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만장일치 국회 통과, 무과실 책임 부과 등 피해 구제에 초점

늘어난 기업 부담…환경배상법 ‘공포’
매머드급 환경 규제 중 하나인 ‘환경오염 피해 배상 책임 및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환경배상책임법)’이 산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2월 말 공포됐다. 국제적으로 ‘녹색보호주의’가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상함에 따라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 환경 사고 피해 방지와 기후변화 대응 등을 위한 제도의 법제화를 적극 추진 중이다. 이러한 신규 또는 개정된 환경 관련 법의 도입과 시행은 기업의 부담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환경오염 피해는 우리가 농업을 벗어나 대규모 중화학의 장치산업에 따른 경제 발전을 시작하면서 줄곧 야기된 문제였다. 그동안 환경 피해에 대한 보상 관련 법률을 제정하려는 노력이 수차례 있었지만 법률 제정에는 매번 실패했다. 이 때문에 환경배상책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 인원 205명 전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는 것은 국내 환경오염 사고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고 그동안 환경 사고 피해자에 대한 배상 등 실효성 있는 구제 장치가 미흡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배상비용 감당 못해 도산하는 기업도
법제처 자료에 따르면 태안 원유 유출 사고(2007년 12월),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2012년 9월) 및 여수 유류 유출 사고(2014년 1월) 등 환경오염 사고가 연이어 발생해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환경오염 사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진 상태다. 통계적으로도 환경오염 사고는 2004년 45건에서 2010년 102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화학 사고 신고 건수도 과거에는 매년 평균 13건이던 것이 2013년에는 70건을 웃돌고 있다. 이러한 환경오염 사고에 대해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자는 환경오염의 특성상 피해 입증이 어렵다. 고액의 소송비용과 소송의 장기화 등으로 대부분이 소송을 포기하고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기업도 피해 배상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하거나 기업 이미지 실추, 브랜드 가치 하락 등 막대한 손실을 봤다. 특히 국가는 환경오염 사고 피해 복구에 막대한 국민 세금을 투입해야 했다.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건 때는 554억 원이 투입됐다.

환경오염 사고 대응은 일차적으로는 환경오염 사고를 예방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식은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하는 것이다. 환경배상책임법은 환경오염 위험성이 높은 시설에 대해 환경책임보험에 가입하도록 해 피해자가 자동차책임보험처럼 신속하게 피해 배상을 받도록 한다. 또한 사고 기업도 도산 위험 없이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고 환경오염 사고에 따른 재정 투입도 최소화할 수 있다.

환경배상책임법이 마련되기 전에는 환경오염 피해에 대해 포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률이 없어 화학물질이나 유류 등에 의한 환경오염 피해가 발생해도 피해자는 실제로 보상을 받기 어려웠다. 먼저 피해자가 화학물질 등에 대한 정보 부족 등으로 화학물질 사업자의 고의·과실 및 그 영업 활동과 피해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곤란하다. 설령 피해자가 사업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는 것을 입증해도 화학 사고에 따른 피해가 광범위해 배상액이 고액인 경우가 많다. 사업자의 배상책임 이행이 어렵기 때문에 화학 사고의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구제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한 번의 사고를 내면 막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돼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도 자금 사정이 좋지 않으면 공장 문을 닫거나 도산 위험에 빠지게 된다. 환경오염 사고에 대한 구제책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국민과 기업이 모두 불안에 떨어 온 것이다.
늘어난 기업 부담…환경배상법 ‘공포’
미국·독일 등의 일부 선진국은 1970년대부터 환경오염 사고에 따른 기업의 피해 배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환경오염피해보험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최근 비등하는 여론에 부응해 2013년 5월 국민 안전과 환경 피해 구제를 강화하기 위해 환경오염피해배상제도 및 보험제도 법제화를 국정 과제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2013년 3월부터 5월까지 산업계·국회·학계·시민단체 등 35명의 이해관계인으로 구성된 환경오염 피해 구제 정책 포럼을 14회 운영하고 법률안의 쟁점 조정 및 법률 전문가 검토 등을 거쳐 법률안을 마련했다. 이후 공청회, 화학 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산업계(21개 협회) 설명회, 기업환경정책협의회·중소기업환경정책협의회, 환경 관련 학회장, 시민단체 토론회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다. 2013년 7월 30일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환경오염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고 2013년 11월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계가 3차에 걸쳐 협의를 진행했다. 2013년 12월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융합행정협의회를 통해 법률안에 대한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이번에 공포된 환경배상책임법은 환경오염 위험성이 높은 시설은 환경책임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해 피해자가 자동차책임보험처럼 신속하게 피해 배상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사고 기업도 도산 위험 없이 지속 가능한 경영이 가능해졌고 환경오염 사고에 따른 재정 투입도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원인자 불명 등으로 보험을 통한 피해 배상이 불가능한 때에는 국가에서 피해자에게 구제 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해 피해 구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했다.


