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CEO까지 ‘규제 강화’ 촉구…‘긴축 발작’ 두려움 커져

양적 완화가 남긴 부작용 현실화되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촉발될 수 있는 ‘긴축 발작(taper tantrum)’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긴축 발작은 2013년 5월 당시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양적 완화(채권 매입 프로그램)의 단계적 축소를 예고하자 이후 몇 달 간 전 세계 채권 및 주식 가격이 급락하고 신흥국 통화가치가 폭락한 사태를 말한다. 버냉키 전 의장의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은 “긴축 발작이 다시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최근 워싱턴 D.C.에서 열린 글로벌 사모 투자 콘퍼런스에 참석해 “우리는 긴축 발작을 겪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화정책의 정상화(금리 인상)는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Fed가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얘기다.

월가에서도 Fed의 금리 인상이 자칫 자산 가격의 폭락을 불러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UBS·블랙록자산운용·도이치뱅크 등 월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은 5월 18일(현지 시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내용은 각국의 금융 당국이 시스템 리스크를 막기 위해 거시 건전성 감독 조치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시 건전성 감독은 자산 가격의 과열 등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에 의존하지 않고 은행의 자기자본 요건이나 가계의 대출 한도 등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시중 유동성을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 당국의 규제를 받는 대형 금융사들이 집단 성명을 내고 금융 당국에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 CEO는 장기간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막대한 자금이 풀리면서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에 거품이 끼고 있다고 경고했다.


금리 인상 시기 지연…더 큰 혼란 예상
Fed는 금융 위기 발생 후 2008년 말부터 지금까지 6년 이상 기준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0~0.25%(제로 금리)로 유지하고 있다.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한 월가의 컨센서스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6월이었다. 그러나 1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0.2%(연율 기준)로 예상보다 훨씬 악화되고 고용 시장의 회복 속도가 둔화되면서 그 시기가 9월 이후로 미뤄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록 소수 의견이긴 하지만 Fed 내에서도 ‘내년 상반기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Fed의 금리 인상 시기가 올해 연말 또는 내년 초로 미뤄지면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의 금융 완화 시기와 맞물려 금융시장에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일본이 2016년 나란히 긴축에 나서면서 ‘트리플 긴축 발작’에 휩싸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건스탠리는 “유럽의 물가와 성장률이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가 있고 일본은 회복 신호가 혼재돼 있지만 결국 미국·유럽과 함께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초저금리와 양적 완화)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상당한 리스크를 던져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