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로 불편 없애…부동산 중개·모기지 시장도 혁신 바람

카메라만 있으면 카드 결제 ‘끝’
샌프란시스코 남쪽 레드우드시티에 자리한 플린트는 최근 각광받는 핀테크(Fintech)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 중 하나다. 2011년 설립된 이 업체는 중소 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모바일 결제 서비스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끝난 950만 달러 규모의 세 번째 자금 모집에 미국 1위 통신 사업자 버라이즌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중소 상공인과 자영업자를 타깃으로 한 모바일 결제 시장은 이미 치열한 전쟁터다. 무엇보다 트위터의 공동 창업자인 잭 도시가 설립한 스퀘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다. 스퀘어는 2010년 기존 카드 결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중소 상인들을 위한 획기적인 서비스를 내놓았다. 스퀘어가 무료로 배포한 소형 카드 리더기를 스마트폰의 이어폰 구멍에 꽂으면 비싼 단말기 없이도 누구나 신용카드 결제를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용 단말기 설치와 가맹점 등록비 때문에 카드 결제를 망설이던 중소 상공인들이 스퀘어에 열광했다. 현재 스퀘어 사용자는 100만 명에 육박한다.

그레그 골드파브 플린트 최고경영자(CEO)는 스퀘어 모델에서 한 발 더 나갔다. 그가 주목한 것은 모든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다. 골드파브 CEO는 “소형 리더기는 잃어버리기 쉽고 고장 우려가 있다”며 “스마트폰 카메라를 활용하면 별도의 장치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플린트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카메라로 신용카드를 촬영하면 카드 정보가 곧바로 전송돼 결제가 이뤄진다. 명함에 쓰인 글자를 인식하는 명함 스캐너를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자영업자 겨냥한 ‘내 손안의 사무실’ 야심
신용카드에 새겨진 정보를 정확하게 읽어 내려면 스마트폰 카메라를 매우 섬세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카드마다 색깔이 다르고 입체 글자라 굴곡과 각도까지 신경 써야 한다. 골드파브 CEO는 “2006년부터 연구해 이미지 필터링과 패턴 인식에 관한 고난도 기술과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플린트는 록히드마틴이 소유하고 있는 패턴 인식 특허의 독점 라이선스도 확보했다.

플린트는 카드 결제 때마다 결제액의 2.5%를 수수료로 받는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무려 7배 성장했다. 모바일 앱 다운로드도 20만 회를 돌파했다. 흥미로운 것은 평균 결제 금액이다. 골드파브 CEO는 “플린트 시스템을 통한 평균 거래 금액이 115달러”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소규모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0~20달러 결제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는 “단순한 물품 판매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 사업자 고객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우연이 아니다. 골드파브 CEO는 “플린트는 진정한 모빌리티(이동성)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스퀘어의 고객은 커피숍 같은 일반 매장을 운영하는 중소 상공인들이 상당수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결제를 처리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한 장소에 머무른다. 이동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플린트는 처음부터 스퀘어와 다른 고객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를테면 프리랜서 사진작가나 메이크업 아티스트 같은 독립 사업자들이다. 이들은 사무실이 따로 없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일한다. 언제 어디서든 고객 요구를 처리해야 한다.

플린트의 진짜 야심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 회사는 중소 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업에 필요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 한다. 골드파브 CEO는 “스마트폰이 당신의 진정한 ‘퍼스널 컴퓨터’가 될 것”이라며 “모바일 디바이스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플린트의 모바일 앱은 결제 처리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관리에 필요한 여러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 앱을 통해 고지서 발송과 영수증 발급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e메일 프로모션과 쿠폰 발행도 가능하다. 특히 쿠폰은 애플의 패스북과 연동된다. 골드파브 CEO는 “고객들의 비즈니스가 성장해 다음 레벨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서비스를 계속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개업자·소비자 윈-윈 모델 찾아
플린트와 같은 해 창업한 플랜와이즈는 부동산과 모기지 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핀테크 업체다. 플랜와이즈의 출발은 2007년 미국을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에 분노한 두이 보 최고기술책임자(CTO)와 빈센트 터너 CEO의 의기투합에서 시작됐다. 이들의 목표는 ‘사람들이 좀 더 현명하게 재무적인 의사 결정을 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보 CTO는 대학에서 수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금융 관련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프로그래머다. 호주 출신인 터너 CEO는 17세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세워 큰돈을 벌고 실리콘밸리에서 엔젤 투자자로 활동 중이었다.
카메라만 있으면 카드 결제 ‘끝’
플랜와이즈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소비자들이 자신의 재무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했다. 매일의 현금 흐름과 순자산, 부채 밸런스 등을 50년의 기간에 걸쳐 보여준다. 샌머테이오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보 CTO는 “2007년 같은 비극을 피하려면 자신의 재무적인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플랜와이즈의 강점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클릭 몇 번으로 간단하게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서로 구매 조건이 다른 두 주택 중 어떤 것을 살지, 올해나 내년에 매입할지 아니면 계속 임대주택에 거주할지, 또 결혼에 더 많은 돈을 쓰는 대신 자동차 구매를 한 해 미룰지 아니면 결혼 비용을 줄이고 차를 6개월 먼저 구매할지 등등 여러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따져볼 수 있다. 유일한 문제는 이 서비스가 무료라는 것이다.

창업 4년째인 플랜와이즈가 확실한 수익 모델을 찾은 것은 지난해부터다. 전미부동산업자협회(NAR)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투자를 받으면서 부동산과 모기지 시장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작년 7월 부동산 업계에 정통한 브랜든 리를 최고매출책임자(CRO)로 영입해 회사의 무게중심을 확실하게 옮겼다. 터너 CEO는 “현재의 부동산 매물 검색과 거래 방식에 소비자와 중개업자 모두 불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언제 고객을 빼앗길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 수개월 동안 여러 채의 집을 보여주며 관계를 다진 고객이 질로나 트룰리아 같은 부동산 정보 사이트에서 우연히 본 광고에 끌려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곤 한다. 소비자도 이런 상황이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광고의 신뢰성이 낮은 데다 부동산 사이트들 대부분이 개인 재무 정보를 요구한다. 미국은 모기지를 통해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 모기지 조건이 주택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플랜와이즈는 인터넷 기술을 통해 소비자와 중개업자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우선 중계업자가 고객들을 플랜와이즈 서비스에 가입시켜야 한다. 이후 해당 고객이 어떤 부동산 사이트에서든 매물을 검색하면 그 내용이 중계업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터너 CEO는 “이는 중계업자는 물론 소비자에게도 강력한 툴”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는 개인 재무 정보를 더 이상 거대 부동산 사이트에 넘겨줄 필요가 없다. 자신이 선택한 중계업자만 상대하면 된다.

소비자들은 플랜와이즈의 서비스를 계속 무료로 쓸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중개업자는 연간 사용료를 내야 한다. 미국은 주택 구입 때 모기지가 필수이기 때문이 중개업자들은 대개 3~5명의 모기지 대출업자들과 함께 일한다. 이들도 플랜와이즈의 수익원 중 하나다. 중개업자와 대출업자가 돈을 내고 소비자는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조다. 더 많은 소비자가 플랜와이즈를 사용할수록 중개업자와 대출업자도 이득이다. 보 CTO는 “개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재무적 의사 결정인 주택 구매가 너무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정보기술(IT)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레드우드시티·산마테오(미국)=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