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흑인·여성 후보 잇단 출사표…백인 인구 감소 영향

공화당 대권 경쟁 ‘인종의 용광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의 예비 경선이 ‘인종의 용광로’를 연상시키고 있다. 전통적으로 백인 보수 계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에서 히스패닉·흑인·여성 후보 등이 잇달아 대권 도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공화당 내 ‘잠룡’이 최대 18명에 이르고 있어 판세는 예측 불허다.

세계 최초로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성공시켜 ‘신의 손’으로 불린 흑인 의사 벤 카슨(공화당) 씨는 지난 5월 5일 자신의 고향인 디트로이트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카슨 씨는 이번 대선에서 출마를 선언한 첫 흑인이다. 존스홉킨스 의과대 신경외과에 29년간 재직한 카슨 씨는 1987년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해 일약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했고 2009년에는 그의 삶을 다룬 영화 ‘타고난 재능:벤 카슨 스토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카슨 씨가 2016년 8월까지 이어지는 경선 레이스를 완주할지 아니면 중도 포기할지 알 수 없다. 당내 지지율이 그다지 높지 않고 자금력에서도 상위 5권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화당의 흑인 후보가, 그것도 정치인 출신이 아닌 후보가 오바마 대통령의 각종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고 나서는 것만으로도 대선 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미 대권 도전을 공식화한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테드 크루즈(텍사스), 랜드 폴(켄터키) 상원의원 등 3명 가운데 루비오와 크루즈 상원의원은 히스패닉계다. 젭 부시 플로리다 전 주지사(조지 W 부시 대통령 동생),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와 함께 공화당의 유력한 후보 3인방으로 꼽히는 루비오 의원은 쿠바 이민자의 아들이다. 올해 44세인 루비오 의원은 쿠바계 히스패닉이 많이 사는 플로리다 주에서 하원의원을 거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닦았다. 그는 “내가 아메리칸 드림을 수호할 독특한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티파티(강경 보수 그룹)의 총아로 불리는 크루즈 의원은 쿠바 태생의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젭 부시 전 주지사는 부인이 멕시코 출신이어서 히스패닉 계층에 상당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공화당 대선 경쟁에서 흑인·히스패닉·여성 등 후보 다양성이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른다.


유권자 구성 변화가 정치 지도 바꿔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HP) 전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5월 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피오리나 전 CEO는 ABC방송에 출연해 “경제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내가 대통령직에 가장 적합하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공화당의 여성 주자로서는 처음이다.

이처럼 공화당의 대권 경쟁에서 소수 인종 후보들이 두각을 보이고 있는 데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한몫하고 있다. 백인 감소와 소수 인종 증가라는 유권자의 지형 변화가 정치 지도를 크게 바꿔 놓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 미 인구의 80%는 백인이었지만 현재 60%로 줄었고 2060년에는 44%로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히스패닉은 1980년 6%에서 현재 17%로 늘어났고 2060년에는 29%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대선 당시 ‘백악관에 입성하려면 히스패닉 마을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주된 배경은 히스패닉의 지지였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