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 펀드, 자사주 매입 압박… ‘장기 성장 저해’ 논란

‘행동주의 투자자’ 표적 된 GM
“제너럴모터스(GM)는 현재 자본 과잉(overcapitalization) 상태다. 남아도는 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주 가치가 크게 올라갈 것이다.” GM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헤지 펀드들이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 GM을 향해 자사주를 매입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팔루사매니지먼트·타코닉캐피털·헤이맨캐피털·HG보라캐피털 등 4개 헤지 펀드는 2월 10일 해리 윌슨이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GM 측에 80억 달러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하라고 요구했다. 이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자 GM의 주가는 당일 4.6% 올랐다.

헤지 펀드 4개사는 GM 주식 2.1%를 보유하고 있다. 비록 지분율은 낮지만 GM은 현재 단독 대주주가 없는 만큼 상당한 입김을 행사할 수 있다. 올해 43세인 해리 윌슨은 헤지 펀드 출신으로 2009년 금융 위기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자문단으로 GM의 공적자금 투입 등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윌슨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GM의 주가는 터무니없이 저평가돼 있고 기본적으로 과잉자본 상태”라면서 “막대하게 보유하고 있는 유보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주 가치가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윌슨은 2014년 6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본인을 이사회 멤버로 지명해 자사주 매입을 관철하겠다고 했다. GM이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의 표적이 된 셈이다.

GM은 현재 현금 250억 달러를 포함해 370억 달러의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다. 지난해 대규모 리콜 사태에도 불구하고 약 1000만 대를 판매해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거뒀다. 이 같은 상황에서 헤지 펀드가 또다시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고 나서자 GM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대규모 리콜에 따른 비용 부담이 아직 남아 있는데다 지급해야 할 연금이 240억 달러 정도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2009년 공적자금 투입으로 기사회생
GM은 2009년 금융 위기 당시 1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살아난 회사다. 이 때문에 헤지 펀드들의 GM 자사주 매입 요구는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데이비드 휘스턴 모닝스타 수석 애널리스트는 “자동차 업계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보다 건강한 재무제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밥 루츠 전 GM 생산총괄사장 겸 부회장도 “과거 사례로 볼 때 자동차 회사에 대한 자사주 매입 요구는 대부분이 실적 악화의 신호탄이었다”며 “주주들도 결국에는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벤처캐피털리스트인 닉 하나우어는 “자사주 매입이 미국 경제를 죽이고 있다”며 “금융시장에 비해 실물경제의 회복세가 느린 것은 기업들의 과도한 자사주 매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상장 기업들은 지난해 7000억 달러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4% 수준으로 2008년 이후 최대 규모다. 미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데는 자사주 매입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래리 핑크 블랙록자산운용 회장은 “과도한 자사주 매입은 투자 재원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며 “투자가 줄면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 창출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10년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들은 순이익의 54%를 자사주 매입에 사용했고 그 금액은 6조9000억 달러에 이른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