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험업 순이익이 은행 넘어서…‘이자 놀이’ 치중 구조론 한계

100여 년 만의 역전이다. 국내 금융권의 ‘맏형’이나 다름없는 은행이 보험사에 1등 자리를 내준 것이다. 그것도 ‘한 해 농사’의 성적표나 다름없는 ‘순수익’에서 말이다. 국내 최초 은행(1897년 한성은행)과 보험사(1922년 조선화재)가 설립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절대 강자’인 은행이 ‘만년 2등 보험사’에 추월당한 배경은 무엇일까.
은행vs보험, 100년 만의 역전
“보험사들이 잘해서라기보다 은행들이 못한 게 크죠.”

은행과 보험의 ‘수익 역전’ 현상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한 금융 전문가가 내놓은 답이다. 지난 2월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4년을 기준으로 국내 시중은행과 지방은행·특수은행을 합친 18개 은행의 순이익은 6조2000억 원을 기록했다. 2013년(3조9000억 원)과 비교하면 2조3000억 원(60.4%) 정도 늘어났지만 2011년 11조8000억 원, 2012년 8조7000억 원에는 여전히 못 미치는 수치다.

반면 보험사의 순수익은 꾸준히 증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25개 생명보험사와 삼성·동부화재 등 31개 손해보험사를 합친 56개 보험사의 작년 1~3분기 순익은 5조1000억 원이다. 4분기 실적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업계 추산 1조5000억 원을 더하면 지난해 순이익이 6조6000억 원에 달한다.

더욱이 2014년 총자산 규모로 비교해 보더라도 은행(1700조 원)과 보험(830조 원)의 덩치는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2005년을 기준으로 은행의 순수익이 13조6000억 원, 보험사의 순이익이 3조3000억 원 규모였다. 10년 전과 비교해 은행 수익은 ‘반 토막’이 난 반면 보험은 그나마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한 덕에 이 같은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은행vs보험, 100년 만의 역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이런 ‘역전 현상’이 왜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보험 업계가 예년에 비해 성장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은행 업계의 실적이 부진했던 탓이 크다. 국내 금융 산업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총자산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61.1%다. 이 때문에 금융정책 또한 은행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은행 산업에 그야말로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적신호’ 켜진 은행 산업
사실 금융권에서 ‘은행의 위기’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치가 순이자마진(NIM)이다. 은행 등 금융회사가 자산을 운용해 낸 수익에서 조달비용을 차감해 운용 자산 총액으로 나눈 수치를 나타내는 NIM은 금융회사의 수익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그런데 이 NIM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 2월 9일 금융감독원은 국내 은행들의 NIM을 1.79%로 분석했다.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며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1.98%보다 0.19% 포인트 낮다. 분기별로는 지난해 1~3분기 중 1.80% 초반 대를 유지하다가 4분기에 1.73%로 추락했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팀장은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이 같은 NIM의 하향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국내 은행의 수익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국내 은행의 수익은 이자 이익과 비이자 이익으로 나눌 수 있다. 이자 이익은 쉽게 말해 예금 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 즉 ‘예대마진’을 통한 수익을 일컫는다. 은행은 고객으로부터 싸게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기업·가계에 대출해 돈을 버는 것이 본업이다. 그런데 금리가 낮아질수록 예금 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가 줄어들게 되고 은행의 수익 창출 역시 요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 팀장은 “이 때문에 향후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따라 은행의 수익성이 달라질 수 있다”며 “현재로선 기준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보다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당분간 은행의 ‘핵심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대출 분야에서 수익을 늘리기 어려운 여건인 셈이다.

수익의 또 다른 축인 비이자 이익 역시 은행권의 활로가 되지 못한다. 비이자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방카슈랑스와 펀드 판매 수수료다. 최근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수료를 인하하는 추세가 강화되면서 수수료 수익이 2009년 무렵부터 정체돼 있거나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 팀장은 “국내 은행들의 비이자 이익은 몇 년째 4조 원 정도로 크게 변화가 없다”며 “특히 해외와 비교해도 금융 상품의 규제가 많기 때문에 수수료 수익을 높이는 것 역시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둘 중 이자 이익의 비중이 90%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이라는 데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들이 오랫동안 손쉬운 ‘이자 놀이’에만 집중해 왔다”며 “향후에도 90%에 달하는 이자 이익의 비중을 줄이고 이 같은 수익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위기에서 쉽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은행들의 이자 수익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선진국 은행과 비교해 보더라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국내 은행 산업의 수익성 추이와 과제’란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은행과 국내 은행을 비교했다.
은행vs보험, 100년 만의 역전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US뱅크를 들 수 있다”며 “2013년 이 은행의 비이자 이익 비중이 45.3%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전략을 통해 비이자 이익의 비중을 끌어올린 덕분에 금융 위기 이후에도 수익성이 꾸준히 좋아질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앞으로도 은행 산업의 전망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근본적인 수익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 등 ‘수익의 다변화’가 절실하지만 마땅한 돌파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의 위기 “탈출구가 없다”
정 팀장은 “이자 이익 부문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서는 수수료 판매 수익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최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금융 상품 자문업(IFA) 제도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IFA는 독립 투자 자문업자가 금융 소비자들에게 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때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미 국내 은행들은 연금이나 신탁, 프라이빗 뱅크(PB) 서비스 등 ‘자문 서비스’를 핵심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이에 대한 수수료를 따로 지급하지 않았다.

