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증권사 전담 조직 가동… “핀테크는 위기 아닌 기회”

‘인터넷 은행 잡아라’ 경쟁 포문
정부가 규제 완화 정책을 펼치는 등 핀테크 사업을 적극 육성하기로 함에 따라 기존의 금융 기업들도 이에 발맞춰 핀테크 관련 사업에 진출을 타진 중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핀테크가 ‘기술’ 부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핀테크의 핵심은 ‘돈이 오고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오히려 기존 금융 기업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전통 금융 기업들은 각각의 성격에 맞게 ‘핀테크 열풍’에 대응하고 있다. 물론 아직 핀테크에 대한 개념이 불분명하고 또 기존의 사업과 겹치는 부분도 많은 만큼 그 대응은 비교적 조심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기존 금융 기업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검토 중인 것은 바로 ‘인터넷 전문 은행’이다. 인터넷 전문 은행은 점포 없이 예금 수신이나 대출 등의 모든 금융 서비스를 인터넷상에서 제공하는 은행을 말한다. 인터넷 전문 은행은 소비의 편리성 면에선 매력적이다. 기업은 오프라인 지점이 필요 없어 그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으로 수수료 절감 등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은 앞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연내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 방향에도 인터넷 전문 은행 도입 방안이 포함됐다.


우리은행, 인터넷 은행 설립 검토
정부의 정책에 맞춰 각 은행들은 기존의 시스템을 대폭 업그레이드하거나 내친김에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우리은행은 현재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말에는 조직 개편을 통해 핀테크 사업부를 별도로 만들었고 이광구 은행장 역시 지난 신년 간담회를 통해 “핀테크 경쟁력을 강화해 온라인 지급 결제 시장을 선도하고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을 추진해 금융 디지털 마켓의 선두 주자가 되겠다”고 의지를 밝힌바 있다.

IBK기업은행·NH농협은행은 기존의 시스템을 대폭 업그레이드하는 형태로 대응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인터넷 전문 은행 수준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합 플랫폼 ‘IBK 원(ONE)뱅크’를 오는 6월 출시할 예정이다. 이 상품이 출시되면 고객들은 금융거래부터 상품 추천·상담 및 가입까지 모든 은행거래를 온라인을 통해 처리할 수 있게 된다. NH농협은행도 인터넷 전문 은행의 전 단계로 스마트금융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우선 1차로 올해 4월 말까지 비대면 거래 상담 및 상품 판매에 대한 1단계 시스템을 구축하고 연말까지 상품 고객별 분석을 통해 상품 추천 시스템 구성을 완료할 예정이다.

하나금융은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활용해 원격으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리모트 뱅크 형태의 ‘원큐뱅킹’이 테스트 단계에 있다. 이 시스템은 현재 외환은행 캐나다 법인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는 아직 검토 중인 상황이다.

한편 신한금융의 지난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이 “기존 은행의 인터넷 뱅킹이 인터넷 전문 은행이 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이미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며 인터넷 전문 은행에 대해 크게 차별화된 경쟁력은 없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지만 아직까지는 시장 상황을 보고 있는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 역시 핀테크를 새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증권사들은 핀테크를 현재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는 해외 직접 투자와 적극 연계한다는 계획이다.

키움증권은 핀테크 열풍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이다. 키움증권이 온라인 부문에서 핵심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적 분석에서 나온 결과다. 키움증권은 특히 인터넷 전문 은행에 도전한다는 방침이다. 전략기획본부를 중심으로 전사 차원에서 핀테크 사업 전략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해외 사례 벤치마크, 정부 제도 도입 추이, 사업성 검토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제도 도입이 발표되면 태스크포스팀(TFT)을 즉각 구성할 예정이다.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은 “핀테크에 성장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인터넷 대표 증권사인 만큼 핀테크를 올해 중점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키움증권뿐만 아니라 기타 대형 및 중형 증권사들도 이미 핀테크 관련 TFT를 구성했거나 운영할 예정이다.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은 “최근 핀테크 관련 TFT를 발족했다”면서 “향후 도입될 인터넷 전문 은행과 핀테크 서비스용 플랫폼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KDB대우증권도 핀테크 TFT를 구성, 관련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다. 현대증권은 2월 1일 핀테크 대응 전략 TFT를 신설, 운영하기로 했다. 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NH투자증권 등도 관련 사업 진출을 위한 검토에 나섰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신한금융그룹의 시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며 “실무 부서 차원에서 지주사와 연계해 핀테크 활용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금융 당국의 핵심 추진 사항으로 강조되는 핀테크는 기존 증권업 고유 분야의 고도화 또는 신규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중·장기적으로 금융 투자업에 대한 도전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해외에서는 자산 관리, 위탁 매매, 데이터 분석, 인터넷 뱅킹, 유통시장 등 금융 투자 산업 여러 분야에서 핀테크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은행 잡아라’ 경쟁 포문
카드사 ‘핀테크 원조는 우리’
카드 업계는 핀테크에 따른 기회와 위협이 양존하는 곳이다. 카카오페이 등에서 보듯이 현재까지 이뤄지고 있는 핀테크는 ‘송금 및 결제’ 기능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카드 업계는 핀테크를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근수 여신금융협회장은 1월 28일 “신용카드 시장이 핀테크 열풍에 힘입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지불 결제 시장의 변동과 금융 당국의 핀테크 사전 규제 완화 움직임이 신용카드 업계에 새로운 경쟁과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며 “핀테크 산업은 분명 신용카드 사업을 한층 도약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카드 업계는 전자 지급 결제 수단으로 가장 민감하게 정보기술(IT) 변화에 대응했다. 대표적인 예가 실물 카드의 틀을 깬 ‘모바일 카드’다. 카드사들은 모바일 카드와 같은 기존 시스템을 바탕으로 더욱 편리한 간편 결제 방식을 실현할 수 있는 핀테크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카드사들은 기존 모바일 카드 방식 이외에 다양한 방식의 간편 결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온라인 카드 결제 시 최초로 카드 번호와 개인 정보를 입력하면 이후부터는 아이디(ID)와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결제가 완료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하면 문자 메시지(SMS), 자동 응답 전화(ARS) 등 사전 인증을 거치지 않고 비밀번호만 한 번 더 입력하거나 결제 버튼만 누르면 바로 결제가 진행된다.

특히 카드들은 핀테크를 활용한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금융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신한카드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 맞춤형 카드 서비스인 ‘코드나인’ 체계를 상품 개발뿐만 아니라 회원 모집과 프로모션, 가맹점 등 다양한 마케팅에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카드는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회원에게 할인과 포인트 적립 등 맞춤형 혜택을 자동으로 매칭해 주는 CLO(Card Linked Offer) 서비스를 플랫폼으로 개발해 하반기 중 상용화할 계획이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출시한 ‘챕터2’를 활용해 핀테크 서비스를 다양화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이미 신용 평가, 투자 분석, 보안 기술 등에 관한 핀테크 기업들이 성과를 내고 있다. 핀테크가 상용화될수록 고객 맞춤형 서비스의 질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