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동력 발굴 미션 수행…글로벌 경쟁력 강화도 한몫

위기에 빠진 그룹이 구조조정을 거쳐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펴기까지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쪽에선 굳은 결단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 아픔을 추스르며 기업의 체질을 바꿀 리더십이 중요하다. 이를 진두지휘하는 이가 각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다. 기업의 구원투수로, 현대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을 함께하고 있는 현대그룹 각 계열사의 CEO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현대그룹에서 잔뼈가 굵지 않은 새로운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의해 발탁된 현 회장의 사람들이다. 구조조정 전후로 대표에 취임해 그룹의 유동성 위기 탈출과 성장 동력 발굴의 미션을 받았다. 주요 계열사 6곳 중 4곳의 대표는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지난해 취임해 선 굵은 일들을 처리했다.

또 수익성 강화와 함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찍을 만큼 대범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해외시장에서 영업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들이 눈에 띈다.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 현대상선·현대엘리베이터·현대증권·현대아산·현대유엔아이·현대경제연구원을 중심으로 CEO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외부 영입 출신 주축…체질 개선 주력
전략기획본부장 출신 이백훈 대표 ‘주목’
현대그룹의 위상을 다시 회복할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는 현대상선은 이백훈(59)·이석동(55) 투톱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9월 이백훈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장을 새로 대표이사에 선임하며 기존 이석동 대표이사와 함께 역할을 나누도록 했다. 이석동 대표는 대외 부문을 담당하고 이백훈 대표는 경영관리 및 영업을 담당한다. 이석동 대표가 현대상선 입사 후 줄곧 컨테이너 영업을 담당한 ‘영업통’이라면 이백훈 대표는 전략기획본부 출신 ‘인사통’이다.

현대그룹에서 가장 각광받은 부서는 전략기획본부다. 40여 명의 인력이 근무하는 전략기획본부는 어떤 계열사에도 소속돼 있지 않다. 현 회장 직속 기관으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백훈 대표는 이곳에서 전략기획본부장으로 활약하며 그룹의 주요 인사를 책임져 왔다. 지난해 다시 한 번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현대상선에 대표로 자리를 옮기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이백훈 대표는 SK해운을 거쳐 2007년부터 현대상선 WET벌크영업 및 인사담당(CHO) 임원으로 현대에 발을 내디뎠다. 현대그룹 9년 차를 맞은 이 대표가 현 회장에 의해 영입된 배경은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에서 함께 공부하면서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룹 내부에서는 최근 몇 년간 유례없는 해운업 장기 불황으로 경영의 어려움이 심화된 가운데 과감한 자구 추진 등 조기 경영 정상화를 구축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상선은 새 대표를 맞은 뒤 공석이던 재무총괄책임자(CFO)와 재무 1팀장에 문동일 현대엘리베이터 전무와 김한수 현대로지스틱스 상무를 각각 선임하는 등 일부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상선에 재무 전문가들을 대거 투입한 것은 자구 계획의 막바지에 이른 만큼 재무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은 해운 업계의 불황을 이겨내고 경영 정상화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최근 사상 최대 실적을 쏟아 내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는 한상호(58) 사장이 이끈다.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국내 기업인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중국통이다.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출신인 한 사장은 1984년부터 LG상사·LG오티스 등에 재직하며 중국 본토는 물론 대만·홍콩 등 범중화권에서 두루 경력을 쌓았다.

2011년 현대그룹에 합류해 사장에 취임한 지 2년여 만에 매출 1조 원 클럽에 가입하는 등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서비스 사업 부문에서 유지·보수 대수를 10만 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등 3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의 해외 매출 비중을 늘리는 데 힘쓰고 있다.

국내에서는 시장점유율 45%대를 유지하며 업계 1위의 기반을 확실히 다졌기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중국 현지법인 독자 경영권 확보, 중남미 시장 공략을 위한 브라질 생산 기지 준공 등 해외시장 진출에 가속도를 낸다. 한 사장은 공군 정보 장교 출신으로, 덕장형 리더로 꼽힌다.

윤경은(52) 현대증권 사장은 세계 금융시장을 잘 아는 경영자로 통한다. 특히 증권업계에서 손꼽히는 국제 영업력과 파생 상품 전문 지식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경성고·한국외국어대 영어학과를 졸업한 뒤 제랄드 한국지사, 파리바은행 등 외국계 투자은행(IB)에서 근무했다. 신한금융투자 트레이딩그룹 부사장, 솔로몬투자증권(현 아이엠투자증권) 대표를 지냈다.


최대 실적 올린 한상호 사장
윤 사장은 지난해 구조조정 등을 통해 현대증권을 흑자로 전환하는 등 매각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2012년부터 2년 연속 적자를 냈던 현대증권 실적을 지난해 흑자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구조조정을 추진해 현대증권의 몸값을 1조 원대까지 높아지도록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는 평가도 받는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기준으로 순이익 304억 원을 냈다. 2013년 같은 기간 429억 원의 적자를 냈던 데에서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조건식(63) 현대아산 대표는 자타 공인 남북 관계 전문가로, 현 회장이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통일부 차관 등이 주요 경력이다. 2008년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현대아산을 이끌었던 조 대표는 4년 만인 지난해 3월 재취임했다. 현대아산에 다시 돌아온 조 대표의 취임 일성은 “금강산 관광 재개의 물꼬를 트자”는 것이었다.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북한에 다녀오는 등 관광 재개를 위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현대아산의 고민이 반영된 듯 지난해 5월엔 30명(전체 직원 중 10% 규모)에 대한 첫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도 했다.

현대그룹의 정보기술(IT)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현대유엔아이는 이진우(54) 대표가 이끌고 있다. 그룹 내 IT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한국HP·시스코코리아 등 글로벌 IT 기업 임원을 거치며 26년 정도 IT 업계에만 몸담아 왔다. 2012년 10월 현대유엔아이 경영총괄전무로 재직하며 글로벌 IT 기업을 통해 축적된 전문성과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3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이 대표는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성과 중심의 강한 추진력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싱크탱크인 현대경제연구원 또한 지난해 대표이사가 바뀌었다. ‘금융통’으로 불리는 하태형(57) 원장이 발탁됐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파생 상품을 전공하고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하 원장은 동양종합금융과 LG선물을 거쳐 2000년 보아스투자자문을 설립해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으로 재직했고 지난해 4월부터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CEO 경력이 있는 연구원장이라는 점에서 기존에 없던 스타일의 인사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싱크탱크 또한 수익 사업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그룹의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싱크탱크 특성상 돈을 쓰는 일이 많지만 자생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CEO 출신을 새롭게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j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