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잇단 디폴트 선언…‘개혁이냐 성장이냐’ 갈림길 서나

중국에서 연초부터 ‘디폴트’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스마트폰 관련 위탁 생산 공장의 잇단 가동 중단,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디폴트 도미노 위기, 지방정부 산하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금융공사(LGFV:Local Government Financial Vehicle) 첫 디폴트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이들 차이나 리스크 원인으론 공급과잉에 따른 구조조정, 부동산 거품 붕괴, 부패 척결 운동 후폭풍, 지방정부 부채 구조조정 등을 들 수 있다.

스마트폰 부품을 위탁 생산하는 쑤저우렌젠과기는 지난해 12월 5일 도산을 발표했다. 쑤저우의 또 다른 스마트폰 부품 생산 기업 홍후이과기는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두 회사 모두 한때 1만 명 이상의 근로자를 둔 공장을 돌렸던 대형 기업들이다.

원인은 모두 과잉공급 때문이다. 중국에선 전통 업종에서부터 첨단 신흥 산업까지 공급과잉이 심각한 문제다. 특히 휴대전화는 보급률이 이미 90% 이상이어서 성장 공간이 크지 않은 데도 생산 시설이 크게 늘어 공급과잉이 심화됐다.


개혁과 연착륙 동시 해결이 숙제
지난해 12월 말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빌린 돈을 기일 내에 갚지 못한 카이샤는 중국 선전에 있는 부동산 개발 업체다. 최근 디폴트설이 돌고 있는 헝성디찬도 유명 부동산 개발 업체다. 둘 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으로 최근 실적이 좋지 않다. 부동산 경기 악화가 중국 경기 둔화의 주범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두 기업의 고난은 부패 척결의 후폭풍도 보여준다. 카이샤가 디폴트 위기에 몰린 것은 작년 10월 선전시 산하 관료가 부패 혐의로 낙마하면서 이후 이와 연루된 카이샤 창업자가 사임한 데 따른 것이라고 중국 언론들은 전한다. 헝성디찬은 대주주의 사업 파트너가 해외 도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자금난을 맞았다. 국유기업 경영진은 물론이고 지방 관료들과 관시(關係)를 구축하며 급성장해 온 민영기업인들이 부패 혐의로 체포되는 사례가 늘면서 중국에선 반부패 운동이 경기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넘치는 공급으로 쓰러지는 기업들
올해 중국에서 부각되는 또 다른 디폴트 리스크는 지방정부 산하 LGFV의 디폴트다. 도이체방크는 1월 12일 올해 처음으로 LGFV 디폴트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지방정부 부채가 2조8000억 위안에 달한다는 무디스의 전망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방정부는 그동안 직접 자금을 빌릴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산하 LGFV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 왔다. 이 과정에서 LGFV에 대한 무한 지급보증을 암묵적으로 해줬다. 지방정부가 디폴트 위기에 빠진 것은 지방정부의 난개발을 막기 위한 중앙정부의 조치와 부동산 경기 악화에 따른 재정수입 감소가 겹친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은 작년 10월 지방정부가 LGFV 부채에 대해 지급보증을 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지방정부가 암묵적으로 지급보증해 주는 관행을 금지함으로써 지방정부의 난개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중앙정부의 의중이다. 문제는 이런 개혁이 부동산 경기 악화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것. 지방정부의 주 수입원인 토지 판매가 부진하면서 올해 지방정부의 재정수입이 2% 감소할 것으로 도이체방크는 내다봤다. 1994년 세제 개혁 이후 처음이다.

중국 정부는 경기 둔화를 초래하는 개혁과 동시에 경착륙을 막아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시진핑 정부의 확고한 개혁 의지와 경기 둔화가 겹치면서 지도부의 정책 줄타기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전문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