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50달러대 ‘아라’ 공개…제조 방식·구입 패턴 혁신 부르나

필요한 기능만 쏙쏙 ‘모듈 스마트폰’
구글의 모듈 스마트폰 아라(ARA)가 베일을 벗었다. 모듈 스마트폰은 카메라·안테나·배터리 등 각종 스마트폰의 부품을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조립할 수 있는 맞춤형 제품이다. 구글은 이미 2014년에 아라의 개발 현황을 공개한 바 있는데, 최근 구글 개발자 회의에서 구체적인 실체를 자세히 공개하고 올해 중 푸에르토리코에서 이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아라는 본체 위에 각종 부품을 끼워 넣고 조립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구글은 이 부품들을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않고 설계도와 각 부품 간 인터페이스·소프트웨어 등 생산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외부에 공개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많은 기업들이 아라의 부품을 만들게 지원함으로써 기존보다 더욱 저렴한 가격의 스마트폰을 출시하겠다는 복안이다.

모듈 스마트폰을 구상 중인 기업은 구글만이 아니다. 작년에 중국 스마트폰 기업 ZTE는 에코 모비우스라는 모듈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핀란드의 서큘러 디바이스라는 벤처기업도 퍼즐폰(Puzzle phone)이라고 불리는 유사한 콘셉트의 모듈 스마트폰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휴대전화와 스마트폰 그리고 스마트 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로 이어져 온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는 완전히 통합된 형태의 제품이 대부분이다. 특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통합을 강조해 온 애플의 철학이 담긴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 스마트폰은 일체형 제품이라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기반의 스마트폰 제조 기업들이 배터리와 메모리 카드 등 일부 기능을 중심으로 부품의 교체와 성능 향상을 지원하고 있지만 사용자의 기호에 맞는 핵심 부품의 조합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라를 비롯한 모듈 스마트폰의 등장은 기존 스마트폰 기업의 아성을 뒤흔들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부터 진화해 온 모듈형 제품
모듈형 제품 구상은 최근에 등장한 게 아니다. 이전에도 주요 부품을 사용자가 자유롭게 조합해 사용자의 취향에 맞게 성능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모바일 제품에 도입됐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98년 개인용 휴대 단말기(PDA) 제조 기업 핸드스프링이 출시한 바이저(Visor)는 스프링보드(SpringBoard)라는 사양을 도입했다. 이는 제품의 뒷면 슬롯에 게임과 어학 사전, 저장 장치 등 다양한 모듈을 추가해 제품의 성능을 더욱 확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슬롯이 탑재된 바이저는 다른 제품에 비해 부피가 더욱 커지고 투박해 미관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저변 확대에 실패한 바이저는 조용히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2008년 이스라엘 벤처기업 모듀 역시 모듈형 모바일 기기의 개념을 제시했다. 모듀는 신용카드 크기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휴대전화를 선보였다. 특히 이 휴대전화는 다양한 전용 재킷(Jacket)에 들어가 합체하면 멀티미디어 재생기, 위치 추적기, PDA 등 여러 가전제품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모듀의 창업자 도브 모란은 이 제품이 휴대전화 시장에 새로운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러나 출시를 목전에 둔 모듀 휴대전화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개발이 중단됐고 자금난에 몰린 회사가 2011년 문을 닫게 되면서 상용화에 실패했다.

모듈 스마트폰의 개념은 최근 네덜란드의 산업 디자이너 데이브 하켄스에 의해 다시 주목 받게 됐다. 그는 각각의 개별 부품을 조합해 스마트폰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인터넷으로 제안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하켄스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디스플레이·배터리·통신 부품 등 주요 부품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조합하는 맞춤형 스마트폰 폰 블록(Phone block:조립식 스마트폰)을 동영상으로 게재했다. 하켄스는 이를 통해 사용자의 필요에 따른 최적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고 사소한 부품 고장으로 스마트폰이 아깝게 버려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하켄스는 구글의 아라 프로젝트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면서 폰 블록의 아이디어를 아라로 구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 성장 돌파구 될 수도
구글의 모듈 스마트폰 개발은 과거 IBM이 시도한 개인용 컴퓨터 시장 진출 전략을 스마트폰 시장에도 유사하게 적용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후발 주자였던 IBM은 자사의 개인용 컴퓨터 PC의 부품 기술을 과감히 외부에 공개해 다양한 기업들이 PC와 호환되는 부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IBM은 이를 통해 경쟁사보다 값싼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하고 시장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구글 역시 IBM처럼 스마트폰의 부품 기술을 완전히 공개한 것은 현재 스마트폰 시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허물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작은 부품을 큰 덩어리인 모듈로 만들고 이들을 조합해 완제품으로 만드는 모듈 제조 방식은 이미 다양한 산업에서 적용되고 있다. 공정 시간을 단축하고 공용 부품을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빠르게 출시할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모듈 제조 방식은 자동차는 물론이고 가전제품 등 여러 분야에 확산되고 있다. 비록 부품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 최적의 성능을 추구하기는 어렵지만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는 동시에 저렴하고 신속하게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듈 제조 방식이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아라로부터 촉발된 모듈 스마트폰이 점차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스마트폰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혁신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수많은 부품 및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통해 스마트폰이 자유롭게 개발됨으로써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 기호에 맞는 스마트폰의 판매를 통해 각종 부품과 액세서리 등 스마트폰과 연관된 시장의 성장도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저렴한 가격의 모듈 스마트폰이 활발히 출시되면서 개발도상국의 스마트폰 보급이 크게 늘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실제로 구글은 아라를 약 50달러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 일부 추측처럼 아라가 새로운 기기에 열광하는 소수 사용자만을 위한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낙관적 전망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개별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최종적으로 조합해 스마트폰을 만드는 내재화된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 광범위한 글로벌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마케팅 및 생산관리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모듈 스마트폰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기능과 함께 휴대성과 디자인 등 복합적인 요소가 중요시되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IBM의 개인용 컴퓨터 전략이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아직까지 모듈 스마트폰의 성공을 단언하기는 어렵다. 기술적 측면 이외에도 복잡한 이동통신 환경과 사용자들의 구매 관성 등 극복할 장애가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라가 만일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스마트폰 산업의 가치 사슬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는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각 영역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쥔 기업이 존재했던 것과 달리 오늘날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다양한 기업들이 가치 사슬의 모든 분야에 걸쳐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치열한 각축전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모듈 스마트폰이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다면 시장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 등 새로운 혁신 패러다임을 촉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모듈 스마트폰은 그 성공 여부를 떠나 미래 모바일 기기 제조와 구입의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모듈 스마트폰의 등장에 따른 기회와 위협 요인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모바일 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전략 수립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