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건강 멘토’ 홍혜걸·여에스더 부부

“아침잠 깨우는 목소리가 너무 좋았죠”
‘생선 매운탕을 먹을 때 남편은 살점만 골라 먹고 아내는 머리와 내장을 먹는다. 치킨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가슴살을 챙겨 먹고 아내는 닭껍질과 날개·목 부위를 먹는다.’

만일 이런 부부가 있다면 궁합이 좋다(Yes)고 봐야 할까. 아니다(No)고 봐야 할까.

“우리 부부 얘긴데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분배가 딱딱 맞아떨어지니 찰떡궁합 아니겠어요.” 남편이 목청을 높여 이렇게 말하는데, 부인은 옆에 앉아 빙그레 웃고만 있다.

지상파·종합편성채널(종편)·케이블방송 가릴 것 없이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 ‘따로’ 또는 ‘함께’ 나와 온 국민의 건강 멘토 역할을 하는 홍혜걸·여에스더 의사 부부의 얘기다.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들어보자. 부인이 더 신나서 이어 간다.


‘양재천 걷기’와 ‘과일·채소 먹기’
“돼지고기를 보더라도 이이는 살코기, 저는 비계를 먹죠. 해삼도 제가 내장, 이이가 살 부위. 심지어 피자도 속(남편)과 겉(아내)이 나뉘어요. 서로 먹겠다고 다툴 일이 없으니 좋은 궁합은 아닌가요.” 부창부수(夫唱婦隨) 아니랄까봐 남편과 부인의 답이 척척 맞아떨어진다. 다른 부부들에게 물었다면 절반 이상, 아니 대부분이 단호하게 “노(No)”라고 답했을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외식할 땐 어떨지 궁금했다.

“와이프의 입맛은 저렴합니다. 순대·떡볶이·어묵·김밥 등 길거리 음식을 좋아하죠.” “맞아요. 그런데 저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폼 잡는 걸 좋아해요. 저는 호텔 음식은 겉보기에 좋은데, 성이 영 안 차서….”

이 역시 ‘엇갈린 입맛’이란 답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서로 다른 입맛을 가지고 살면서 ‘기가 막힌 궁합’이라고 확신(?)하고 사는 부부가 바로 홍·여 부부다.

남편 홍혜걸 씨는 한국 의사 출신 의학 전문 기자 1호다. 아직도 “홍 닥터”보다 “홍 기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요즘은 ‘비온뒤’란 사업체를 만들어 의학 전문 방송물을 제작해 공급하고 있다. 부인 여에스더 씨는 개원의 생활을 접고 건강 보조 식품 판매 업체 에스더포뮬러의 대표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둘 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사란 직업을 제쳐두고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홍·여 부부의 ‘따로 함께 찰떡궁합 행보’가 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해군 군의관 시절 허리를 심하게 다쳤어요. 1년 만에 의병제대를 했지요. 의사를 그만두고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할 때 중앙일보에서 의학 전문 기자를 뽑는다고 해서 응시했는데 붙더라고요.” 홍 박사의 말이다. 의대생 신분으로 고시 공부를 하던 태생적 엉뚱함이 홍 박사에게 있다. 자의적인 직업 전환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기자 생활이 적성에 맞았다. 장래도 있어 보였다. 이를 계기로 방송인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현재 의학과 관련된 미디어 일에 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사가 안 됐다면 환자가 됐을 겁니다. 정신병환자.” 여 박사의 얘기는 무척 심각하다. 20여 년 전만 해도 만성피로 환자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나른해져 다음 일을 할 수 없었다. 500m 이상 걸어 본 적도 없다. 한마디로 일보(一步) 탑승이다. 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아도 모든 것이 정상이란 답밖에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제 식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어요. 시험공부를 할 땐 으레 쥐포 수십 개를 바싹 태우다시피 챙겨 공부하면서 뜯어 먹었지요. 사과 한 개를 온전하게 먹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식생활이 엉망이었죠.”

