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헌제·조환·숭정제…권력투쟁 패배자들의 눈물

추락하는 권력은 날개가 없다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의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들의 세계에서 권력투쟁은 인간 이상으로 극렬하다. 그가 미국의 아른헴 동물원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몇 년 전에 권력을 빼앗긴 ‘늙은 모사꾼’ 예로엔과 ‘젊은 신출내기’ 니키가 힘을 합쳐 쿠데타를 일으킨다. 현 권력자 로이트는 침팬지들이 모두 잠든 사이 무참하게 살해된다.

프란스 드 발의 전언에 따르면 동물원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침팬지들이 일제히 아침 식사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이다. 세상은 새로운 권력자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또 그렇게 굴러가기 마련이다.

“나무도 병이 드니 정자라도 쉴 이 없다/ 호화(豪華)히 섰을 때는 올 이 갈 이 다 쉬더니/ 잎 지고 가지 꺾은 후는 새도 아니 앉는다.”

송강 정철은 권력의 무상함과 권력을 좇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이렇게 노래한다. 하기는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쳐나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만고의 외로운 혼백이여’외친 단종
고관대작이나 재력가도 그러하거늘 ‘금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제왕이라면 권력을 잃고 폐위(廢位)돼 추락할 경우 받을 심리적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사람들의 싸늘한 인심 변화도 눈에 불을 보듯 뻔하다.

조선 단종은 14세의 어린 나이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폐위된다. 그는 강원도 영월 땅에 유배됐다가 2년 뒤 16세의 나이에 세조의 측근에 의해 암살된다. 유배 중에 단종이 남긴 시를 보면 눈물겹다.

“천추의 한을 가슴에 담고(千秋長恨寃)/ 적막한 영월 땅 거친 산속에(寂寧荒山裡)/ 만고의 외로운 혼백이여(萬古一孤魂)/ 푸른 솔은 정원을 둘러쌌네(蒼松繞舊園)….”

1623년 인조반정으로 실각한 광해군도 비슷한 시를 남겼다. 반정 후 광해군은 폐위돼 강화도로 유배됐다가 다시 제주도로 유배된다. 강화도 시절 광해군의 아들과 딸은 탈출하려다 실패해 자결했고 부인인 폐비(廢妃) 유 씨는 화병으로 죽었다. 광해군이 남긴 시에도 이런 비참한 심정이 배어난다.

“궂은 비바람은 성곽에 불고/ 습하고 역한 공기 누각에 가득한데/ 창해의 파도 속에 날은 이미 저물고/ 푸른 산 슬픈 빛은 싸늘한 가을 기운….”

광해군은 폐위되고도 근 20년을 더 살다가 1641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인조와 서인정권은 폐위된 광해군을 죽이지 않고 천수를 누리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처자식을 모두 잃고 유배지에서 상궁과 포졸로부터 영감이라는 치욕적인 호칭을 듣고 자신의 거처를 역졸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면서 산 20년은 죽음보다 못한 세월이었을 것이다.

동서고금의 수없이 많은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고 그 과정에 정적(政敵)이나 적국에 의해 폐위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던 비운의 제왕도 부지기수였다.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폐위되고 참수형을 당한 루이 16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돼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나폴레옹도 있다. 유배 기간에 나폴레옹이 섬의 총독에게 당한 모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소설 ‘삼국지’의 시대적 배경은 한나라 12대 영제(靈帝) 때부터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자연재해가 잇따르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각종 반란에 황건적의 난까지 일어나면서 군웅이 할거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영제 때부터 이미 시작된 환관 정치는 영제 사후에 아들 유변이 13대 소제(少帝)로 즉위하면서 더욱 심해진다. 여기에 외척까지 합세하면서 한나라는 뚜렷한 망조(亡兆)를 보인다.

일개 지방 군벌이었다가 중앙 권력을 장악하게 된 동탁은 기세등등해져 소제를 폐위하고 끝내 독살한다. 소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14대 헌제(獻帝)는 영제의 차남이다. 한나라 마지막 황제다. 헌제는 처음에는 동탁의 무리에게, 나중에는 조조의 무리에게 온갖 핍박을 당하면서 허울뿐인 황제 노릇을 한다.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도 대세 기울면 소용없어
노회한 조조는 충분히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왕 노릇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는 달랐다. 그는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조비는 헌제를 협박해 폐위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소설 ‘삼국지’에서 조비는 황제 자리에 오르자마자 헌제를 암살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광해군처럼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소열제 유비가 죽고 난 뒤 촉나라 황제가 된 유선은 효회황제로 불렸다. 유선에 대해서는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어리석은 황제라고 말하는 측에서는 환관과 간신배들을 가까이 해 아버지 유비가 세운 촉나라를 망하게 한 점을 든다.

반면 유선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유선의 치세 40년 동안 위나라는 조비·조예·조방·조모·조환 등으로 바뀌었고 오나라는 손권에 이어 손량·손휴·손호 등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든다. “그가 어리석기만 했다면 40년 장기 집권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촉나라 황제 유선이 항복하던 시절 위나라 황제는 조환(元皇帝)이었지만 실권은 이미 재상 사마소에게 넘어가 있었다. 조환은 사마 씨 집안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위(魏)나라와 진(晉)나라는 평행이론을 적용해도 될 만큼 닮았다. 사마소가 조조라면 그의 아들 사마염은 조비에, 조환은 헌제에 해당한다. 막강한 실권자 사마소는 왕 노릇에 그친다. 그의 아들 사마염이 조환을 협박해 폐위하고 황제가 된다. 사마염 역시 조환이 황제의 품위를 유지하게 조치했다지만 재위 기간에도 누리지 못한 품위를 폐제(廢帝)가 누렸을 리는 없을 것이다.

오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손권의 창업은 창대했지만 대를 거듭할수록 빛이 바랬다. 못난 후손들의 수성(守成)은 형편없었다. 특히 손권의 손자로 오나라 마지막 황제가 된 손호(孫皓)는 삼국 시대 최악의 폭군이었다. 엽기적인 잔혹함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손호는 여색과 미신에 빠져 있다가 진나라 사마염 군대의 공격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손호가 폐위됐다.

아무리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천하 대세가 이미 다른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본인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조선 단종이나 한나라 헌제나 위나라 조환, 명나라 숭정제처럼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자신의 대에 이르러 나라를 말아먹거나(?) 쥐고 있던 천하를 놓쳐 버리는 유선이나 손호 같은 이도 많은 게 사실이다.


사족: 먼 옛날 일이 아니라 우리 당대에 일어난 폐위된 제왕의 심리를 가장 실감나게 보여준 것은 아마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1987년)’가 아닐까 싶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선통제)의 기구한 일생을 잘 포착했다. 영화 ‘마지막 황제’는 굳이 정치권력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많이 생각하게 하는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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