았던 부실채권을 되팔고 SC그룹에 정부 지분을 넘기면서 회수한 돈은 12조3000억 원 정도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70% 정도인 제일은행의 공적 자금 회수율은 서울·조흥은행의 60.9~63.4%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SC 제일지점 매각…역사로 남은 제일 은행
회수하지 못한 자금은 약 5조3000억 원이다. 이 돈을 어떻게 봐야 할까.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현재의 잣대로만 위기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판단하는 것도 부당하다. 그렇다고 당시의 잣대로만 과거를 무조건 옳았다고만 하는 것도 건강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배울 게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어느 쪽이든 당국자의 고뇌는 한 번쯤 곱씹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다시 이헌재 위원장의 책 속 증언이다.

“매각 작업의 중압감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른다. 나는 가까운 몇몇 직원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제일은행을 팔면 내가 죽고 못 팔면 나라가 망한다.’ 아무리 비싸게 판들 팔린 은행이 살아나고 나면 판 사람은 매국노로 몰린다. 당시 얼마나 다급했는지, 그 은행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벼랑 끝 상황은 과거일 뿐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멀쩡한 은행을 왜 헐값에 팔았느냐’고 뒤집어씌우기 일쑤다. 그렇다고 안 팔 수도 없다. 국제사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시장이 또 흔들린다. 결국 내가 직접 나서야 했다.”

뉴브리지로부터 제일은행을 인수한 곳은 영국계 SC은행이었다. 총 매각 대금은 약 3조4000억 원. 뉴브리지로부터 지분 48.56%를, 예금보험공사로부터 48.49%, 재정경제부로부터 2.95%를 인수했다. 정부가 제일은행을 뉴브리지에 매각할 당시 맺은 계약에 따라 예보와 재경부는 보유한 지분을 같은 값에 팔아야 했다.

SC그룹은 이전부터 한국의 은행 인수에 관심이 많았다. SC은행은 제일은행 인수 이전 한미은행 인수전에서 씨티그룹과 맞붙었다. 2003년 말 칼라일이 한미은행 지분 매각을 추진할 당시 SC는 한미은행의 2대 주주였다. 삼성그룹이 갖고 있던 지분 9.76%를 매입한 것이다. 제일은행 인수 전에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은행의 지분을 매입하며 아시아의 교두보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많았던 SC는 칼라일이 지분 매각 계획을 밝히자마자 인수 의욕을 보였다.

강력한 의지를 보이며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꼽히던 SC는 씨티그룹에 고배를 마시게 되지만 “예식장을 잡았다고 반드시 신부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카이 나고왈라 SC그룹 아시아지역 대표)”는 말로 한국 은행권 진출을 위한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박종복 행장, 옛 제일은행 모습 재현할까
SC는 이듬해 제일은행 인수로 드디어 그 결실을 봤다. 경쟁자는 HSBC. HSBC는 뉴브리지와의 경쟁에 이어 다시 한 번 제일은행과 연결됐다(서울은행·한미은행 인수 실패에 이어 나중에 외환은행 인수전에서도 막판 결렬된 것을 보면 HSBC는 한국 은행 인수와 인연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도 SC는 HSBC에 밀리고 있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었다. 언론에는 ‘HSBC, 제일은행 사실상 인수’ 등의 기사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칼라일과 뉴브리지 등 외국자본이 국내 은행 인수로 큰돈을 버는 것을 본 SC는 한국 시장에 꼭 진출하고 싶었다. 결국 SC는 가격을 내세워 HSBC에 막판 역전승을 거둔다. SC가 인수한 가격은 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한 가격인 주당 1만5500원보다 높은 주당 1만6511원. 제일은행이 당시 한국 은행권에 남은 마지막 매물이었고 이를 HSBC에 빼앗길 위기에 처한 SC의 절박함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HSBC는 당시 환율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2004년 11월 원·달러 환율이 10% 이상 떨어져 이전 환율로 세웠던 자금 조달 계획이 어그러졌다는 분석이다. 결국 SC는 많은 시도 끝에 한국 은행권에 진입하는 ‘막차’를 타게 됐다. 씨티의 한미은행 인수 당시와 마찬가지로 한국 금융권은 SC의 진입에도 경계감을 보였다. 규모는 씨티보다 작지만 글로벌 경영 기법을 들여와 한국 은행들을 위협할 것이란 얘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일은행 인수 후 꼭 10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은 이 같은 우려와는 거리가 멀다. 실적은 곤두박질쳤고 인원과 점포 감축이 이어졌다. 이에 따른 한국 철수 루머도 끊이지 않는다. 올해 SC그룹은 제일은행 인수 후 최초로 한국인 행장을 선임하며 현지화 전략을 천명했다. 제일은행 출신으로 계속해 현장을 지켜 온 박종복 행장이다. 그는 제일은행의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SC그룹의 한국 시장에 대한 인내심은 어디까지일까. 지켜볼 일이다.


박한신 한국경제 금융부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