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중소→중견→대기업 벤처 육성해야

“제2의 삼성 만드는 게 창조 경제죠”
벤처기업협회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 발족된 벤처기업협회는 마케팅, 투자 활성화 등 국내 벤처기업들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 활동 외에도 벤처기업의 경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에 다양한 정책 활동을 건의하는 역할을 도맡아 왔다.

지난 1월 14일 판교에 있는 다산네트웍스에서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을 만났다. 2012년부터 벤처기업협회를 이끌어 온 남 협회장은 성격이 화통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최근 ‘창조 경제’가 한국 경제의 화두로 떠올랐다. 남 협회장은 창조 경제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국내 벤처 생태계가 먼저 살아나야 하고 이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정부 관료들 앞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아 왔다. 국내 벤처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남 협회장의 ‘직언’을 들어봤다.


‘다산다사(多産多死)’ 구조 돼야
“사실 20년이란 시간 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0년대 벤처 붐이 불었다가 거품이 꺼지면서는 벤처기업가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가 퍼졌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벤처라는 게 열 개를 실패해도 하나를 성공하면 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열 개의 실패’에 방점을 찍으면 ‘하나의 성공’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다산다사(多産多死).’ 더 많은 벤처기업들이 생겨나고 더 많은 실패를 용인할 수 있어야 벤처 생태계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는 “20년간 벤처 업계를 지켜 본 사람으로서 2000년대만큼 사업하기 좋은 환경은 없었다”며 조심스레 운을 뗀다.

“한국은 실리콘밸리 등과 다르게 정부 주도로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고 성장시킨 측면이 큽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정부 주도의 성장이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부 주도로 벤처 정책이 만들어지다 보니 ‘실패를 만들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해진 측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지금보다 조금 더 벤처기업가들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돼야 하고 민간 주도로 벤처 생태계가 움직일 수 있는 역동성이 필요하다고 보는 겁니다.”

그는 ‘거품’이라는 게 무조건 위험하다는 생각을 먼저 깰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벤처 생태계에서 실패는 ‘일상다반사’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반대로 거품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태계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물론 너무 많은 거품은 문제가 되겠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보완책을 찾아 나가는 게 중요하지 처음부터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는 위험하다는 거죠.”

실리콘밸리만 하더라도 성공한 벤처기업의 평균 창업 횟수가 2.8회에 달할 만큼 실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사업 실패=징벌 대상 혹은 인생 실패’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전도유망했던 창업 기업 대표가 사업 실패와 동시에 연대보증에 묶여 개인 파산에 이르고 신용 불량자로 전락해 재기가 불가능한 사례는 이미 흔하다.

“벤처기업협회 등의 건의로 연대보증제도가 폐지되는 등 그동안 개선된 문제들도 상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벤처 업계에서 이를 체감하는 데는 온도차가 큽니다. 예를 들어 우수한 기술력과 사회적 신용도를 갖춘 창업자들에게는 국책 보증 기관의 연대보증 부담을 5년간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중소기업 신용보증제도 개선 방안’입니다. 그런데 이 제도의 실질적 수혜자는 5% 미만입니다. 이처럼 좋은 정책을 마련한 만큼 이를 실제 창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확대해 나가는 게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융자’말고 ‘투자’ 문화 필요
벤처기업협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부와 민간의 ‘소통 창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움직이는 벤처기업인들의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협회가 해야 할 첫째 역할이다. 그리고 이를 정부에 정확하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역할 또한 갈수록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1997년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2002년 벤처건전화방안부터 2012년 연대보증 폐지, 2013년 벤처창업자금생태계선순환방안 등 벤처제도 변화의 주축엔 항상 벤처기업협회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창업-성장-성숙-재도전의 생애 주기에 걸친 지원책이 발표되고 또 일부는 시행되면서 인프라 부문에서는 거의 완비됐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창업 초기 벤처부터 중기 벤처들이 ‘중견 벤처’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돼 주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이미 그 성과 또한 적지 않다. 벤처기업협회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2013년 말을 기준으로 국내 벤처기업 중 1000억 원의 매출을 넘어선 기업은 454개에 이른다. 이 중 매출 1조 원을 달성한 기업도 10여 개에 달한다.

“2005년 선정된 벤처 1000억 원 기업은 그 이후 규모가 6.7배 정도 성장했습니다. 총매출액만 101조 원입니다. 국내 재계 5위 그룹 규모에 맞먹습니다. 이들 기업에서 평균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인원만 해도 366명 정도입니다. 국내 벤처 업계가 실질적으로도 ‘창조 경제’의 주축으로 자리잡았다는 겁니다. 앞으로도 이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적지 않다. 먼저 더 좋은 인재들이 창업 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고 우리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크라우드 펀딩 및 엔젤 투자에서 회수 시장까지 자금 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남 회장은 ‘벤처자금 활성화’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로 꼽았다. 벤처기업에 ‘융자’가 아닌 ‘투자’를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닥 시장이 지금보다 더 살아나야 합니다. 코스닥은 벤처기업들에는 그야말로 본게임과 다름없습니다. ‘다산다사’는 코스닥을 살리는 데도 중요한 핵심입니다. 더 많은 기업들이 낙오되더라도 코스닥에 더 많은 기업들이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이 돼야 벤처기업들의 경쟁력도 강화되는 겁니다.

벤처 업체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만큼이나 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물을 뿌려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화웨이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불과 20년 전인가, 화웨이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국내 벤처기업들의 기술력을 배우고 싶다고요. 그만큼 국내 벤처 업체들의 기술력 수준이 높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떻습니까. 화웨이는 세계적인 기업이 돼 있는 반면 우리 벤처들은 여전히 힘듭니다. 중국이 화웨이를 키워냈듯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찾아내고 키울 수 있을지가 앞으로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