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쌓아 둔 2조 달러에 14% 세율…법인세 인하 병행
“중산층의 긴축이 아니라 그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할 수 있는 예산안이 필요하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4조 달러 규모의 2016 회계연도(2015년 10월~2016년 9월) 예산안을 미 의회에 제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사상 최대 규모로 공화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예산 규모를 크게 늘리며 눈길을 끌었다. 미국 연방 정부의 예산은 메디케어(노인층 무료 의료보험),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무료 의료보험), 사회보장연금 등 법에서 자동적으로 지출하도록 규정한 ‘의무 지출(mandatory spending)’과 매년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 ‘재량 지출(discretionary spending)’로 나뉜다. 복지 예산으로 불리는 의무 지출은 전체 예산의 60%가 넘는다. 일반 예산으로 볼 수 있는 재량 지출은 다시 국방 예산과 비국방 예산으로 구분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예산안은 재량 지출 기준으로 보면 올해보다 7%(740억 달러) 늘어난 것이다.
‘오바마표 예산안’의 핵심은 세금을 더 많이 거둬 그 돈으로 중산층과 빈곤층을 지원하고 도로·항만 등 사회 기반 시설 투자를 확대해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세금 회피 관행에 쐐기
오바마 대통령은 연초 국정 연설에서 세수 확충 방안의 하나로 부자 증세를 제안한 데 이어 이번에는 법인세 개혁안을 들고나왔다. 우선 그동안 세금 이연(tax deferral)이 적용됐던 기업들의 해외 수익에 대해 즉각 세금을 물리겠다는 방침이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 등 상당수 미국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미국으로 가져오지 않고 법인세율이 낮은 국외 지역에 유보하고 있다. 그 금액이 2조 달러를 웃돌고 있다. 이 돈을 미국으로 송금하려면 미국의 법인세(35%)를 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업들이 이미 쌓아 두고 있는 해외 유보금에 일회성으로 14%의 세율을 적용하고 앞으로 벌어들이는 해외 이익에 대해서는 19%의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관계자는 “기업들이 해외에 쌓아 두고 있는 2조 달러에 대한 세금 납부를 무한정 지연할 수 없고 지금 바로 내야 한다는 게 이번 개혁안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기업들의 해외 수익에 과세하는 동시에 법인세율을 35%에서 28%로 낮추는 방안을 제안했다. 해외 수익의 세금 이연과 같은 세제 ‘구멍(loophole)’을 막아 세수 기반을 확대하는 한편 전반적인 세율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낮은 세율과 넓은 세원’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예산안에서 공화당이 요구해 온 국방비 증액을 받아들여 국방 예산을 올해보다 380억 늘어난 5610억 달러로 제시했다. 공화당과 협상의 여지를 남겨 놓은 셈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은 법인세 개혁에 대해 오래전부터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기업들이 과도한 세금 부담을 피해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데다 기업들의 해외 유보금을 미국으로 갖고 오도록 해 투자를 활성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 유보금에 대한 일회성 과세율이 공화당이 주장해 온 5~8%에 비해 높아 입법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공화당은 예산안의 기본 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금 순증’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오바마표 예산안’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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