정 팀장은 “IFA가 정부의 의도대로 실현되기만 한다면 은행으로선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셈”이라며 “하지만 이미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이런 은행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해외시장 진출 또한 어렵긴 마찬가지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지난 1월 21일 은행연합회와 한국금융연구원·한국금융연수원·국제금융센터가 공동 개최한 기자 간담회에서 “국내 은행들의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글로벌 은행들과 비교해 국내 은행들의 해외 영업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 은행들은 순이익에서 해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신한은행조차 지난해 수익 비중이 8.3% 수준에 불과했다. 다른 은행들은 비중이 더 미미한 상황이다.

반면 일본 은행권의 총대출에서 해외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기준으로 40%에 달한다. 특히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는 2013년 전체 수익 중 해외 수익의 비중이 무려 53.5%에 이른다.

조 대표는 “아직도 국내 은행들이 지나치게 국내 영업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은행장 임기 등 국내 은행 업계의 조직 문화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보통 국내 은행장들의 임기는 3년 정도다. 이와 비교해 해외 진출은 5년 이상 장기적인 대규모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 조 대표는 “은행장들이 지금 당장의 이익을 높여 이사회에서 연임을 확정지어야 하는데 3~5년 뒤에 투자 성과가 나타나는 해외 진출은 관심 밖”이라며 “더구나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큰 만큼 책임도 커지기 때문에 은행들 스스로도 해외 진출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 압도적인 규모에도 불구하고 보험 업계에 수익 1위 자리를 내준 ‘은행의 수모’는 앞으로도 지속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최진석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금과 같은 수익구조에서는 은행의 새로운 수익 창출이 요원한 것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단순히 수익이 떨어졌다고 해서 국내 금융 산업에서 은행의 입지가 흔들린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향후 국내 경기가 호전되고 기준 금리가 높아진다면 은행의 수익 역시 회복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핀테크 등을 통해 은행이 새로운 혁신에 성공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최 애널리스트는 “은행 내부적으로도 해외의 핀테크 모델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조 대표는 “은행이 보험이나 다른 업종에 비해 비중이 실제로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며 “하지만 적어도 국내 금융 산업에서 은행의 비중이 줄어드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 은행 산업은 포화 상태다. 과도했던 은행업의 비중이 줄어들면 보험이나 증권 등 기타 금융 업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여지가 커지는 것이다. 그는 “금융 산업이 발달할수록 금융 소비자들 역시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큰 흐름에서 보면 이와 같은 수익 역전 현상은 한국 금융 산업의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팀장은 “금융은 이미 첨단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며 “은행 역시 이 같은 변화의 과정에서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 산업의 구조 자체가 매우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데 은행이 전통적인 사업 방식만 고집해서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내 금융 산업의 중심인 은행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시급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보험업계, ‘저금리’ 환경에도 선방한 비결
은행vs보험, 100년 만의 역전
보험 산업이라고 저금리 충격에서 자유로울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은 2010년 이후 꾸준히 6조 원에 가까운 순수익을 유지해 왔다. 특히 지난해는 2013년 5조6000억 원과 비교해 순수익이 소폭이지만 상승했다. 은행 업계와 비교해 보험 업계의 이 같은 성과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 생명보험사의 수익구조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위험률차손익·이차손익·비차손익이다. 위험률차손익은 보험사의 기본 영업과 관련이 깊다. 보험 가입자가 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적립하는 위험 보험료에서 지급한 보험금의 비중이다. 이차손익은 쉽게 말해 보험사의 자산 운용을 통한 투자 수익이라고 할 수 있고 비차손익은 예정 사업비와 실제 사업비의 차액을 이용해 수익을 얻는 것이다.

김석영·김세중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이 2014년 펴낸 ‘보험회사 수익구조 및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보험회사의 수익구조 비중은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를 기준으로 위험률차손익 26.2%, 이차손익 29.3%, 비차손익 54.5%다. 수익의 상당 부분이 ‘비차손익’에 편중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세중 연구위원은 “보험사의 비차손익은 위험률차익이나 이차손익에 비해 보험사들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익원”이라며 “비차손익의 비중을 늘림으로써 다른 금융 업종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험사엔 비차익 중심의 수익구조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손해보험사는 투자영업이익의 덕이 컸다. 실제 국내 주요 9개 손보사의 보험영업 이익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1조8608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투자영업이익은 3조7886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생보 업계와 손보 업계 공히 예년과 비교해 수익이 늘어날 수 있었던 데는 ‘사업비 절감’ 효과가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사 내부 자료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밝히긴 어렵지만 운영비나 인건비 등에서 사업비 절감 효과가 큰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보험사들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등을 거친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밖에 생보 업계와 손 보업계 모두 저금리 상황에서도 투자 운용 수익률이 나쁘지 않았다”며 “특히 생보사들은 해외투자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14년 12월 기준 14개 생명보험회사가 변액보험을 재원으로 해외 주식에 투자해 거둔 수익률(1년) 평균은 7.54%다. 이는 생보사의 12월 국내 주식 투자수익률(1년)이 마이너스 3.0%에 불과하고 최근 1년간 전체 자산 운용 수익률도 4~5% 사이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보험 업계의 전망을 무조건 낙관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이 연구위원은 “지금 같이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 기존의 성과를 유지하는 것만도 의미가 크다”며 “하지만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보험 영업보다 상대적으로 투자 이익의 비중이 높은 지금과 같은 수익구조에서는 향후 보험 업계의 전망이 밝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계속된다면 보험사들 역시 투자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국제적으로 보험사들의 재무 건전성이 강조되면서 보험사들의 수익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또한 높다.

그는 “지난해 보험사들이 좋은 실적을 낸 것은 구조조정 등 그간의 뼈를 깎는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앞으로 예상되는 고비도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