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소프트웨어’ 탑재해 조작·변경…신체 능력 강화 가능해져

21세기의 혁신 플랫폼 ‘인간’
#1. 지난 2월 17일 더레지스터는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원(DARPA)이 시각 피질에 이미지를 주입할 수 있는 직접 신경 인터페이스(DNI)를 개발 중이라고 보도했다. 국방고등연구원은 니켈 2장 두께의 얇은 칩을 10달러 수준으로 개발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인간 두뇌에 삽입하는 이 칩의 개발이 완료되면 오큘러스VR나 구글 글래스 같은 보조 기구 없이도 가상현실 이미지를 인간의 두뇌에 직접 투사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뇌와 컴퓨터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완성되는 것이다.

#2. 지난 3월 27일 한 바이오 해킹 그룹은 야간에도 사물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점안액’을 개발해 직접 실험에 옮겼다. ‘클로린 e6’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점안액은 잠시 동안이지만 인간의 시력을 확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 아직 일반인이 직접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안전성이 검증되지는 않았다. 이 약을 개발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바이오 해킹 그룹 ‘대중을 위한 과학’은 보다 치밀한 연구를 통해 적어도 7시간 동안 야간 시야 확보가 가능한 점안액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약이 개발되면 야간뿐만 아니라 심해에서도 인간이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지난 3월 누트로박스 공동 창업자인 제프리 우 씨는 이렇게 말했다. “네트워크화된 컴퓨터가 20세기 지배적인 혁신 플랫폼이었다면 21세기에는 인간이 그렇게 될 것이다.”

인간이 플랫폼이 된다는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전까지 제어와 해킹의 대상이 컴퓨터나 서버였다면 이제는 인간 그 자신이 해킹의 목표가 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인간이라는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 이를 조작·변경하는 작업이 서서히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는 얘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생명 분야까지 양극화” 우려도
누트로픽스(Nootropics)라는 게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기억과 지능, 인지능력을 개선하는 스마트 의약품을 지칭한다. 1972년 루마니아 화학자 코르넬리우 주르자 씨가 신경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등의 목적으로 개발한 의약품을 일컫기 위해 만든 단어다. 쉽게 말하면 ‘뇌 보약’이다.

바이오 해킹은 누트로픽스처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엔지니어링 작업이다. 2013년 팀 캐논이라는 해커가 팔에 블루투스 칩을 심어 집 안 내 다른 사물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사물의 인터넷이 인간으로 확장되면 이 또한 바이오 해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트로픽스나 바이오 해킹은 인간 능력의 강화를 시도하는 운동 혹은 문화로 실리콘밸리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일부는 ‘DIY 바이오 해킹’이라는 표현을 동원해 하나의 놀이 문화처럼 확산시키고 있다.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또 다른 인류를 설계하는 작업이 이렇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놀랍기도 하다.

인간을 넘어선 인류, 이른바 포스트 휴먼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불로장생을 꿈꿔 왔던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과거엔 그것이 꿈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기술 비평가인 빌 매키벤 씨는 “유전 능력의 강화와 같은 바이오 해킹 기술은 권력과 부, 교육에서 일어난 전 세계적 차원의 양극화를 우리 생명 분야에까지 확장하는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몸의 플랫폼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체의 퇴화를 상징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체의 강화를 의미한다. 몸을 스마트폰처럼 해킹하고 변형하고 조작하면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간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종말을 인류는 곧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성규 블로터닷넷 매거진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