30대 중반에 대장 검사를 하니 용정이 여러 개 발견됐다. 떼고 또 떼어냈다. 그 후 생활을 바꿨다. 하루 한 시간씩 양재천 길을 걸었다. 남편 홍 박사도 함께 걸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서로 먹고 먹였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은 영양분은 캡슐에 담긴 영양제와 건강 기능 식품의 도움을 받았다. 본인 스스로 대단한 치유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해마다 발견되는 대장의 용정이 8년 만에 싹 사라진 것. 여 박사가 환자 돌보기를 접어놓고 건강 기능 식품 회사를 통해 ‘영양’에 매진하는 이유다.


비타민D 등 영양제 복용도 건강 비결
“환자분들 중에 ‘타고난 체질’과 ‘가족력’이라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집사람을 통해 확인했어요. 첫째는 올바른 식생활, 둘째는 적당한 운동, 셋째는 긍정의 마음가짐입니다.” 홍 박사가 거든다. 간단명료하고 깔끔한 훈수다.

홍·여 부부는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여 박사가 1년 선배다. 여 박사는 “대학 다닐 땐 모르던 후배였다”는데, 홍 박사는 “나는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일찌감치 선배를 마음에 두고 있었나 보다. 홍 후배에 대한 여 선배의 첫 기억은 ‘아침잠을 깨우는 목소리 좋은 인턴 선생님’이다. “1990년 서울대병원 응급실 레지던트 시절,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환자 인수인계를 하겠다고 깨우는 데 그 목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다시 만난 건 4년 뒤인 1994년 5월 31일 프레스센터의 ‘금연의 날 기념 세미나’에서였다. 그 사이 의학 기자가 된 홍 후배, 노처녀 전문의가 된 여 선배. 두 사람은 세미나가 끝나고 가볍게 마시기로 한 커피가 5시간을 넘겨 문을 닫을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무슨 말을 그렇게 오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어요.”(여 박사)

“헤어지고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여 선배와의 시간이 데자뷔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홍 박사)

그 후 홍 기자는 취재를 핑계로 요리조리 홍 선배의 마음을 떠보고는 100일도 안 돼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현재 남자 아이 둘(대학교 1학년, 고등학교 3학년)의 부모다.

이 부부는 두 사람 모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30대 중반부터 시작한 ‘양재천 걷기’, ‘과일 채소 먹기’ 외에 다른 비결이 있을까. “비타민D, 유산균 제제, 오메가3 등 영양제를 가까이 두고 매일 복용해요. 참, 영양제는 공복 시 먹는 유산균 제제를 빼곤 대부분이 식사 직후 한꺼번에 먹는 게 좋아요.” 여 박사가 비법 공개와 훈수도 빠뜨리지 않는다.

“영양제 중에선 비타민D가 제일 중요해요. 비타민D를 ‘면역 비타민’ 또는 ‘항암 비타민’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한국인에게 가장 부족한 영영소입니다. 여름에 피부가 까맣게 탈 정도로 땡볕에 뛰놀던 아이들은 겨울에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게 비타민D 덕이지요.” 홍 박사의 자상한 설명이 이어진다. 나이가 들어서는 다이어트를 위해 너무 심한 운동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단다. 중년 이후 운동의 목적은 근육이나 심폐지구력 등 체력 향상보다 잉여 칼로리를 태워 혈관을 깨끗하게 하고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60이 넘어가면 다이어트는 포기하세요. 수명을 단축시키고 치매에 걸리기 쉽다는 논문이 많이 발표돼 있어요. 젊은 사람들도 뚱뚱한 강호동이 날씬한 미스코리아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걸 알아야 해요.” 여 박사의 당부다. 집에서 해 먹는 요리가 궁금했다.

“결혼하고 당신이 해준 음식이 하나 있는데 그게 김치비빔밥인가?” “아니, 김치볶음밥이에요.” 결혼 후 지금까지 도우미 아주머니의 밥상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남편의 불만 섞인 질문에 부인이 당당하게 정정해 가며 대답한다.

“결혼 전에 집사람이 제게 당부한 게 한 가지 있어요. 자기에게 밥 기대하지 말라고.”(홍 박사) “그래도 싱싱하고 좋은 식재료를 열심히 사서 냉장고에 채우고 있어요.”(여 박사) 두 사람의 대화엔 쓴소리가 없다. 타닥타닥 깨 볶는 소리의 고소함만 풍겨 나온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