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이 엔저에 따른 수익으로 차세대 분야를 적극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지평연구원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김성중기자)
이지평연구원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김성중기자)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1963년 일본 도쿄 출생. 1985년 일본 호세이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고려대 경제학 석사. 1988년 LG경제연구원 입사.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수석연구위원 및 재팬인사이트 편집장(현).




일본의 엔화 환율이 달러당 120엔 전후에서 오르내리는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원화의 강세와 함께 100엔당 900원의 지지선이 무너져 엔저에 힘입은 일본 기업의 공세에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일본 정부 관계자도 더 이상의 엔저를 바라지 않겠다는 코멘트를 내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고려하면 향후 엔저의 가속화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국제 유가의 하락으로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가 올해에는 크게 감소할 전망이기 때문에 엔저 압력이 점차 약해질 수도 있다. 다만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 완화에 대한 경계 심리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금년 중 미국 금리의 인상 가능성도 남아 있기 때문에 당분간 엔저 기조 자체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엔화 환율의 추이는 항상 우리 기업과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최근의 엔저를 정확하게 보면서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최근 일본 기업의 수출 단가와 수출 물량 추이를 보면 과거의 엔저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물가는 작년 하반기 이후 급락했지만 자동차 등의 수송 기계는 수출 물가가 엔저만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기준으로 일본 수송 기계의 수출물가지수(계약 통화 기준)는 2012년 12월 대비 3.1% 하락, 전기기계는 4.0% 하락하는 데 그쳐 같은 기간 엔화 가치가 44%나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일본 기업은 가격 인하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수출물량지수는 회복되고 있지만 지난 3월 기준으로 98.9에 그쳐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전인 2008년 상반기의 113.7을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번 엔저는 일본 기업들이 과거와 달리 저가격 경쟁에 나서기보다 수출 물가를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하고 수익성 확대에 주력하면서 차세대 분야를 개척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자동차 산업은 일본 기업들이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이어 전기차(EV)·연료전지차(FCEV) 등 차세대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고 전기전자 산업도 에너지 솔루션 등 인프라나 부품 사업 분야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히타치제작소는 고속철도 등 세계 인프라 시장 공략에 성과를 보이고 있고 파나소닉도 자동차용 전자 기기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일본 기업으로서는 박리다매 전략으로 한국·중국 기업 등과 경쟁하면서 체력을 소모하기보다 자신만의 차별화된 경쟁력 강화에 매진해 사업 확대 분야에서도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일본 기업들이 엔저에 따른 수익으로 차세대 분야를 적극적으로 강화하는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을 추격하고 있는 중국 기업과의 전면적인 가격 경쟁으로 기업 체력이 떨어져 차세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력 자체를 상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합리화나 저가격 제품 시프트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 선택한 분야에서 고객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사의 강점이나 숨어 있는 기술적 자산을 검토하면서 핵심 기술을 경제 및 사회 트렌드에 맞게 고도화하고 차별적인 고객 가치를 개발해야 한다. 제품의 품질 향상과 스펙을 높이는 등 기본적인 부가가치 제고도 중요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을 원천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혁신적인 포인트를 소재 기술이나 제품 콘셉트의 개선 등을 통해 찾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