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양적 완화로는 한계…‘공정무역’ 내세워 통상 압박 강화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나선다면 신흥국의 수출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때 외화 조달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외환 위기 우려가 높아지게 된다. 세계경제가 악순환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보호무역 기조를 완화하면 신흥국 수출이 증대되면서 외화 조달이 수월해진다. 세계경제의 선순환 구조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 이후부터 초저금리와 양적 완화로 상징되는 비상 대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 같은 목표에 도달하기에는 미흡하다. 올해 1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0.2%로 떨어졌고 실업률을 제외한 시장 참가율, 임금 상승률, 정규직 고용 같이 체감 경기에 더 중요한 질적 고용 지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무역 적자 잣대로 상대국에 압력
하지만 ▷정책 금리 인하 ▷양적 완화 등을 통한 유동성 공급 ▷재정지출 확대 등 전통적인 경기 부양 수단은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추가 경기 부양을 통해 일자리 창출 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이익을 보다 앞세우는 정책 수단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오바마 정부는 출범 초부터 달러 약세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최근 들어서도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의 통화에 대해서는 약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집권 2기 들어서는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을 불러들이는 리쇼링 정책과 함께 미국 제품 구매(buy ‘made in USA’) 운동까지 전개하고 있다.
미국은 교역 상대국에 통상 압력을 가할 때 무역 적자 규모를 잣대로 삼는데 올 들어서는 이런 기조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1980년대 초에 유행했던 ‘쌍둥이 적자’ 이론에 따르자면 무역 적자가 개선되지 않으면 오바마 정부가 당면한 현안인 재정 적자 축소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교역 상대국에 대한 통상 압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 대한 무역 적자 폭이 갈수록 확대되고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기업과 미국 기업 간의 경쟁 격화로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이 강화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최대 적자국인 중국에 최종적으로 통상 압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을 우회 기조로 활용하는 차원에서 통상 압력이 높아지는 것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미국 통상 정책의 근본 기조는 ‘보호주의→자유무역주의→공세적 상호주의’순으로 변화해 왔다. 최근 들어선 다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이런 통상 정책의 기조 변화가 그동안 제정된 통상법에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주요 통상법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은 특히 미국과의 무역수지 적자뿐만 아니라 중간자적 처지에 놓여 있고 갈수록 한국 기업과 미국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통상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바이 아메리카 정책 ▷미 통상법 중 201조(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301조, 슈퍼 301조 같은 미국의 무역정책과 통상법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세계적인 연쇄 도미노 부를 수도
올해 강화된 ‘바이 아메리칸’ 정책은 미국 물자 우선 구매 정책을 말한다. 1933년 대공황 때 미국산 제품만을 쓰도록 했던 ‘BAA법(Buy American Act)’에서 유래된 정책이다. 당시 보호주의 무역법인 ‘스무트-홀레이법’이 제정됐고 지금도 대표적인 수입 규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반덤핑·상계관세 규정도 이 법에 포함돼 있다.
바이 아메리칸 정책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 교역 상대국들의 보복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근린 궁핍화로 세계무역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대공황 당시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이 경제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해 전 세계의 무역량이 60% 감소했던 선례를 감안하면 최근 미국의 보호무역 규제가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위기 극복을 위해 양적 완화를 통한 경기 부양책과 함께 수출 확대를 통한 경기 침체 극복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신흥국에 대한 통상 압력을 높여 갔고 대규모 공공사업 시 미국산 철강만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경기 부양 법안에 넣어 논란이 됐었다. 오바마 정부 들어선 집권 초부터 바이 아메리칸 조항 등으로 보호무역주의 논란이 일었다. 이러한 기조는 고용 개선 지연, 경상수지 적자 지속 등으로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한국 같은 신흥국들에 ‘공정무역 강화’라는 명분으로 공세적인 통상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 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특성상 미국의 통상 압력이 강화된다면 그 어느 국가보다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상호주의’라는 국제 통상 대원칙을 감안할 때 미국의 통상 압력이 강화되면 중국·유럽·일본의 압력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아직까지 미국보다 못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대외 정책 기조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통상 마찰 이후 사후 조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내 분쟁처리기구(DSB)의 기능 복구에도 주력해야 한다. 미국 등 주요국과의 통상 마찰 발생 시 국내 기업으로서는 해당 국가와 직접 해결에 나서기보다 다자 채널을 통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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