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개발 대신 유통에 주력…매출 줄어도 이익은 ‘쑥쑥’

‘재무통’ 구본걸, “군살 빼기 성과 냈다”
구본걸(59) LF 회장이 LG패션의 이름을 LF로 변경한 지 벌써 1년 여. 그동안 구 회장이 벌여 온 ‘LF 군살 빼기’가 성과를 내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LF는 구조 전환에 따라 실적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LF의 지난해 매출은 1조4602억 원으로 전년보다 1.7% 줄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956억 원으로 12.8% 늘었다. LF의 영업이익은 3년째 늘고 있다. 2012년 7%에서 지난해 8%로 늘었다. 재무 건전성도 좋아져 보유 현금 자산만 2800억 원에 달한다. 패션 업계 최고 수준이다.

소비 부진 속에서도 경영 정상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것은 구 회장의 전략이 적중한 결과다. 구 회장은 LF의 매출이 최근 3년 동안 1조4000억 원대에 머물러 있는 것을 탈피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꾸준히 사업 재편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사업 재편에 주력
▷제조 브랜드 사업을 축소하는 대신 수입 브랜드 유통을 강화하고 ▷백화점 의존도가 높았던 유통 채널을 ‘온라인과 홈쇼핑’으로 분산하며 ▷계열 내 다른 유통 브랜드와 함께 상품을 구매하는 통합 소싱으로 원가절감에 주력해 왔다. 그 결과 영업이익은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내실’이 다져진 셈이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LF가 그동안 브랜드 확장 전략 때문에 적자 매장이 늘어난 데 대한 선제적 대응에 성공했다”며 “소비 부진 속에서도 경영 정상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 회장은 제조 사업을 축소하고 수입 사업 확대에 나섰다. 지난해에만 7개 수입 브랜드를 도입했고 올해 2개 수입 브랜드(독일 신발 ‘버켄스탁’, 프랑스 침구 ‘잘라’)의 판권을 확보했다.

반면 직접 기획·제조하는 브랜드 사업은 ‘재고 관리’에 힘을 쏟는다. 올해 오프라인 유통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남성복 ‘티엔지티’와 ‘타운젠트’는 매장 출점에 따른 생산량 중 상당 부분을 이월 제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또한 여성복 ‘티엔지티 우먼’을 중단했고 신규 남성복 브랜드 ‘토크’의 출시도 보류했다.

아웃도어 분야에서는 지난해 스포츠 종합 유통점인 ‘인터스포츠’의 적자 매장 8곳을 폐점하며 완전히 접었다. 아웃도어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수익성과 성장성이 떨어지는 브랜드 여럿보다 규모가 큰 대형 브랜드 위주로 시장이 재편됐기 때문이다.

그 대신 라푸마에 집중한다. 라푸마는 LF가 2005년 프랑스 본사로부터 판권을 사들였고 2009년 국내 상표권을 인수해 직접 디자인과 마케팅까지 하는 브랜드다. 구 회장이 LG패션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인수한 브랜드이기도 해 애착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구 회장은 라푸마를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해외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2011년 라푸마차이나를 출범, 중국 내 유명 백화점 매장 위주에서 중국 온라인(티몰)으로 유통 채널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최근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는 동시에 새로운 유통 채널을 개척해 지난해 2000억 원대 매출 규모를 올해 3000억 원대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LF의 유통 채널도 바뀐다. 온라인·모바일로 채널을 다양화하고 LF가 운영하는 편집 숍 등 오프라인 매장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난 5월 8일 LF는 기존에 운영하던 온라인 쇼핑몰과 별도로 ‘트라이씨클’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트라이씨클은 영·유아부터 20~30대까지를 대상으로 국내·해외 유수 브랜드의 이월 상품을 판매한다. 2014년 매출액 532억 원에 영업이익은 9억 원이다. LF는 이번 트라이씨클 인수로 현재 중고가 제품 위주의 온라인 사업을 중저가로, 또 다양한 연령대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재무통’ 구본걸, “군살 빼기 성과 냈다”
나 애널리스트는 “LF는 지난 5년 새 온라인 매출 비중이 15~20% 상승한 반면 백화점 채널 의존도는 과거 65%에서 50% 미만으로 하락했다”면서 “백화점 채널 부진을 온라인이 상쇄하고 있고 자체 온라인 쇼핑몰 비중이 높아 LF의 수익성 제고에도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온라인 유통망 확대는 지난해 구 회장이 직접 온라인 사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신유통 개발팀을 꾸려 사업 영역을 확장해 온 결과다. 오프라인 유통 사업에 더해 성장 폭이 큰 온라인 채널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편집 숍은 LF의 첫 편집 숍인 라움에서 라움에디션·라움보야지·어라운드코너·앳코너 등으로 콘셉트·가격대·연령대가 세분화·다양화됐다.


아울렛 사업도 적극 추진
구 회장은 최근 들어 생활 유통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계열사 LF네트웍스를 통해 교외형 아울렛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LF네트웍스는 전남 광양시에 신규 아울렛을 2016년까지 완공하기로 했다. 패션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패션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매출 외형도 키우겠다는 구 회장의 의지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다. 고 구자승 LG상사 전 사장의 장남이자 구본무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그는 패션 업계에서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1980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를 마쳤다. 미국 회계법인 쿠퍼스앤드라이브랜드 근무를 시작으로 LG증권(현 우리투자증권) 회장실 재무팀, LG산전(현 LS산전), LG전자 등의 계열사를 거치면서 ‘재무통’으로 거듭났다.

재무통으로 잔뼈가 굵은 그가 패션 업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LG상사 패션사업부문장(부사장)을 맡으면서다. 이후 2006년 LG상사 대주주 간 지분 이동 과정을 거치면서 패션사업 부문이 독립 법인으로 분사했고 2007년 12월 계열 분리됐다. 구 회장의 패션 사업에 대한 열정과 비전은 남달랐다. ‘현금 창출 능력’과 ‘투자 여력’을 다양한 패션 사업 분야에 골고루 쏟아부었다. 단순히 옷을 만들고 파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브랜드 관리 회사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구 회장은 브랜드부터 강화하기 시작했다. 반도패션으로 대변되는 남성 패션은 현재 마에스트로·닥스·타운젠트·TNGT 등으로 다양해졌다. 여성복·아웃도어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여성복으로 ‘닥스 숙녀’가 유일했던 LF에 모그·헤지스 숙녀 등 자체 여성복을 강화했고 라푸마를 도입해 스포츠 아웃도어 매출도 끌어올렸다. 다양한 해외 브랜드의 국내 판권도 부지런히 사들였다. 이자벨 마랑, 레오나드, 조셉, 질 스튜어트, 바네사 브루노, 막스마라 등이다.

구 회장의 이 같은 브랜드 포트폴리오 다각화는 2010년 LF가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는 밑거름이 됐다. ‘재무통’에 이어 ‘브랜드 마술사’라는 별칭을 얻게 된 이유다. 구 회장이 LF를 국내 패션 업계 2위 업체로 성장시키면서 강조한 한 가지는 바로 브랜드였다. 그동안 축적한 힘을 바탕으로 그의 브랜드 경영이 어디까지 펼쳐질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진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