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 같지만 일선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호소와 건의로부터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파악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제도가 개선될 수 있다.

아이디어는 현장서 나온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대표

1947년생. 1971년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1973년 고려대 사회학 석사. 2002년 고려대 사회학 박사. 1978년 한국리서치 대표(현). 2007년 대한산악연맹 부회장(현).



근속 12~36개월 된 사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사고과 원칙을 잘 모르겠다. 의자에 문제가 있는데, 새것으로 바꾸어주지 않는다. 업무 공간이 좁다. 이런 불평을 또 듣기 싫었지만 연초에 약속한 일이라 간담회를 가졌다. 사전에 네 가지 주제를 줬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것’, ‘일하면서 불편한 것’, ‘본인의 역량을 증대하기 위한 지원 요청 사항’, ‘회사 운영상 건의하고 싶은 것’. 불평불만만 쏟아 놓을 것 같아 회사의 좋은 점을 첫째 주제로 요구했던 것이다. 듣기만 하자. 꼭 필요한 설명이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말자. 특히 그 자리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자. 이런 각오를 하고 20명씩 세 그룹으로 나눠 3일 동안 하루 2시간 정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첫째 발언한 사원이 회사의 좋은 점을 먼저 이야기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좋은 점은 그냥 형식적으로 말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문제점이나 건의 사항을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말문을 열고 각오한 바처럼 듣기만 하면서 공책에 자세하게 적어 나갔다. “제품 테스트 공간이 부족해요. 식품 테스트할 때에는 부엌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휴게실에서 하니까 냄새도 나고 고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관찰실의 녹화 화질이 HD 수준인데, 고객은 풀 HD 영상을 원해요”, “업무와 직접 관계없는 책도 회사에서 빌려 주거나 사 주면 좋겠습니다. 사장님이 소설을 읽으라고 했잖아요”, “수습 기간에는 멘토가 있었는데, 그 후 멘토 체제가 없어요. 물어 볼 것은 많은데”, “상급자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팀에는 대리만 4명 있고 그 위에는 이사님만 있어요.” 이런 이야기들이다. 부서장들이 건의하는 투와 사뭇 다르다. 부서장들은 “풀 HD 시설이 있어야 합니다”, “갱 서베이(Gang survey) 시설을 개선해야 합니다”, “사내 기밀 서류를 등급화해야 합니다”라는 식의 표현이다. 관념적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일선에서 일하는 어린 사원들의 이야기는 현실이다. 현장감이 있다. 제안이 아니고 호소다. 당장 고치고 만들고 지침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와드득 난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간담회 후 필자의 행동을 자제했다. 부서장들의 의견을 다시 듣고 행동 지침과 일정을 잡아야지, 어린 사원들의 말만 듣고 수백 대의 컴퓨터 기능을 올리거나 건물 밖에 별도의 창고를 빌리라고 하거나 독서 통신에 요청하는 개인 도서의 범위를 확대하면 회사 의사소통의 채널이 무너질 수 있다. 사장은 부서장을 가장 존중한다는 모습을 다시 보여 줘야 한다. 부서원들은 사장의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부서장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발언을 인사팀에 정리해 부서장들에게 전달하라고 하고 행동은 해당 부서장들의 의사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며칠을 보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일선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호소와 건의로부터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파악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제도가 개선될 수 있다. 그들에게 직접 아무 언질도 주지 않고 있다가 한두 달 후 업무 공간, 시설, 장비, 매뉴얼, 운영 지침이 가시적으로 개선된다면 그들은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들이 기뻐할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반기에는 과장급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