기업 배상 책임 한도 2000억 원
환경배상책임법은 환경오염 유발 시설을 설치·운영할 때 환경오염 피해에 대한 무과실 책임을 부과했다. 인과관계 규명이 어려운 때에도 피해자의 구제가 용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무과실 책임 원칙은 기업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산업계의 반대 의견이 있지만 환경오염 피해에 대한 무과실 책임은 1984년부터 대법원 판례로 확립된 것을 명문화한 것이다.

기업의 배상 책임 한도는 2000억 원으로 독일의 환경책임법의 배상 책임 한도 2400억 원보다 적고 유류오염손해배상법의 한도액인 1500억 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다만 한도 금액은 시설 규모 등을 감안해 시행령으로 규정할 예정이며 고의나 중대한 과실, 법령위반은 책임 한도의 예외를 둠으로써 기업의 안전 관리 의식, 배출 허용 기준 준수, 피해 방제 노력 등을 유도할 수 있도록 했다.
늘어난 기업 부담…환경배상법 ‘공포’
의무 가입 대상은 특정 대기·수질 배출 시설, 지정 폐기물 처리 시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해 화학물질 취급 시설, 특정 토양오염 관리 대상 시설, 해양 시설로 환경부 환경백서 기준으로 법정 오염 물질 배출 시설이 허가·신고 대상을 제외하고 12만여 개 이상이다.

이들 시설의 가입 금액은 업종별 위험도·배출량 등을 감안한 시뮬레이션 결과 등을 토대로 시행령에 최저 가입 금액을 규정할 예정이다. 보험개발원의 자료에 따르면 배상 한도 2000억 원 기준으로 매년 대기업은 최대 5억 2000만 원, 중기업은 5300만 원, 소기업은 830만 원의 보험료를 낼 것으로 예상돼 기업의 직접적인 보험료 부담이 예상된다.

환경부는 앞으로 정부·산업계·학계 등이 참여하는 산업계 협의회를 운영해 이해관계인 의견이 반영된 하위 법령을 마련하고 환경책임보험 상품도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환경배상책임법은 공포 1년 후 시행할 예정이며 환경책임보험은 공포 1년 6개월 후 시행된다.


사고 예방 활동 체계적 관리 필요
환경배상책임법은 정보 부족 등에 따른 기업의 고의·과실 및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곤란한 피해자들을 위한 실효적인 구제 수단이 될 수 있다. 환경오염 피해의 특성상 민사소송의 당사자 입증 책임 원칙이 적용된다면 피해자 배상이 어려워진다. 환경배상책임법은 피해 입증에 필요한 정보청구권을 보장한다. 환경오염피해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만 지불했다고 해서 기업의 의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늘어난 기업 부담…환경배상법 ‘공포’
환경배상책임법는 인과관계 입증이 비교적 명확한 화재·폭발 등과 같은 급성적 사고뿐만 아니라 오염 물질이 장기간 누적돼 발생되는 만성적 피해에 대해서도 피해 입증이 쉽게 되도록 인과관계 추정을 규정했다. 다만, 환경오염 피해가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거나 인과관계 추정 배제 요건을 충족할 때는 제한적으로 추정 배제를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환경·안전 관련 법령 및 인허가 조건을 준수하고 환경오염 피해 예방 노력 등 그 책무를 다했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정보청구권을 행사했을 때 제공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기업은 앞으로 환경오염 사고 예방을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하며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독일 환경책임법의 정보청구권은 사용된 설비, 투입되거나 배출된 물질의 종류와 농도, 기타 시설에 의해 유발된 작용과 특정한 가동 수칙에 관한 사항을 그 범위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를 기업 내부에서 철저하게 관리하게 되면 환경오염 사고의 반증 책임을 명백히 증명함으로써 소송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소송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김명서 EFC 지속가능금융센터 책임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