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에서 처칠, 장제스까지 낮잠을 즐겼던 권력자들

역사를 바꿔 놓은 히틀러의 낮잠
“평생에 뜻하던 건 이미 다 어긋나고/ 게으르기가 열 배나 더하니 어찌하랴/ 낮잠을 깨고 나니 꽃 그림자 옮겨가고/ 잠깐 어린애 손잡고 새로 핀 연꽃을 본다.”

‘게으름이 심하도다’라는 제목의 이 한시는 여말 선초의 정치가인 이첨(李詹)이 지었다. 그는 이인임 등을 탄핵한 죄로 정몽주 일파에게 쫓겨나 10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위의 시도 그 무렵에 지었을 것이다. 게으름을 한탄한 게 아니다. 낙향한 사대부의 여유로운 일상 뒤에 좌절된 경국제세(經國濟世)의 꿈이 녹아 있다. 그는 조선이 건국된 뒤에야 재기했다.


부하들이 화 두려워 잠 깨우지 못해
낮잠을 자다가 진짜로 “게으르다!”고 혼쭐이 난 이도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재여(宰予)가 어느 날 낮잠을 잤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공자가 발끈했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가 없다.” 낮잠 한 번으로 이렇게 경을 친 걸로 보아 재여가 평소 공자에게 많이 밉보였던 모양이다.

낮잠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논쟁의 주인공은 디오게네스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방문했다. “폐하께서는 지금 무엇을 가장 바라십니까?” “그리스 정복이라네!” “다음은요?” “소아시아 정복.” “그다음은요?” “온 세상을 정복하고 싶네.” “그다음은요?” “좀 쉬면서 즐겨야지.” “폐하께서는 왜 지금 당장 쉬면서 즐기지 않으십니까?” 어이가 없어진 알렉산더가 물었다. “지금 자네 소원이 뭔가? 내 다 들어주지.” “아 그러시다면 제발 옆으로 좀 비켜 주세요. 저는 지금 일광욕을 즐기며 낮잠을 자고 싶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철학자에게 지금 당장의 햇볕과 낮잠보다 소중한 게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권력자들이 낮잠을 즐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 장제스 대만 전 총통, 아돌프 히틀러 독일 전 총통 등도 낮잠을 즐겼다. 처칠은 점심 먹고 꼭 1시간 정도 낮잠을 잤다. 그렇게 기력을 회복하고 새벽까지 일했다. 히틀러도 한번 낮잠에 빠지면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다. 히틀러가 워낙 화를 잘 내는 괴팍한 성격이어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얄궂게도 히틀러의 종말은 낮잠 때문에 왔다.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 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초반에 제압할 수 있었던 호기를 낮잠 때문에 놓쳤다. 초긴급 상황인데도 부하들은 히틀러를 깨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조조의 낮잠 스타일도 히틀러와 유사했다. 조조는 암살을 당할까봐 늘 두려워했다. 그래서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다가 꿈결에 사람을 죽이는 버릇이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가 잘 때는 아무도 가까이 와서는 아니 될 것이야!”

어느 날 조조가 장중(帳中)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장막의 끈이 끊어지면서 텐트가 조조의 몸을 덮쳤다. 한 시종이 끈을 고쳐 매려고 달려왔다. 조조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옆에 있던 칼을 빼들어 단칼에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한바탕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 조조가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누가 내 부하를 죽였느냐?” 자초지종을 들은 조조가 탄식했다. “내가 잠들면 옆에 오지 말라고 누차 일렀거늘 쯧쯧쯧…. 이 자를 후히 장사 지내 주거라!”

사람들은 모두 조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지만 계륵(鷄肋)의 고사로 유명한 똑똑한 참모 양수는 믿지 않았다. 양수는 억울하게 죽은 자의 관을 붙잡고 대성통곡했다. “승상이 꿈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네가 꿈속에 있었던 것이야!”

유비는 한나라 황족으로 어느 몰락한 집안 후예였다. 그는 전통 있는 가문의 위세를 업고 성장한 원소나 조조와는 출발부터 격이 달랐다. 다행히 너그러운 성품으로 주변의 평판을 쌓은 덕분에 유비에게도 유능한 참모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서서였다. 유감스럽게도 서서는 조조의 계략에 속아 모친이 있는 허도로 떠나야 했다.

서서가 유비에게 진언했다. “양양성 20리 밖 융중이라는 곳에 제갈량이라는 탁월한 인재가 있습니다. 그를 얻으신다면 주나라가 강태공을 얻고 한나라가 장자방을 얻은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제가 까마귀라면 그는 봉황입니다!” “아니 제갈량이라면 수경 선생이 ‘복룡과 봉추 중에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던 그 복룡이 아니요?” “그렇습니다. 반드시 그를 주공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유비는 다음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관우·장비와 함께 길을 나섰다. 하지만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가솔들은 공명이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이 떠났다”고 했다.


동양의학에서 수면은 음양의 교체
며칠 뒤 공명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비 3형제는 다시 길을 나섰다. 장비가 구시렁댔다. “엄동설한에 눈보라로 땅까지 얼어붙었어요. 이런 날엔 군사도 움직이지 않아요. 하잘것없는 촌뜨기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나는 공명에게 내 정성을 보여주고 싶다. 힘들면 돌아가도 좋다!” 공명의 초려에 도착한 일행은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공명이 유비 일행이 오기 전날 다시 길을 떠났던 것이다.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연 사흘 유비가 공명을 찾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해가 바뀌고 봄이 다시 찾아왔다. 유비는 길일을 택해 목욕재계하고 다시 융중을 향했다.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선생님께서 안에 계시기는 하지만 지금은 초당에서 낮잠을 주무십니다.” 유비는 초당에서 공명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장비가 또 씩씩거렸다. “남양의 촌뜨기가 낮잠을 자면서 감히 우리 형님을 한나절이나 서서 기다리게 해? 내 오늘 초당에 불을 질러 버리겠다!” 유비와 관우가 말렸다.

마침내 공명이 잠에서 깼다. 그는 조조나 히틀러와 달랐다. 자신을 깨우지 않은 동자를 나무란 뒤 의관을 정제하고 유비와 마주 앉았다. 삼국시대의 막을 연 제갈량의 유명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는 바로 이 자리에서 나왔다. 장비가 낮잠을 자고 있는 공명의 초당에 불을 지르기라도 했다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비책이 유비 앞에 펼쳐졌다.


사족: 동양의학에서는 수면을 음양(陰陽)의 교체로 본다. 만물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낮에는 사람도 활동하지만 만물이 휴식하는 밤에는 사람도 숙면을 취해야 한다. 활동이 양(陽)이고 수면이 음(陰)이다. 다만 낮잠도 필요불가결하다고 본다. “한밤중에는 깊이 잠을 자서 음기를 기르고(陽陰) 낮에는 살짝 낮잠을 자서 양기를 기른다(養陽)”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잠 못 자서 죽은 귀신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역시 ‘잠이 보약’이라는 결론은 동서 의학이 같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면 시간이 가장 짧다. 대낮처럼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것은 우리 인체에 대한 죄악이다.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만 애꿎게 원망할 일도 아니다. 밤잠·낮잠 가리지 말고 잠은 무조건 충분히 자고 볼 일이다. 그렇다고 비싼 세비 받아가면서 회기 중에 대놓고(?) 낮잠 자는 국회의원 나리들처럼 하면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