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나눔을 진보의 가치로 본다면 노인은 대표적인 수혜 계층이다.

대책 없이 내몰린 50대 베이비부머, 삶의 현실에 짓눌린 60~70대….

그런데 왜 진보 진영은 노인 표 걱정을 하고 있을까.
노인은 보수를 찍는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1964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대우그룹. 대통령녹색성장위원회. 2002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현).




“노인은 보수를 찍는다.” 최근 몇 차례 선거 결과를 놓고 야권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저출산·고령화로 노인 인구 비중이 더 높아지니 고민도 더 깊어지는 모양이다. 과연 그럴까. 같은 나이라도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고 무슨 기준으로 보수·진보인지도 모호하니 그리 간단한 얘기는 아니다. 보수와 진보에는 다양한 정의가 있다. 정책의 현실에서는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쪽이 보수이고 ‘배려와 나눔’을 강조하는 쪽이 진보라고 본다. 자유롭게 경쟁하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사회의 효율이 높아진다는 보수의 주장에 사람마다 여건이 다른데 무작정 경쟁할 수는 없으니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불평등을 바로잡는 나눔이 필요하다는 진보의 주장이 맞서는 셈이다. 기존의 체제가 경쟁의 결과라면 나름의 사연이 있으니 무작정 바꿀 일이 아니고 모순을 안고 있는 불평등한 체제라면 빨리 바꿔야 할 과제가 된다.

배려와 나눔을 진보의 핵심 가치로 본다면 노인은 진보 정책의 대표적인 수혜 계층이다. 노후 대책이 든든하고 몸 아픈 데 없이 재미있게 사는 노인이 얼마나 될까. 노후 생활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개미와 베짱이 동화를 들이대면 억울한 속사정이 산더미 같이 쏟아지니 욕먹고 표 잃기 딱 좋다. 실제로 유럽의 복지 정책을 둘러싼 논쟁에는 노인 연금이 핵심 이슈였고 이른바 ‘제3의 길’도 노인이 핵심 수혜 계층이었다.

대책 없이 직장에서 내몰리고 퇴직금을 쪼개 차린 가게마저 빚에 몰린 50대가 쏟아져 나온다. 연금 개혁으로 통장이 쪼그라들 공무원·군인·선생님이 곳곳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노인 표를 만날지도 모른다.

지난 10여 년간 노인의 투표 성향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실험적으로 쏟아내는 요란한 ‘개혁’에 세상이 그리 쉽겠느냐는 ‘어른의 지혜’도 있었고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북한에 대한 모호한 입장은 걱정거리가 됐다. 유신 교육, 5공 우민화의 잔재라며 억울하다는 분도 있지만 운동권 정서와 인맥에 묶여 대중의 마음을 읽지 못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당장 살길이 막막한 50대, 특히 베이비부머는 숫자도 많거니와 유신과 5공에 대한 ‘저항의 경험’을 갖고 있다. 조금 더 젊은 386세대(40대 후반~50대 초반)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지역주의가 약한 수도권 유권자가 늘고 있고 북한은 무서운 적이 아닌 골치 아픈 이웃이 되어 가니 지역 기반과 안보 위기에 기댄 ‘한국형 보수’엔 보통 큰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진보 진영은 노인 표 걱정을 하고 있을까. 내던져진 50대, 삶의 현실에 짓눌려 가는 60~70대를 끌어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지 정책은 여야가 다 비슷하고 어차피 나랏돈 갖고 생색내는 짓이라고 여겨 다 믿지도 않는다. 동년배 야권 인사들은 오히려 질투심의 대상이다.

이념을 정책으로 만들려면 진짜 실력이 필요하다. 창조 경제 100조 원, 눈먼 돈이 어디서 새는지 그 돈이면 치매 노인 몇 명을 돌볼 수 있는지, 공무원·군인연금을 얼마나 덜 깎을 수 있는지 밝혀야 한다. 중소 벤처를 돕는 착한 일이라며 나눠 쓸 생각이나 한다면 남침 위협에 매달려 연명하는 한심한 보수와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