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매출 증가율 대기업보다 월등히 높아…M&A 활성화돼야 생태계 성장

대기업 대신 벤처…인재가 몰려든다
#1.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 출신의 40대 초반 A 씨는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에 오랫동안 근무해 왔다. 그런 A 씨가 2년 전 돌연 사표를 냈다. ‘벤처 창업’이 그 이유다. 주변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도전을 선택하는 그의 결정에 우려의 시선을 보냈지만 A 씨는 자신이 있었다. 창업 2년이 지난 현재 A 씨는 국내 굴지의 기획사들과 협력해 오디션 애플리케이션(앱)을 서비스하며 회원 1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시 벤처 붐이 일고 있다. 2000년대 닷컴 붐과는 닮은 듯 다르다. 젊고 유능한 인재가 대거 벤처 업계로 몰려든다는 점은 같지만 현재 이들의 활동 범위는 더 이상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카페에 앉아 세계의 소비자를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투자금을 마련하는 데 역시 국내가 아닌 전 세계에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활동 범위 국내에 국한되지 않아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충분하다. 사무실 임대도 필요 없다. 그저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장소만 있으면 오케이다. 최근에는 SK플래닛의 상생혁신센터나 미래창조과학부의 드림엔터 등 젊은 벤처 창업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사무 공간을 빌려주는 곳들도 적지 않다. 젊은 창업가들은 이곳을 통해 네트워크를 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 것이다. 그러니 2000년대 닷컴 붐 시절처럼 그럴듯한 사업의 규모를 갖춘 후에야 비로소 창업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 그저 아이디어만 확실하다면 사무실 하나 없이도 스타트업(벤처 초기 창업)에 거침없이 뛰어들 수 있는 게 지금의 벤처 붐이다.

국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한 관계자는 “2000년대 닷컴 붐 시절에도 좋은 직장에 다니던 젊은이들이 창업에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그 추세가 더 강화되고 있다”며 “우리 기관에 원서를 내는 친구들의 이력만 보더라도 미국 명문대 유학생 출신이거나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근무한 이들도 적지 않다”고 전한다. 예전과 비교해 초기 창업 투자비용이 낮아진 영향이 크다. 자본금 없이도 아이디어만 확실하다면 2~3년간 자신이 원하는 일에 마음껏 도전해 본 뒤 실패하면 다시 취직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벤처 업계에 발을 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스타트업을 위한 민·관 협력 네트워크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진행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4’를 봐도 잘 나타난다. 창업자 174명과 대기업 재직자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대기업 재직자의 40%가 창업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실제 창업에 나선 이들 역시 스타트업 전반의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데 100점 중 55점의 점수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적지 않은 대기업 직장인들이 사표를 내기 전에 ‘투잡’으로 벤처를 먼저 시작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진입 장벽이 낮아진 만큼 실제 현장에서는 예전과 비교해 훨씬 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벤처기업들이 무사히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것은 벤처캐피털(VC)과 엔젤 투자, 액셀러레이터들이다. 그야말로 벤처 창업의 매우 초기 단계인 스타트업들은 이들 기관을 통해 초기 자금을 투자받는 것은 물론 마케팅·디자인·기술 등 사업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멘토링을 제공받을 수 있다.

벤처 기업 관계자는 “1세대 닷컴 붐을 겪은 선배들이 엔젤 투자나 액셀러레이터 기관을 운영하는 등 후배들을 끌어주는 멘토링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라며 “특히 벤처 창업자가 이 같은 기관을 이용한다면 네트워크는 물론 각 기업들이 소규모로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사업의 단계들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벤처기업 총 고용 인력 72만 명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실제로 현재 국내 벤처 업계에 등록된 벤처의 수만 해도 3만 개에 달할 정도다. 벤처기업협회에서 2014년 12월에 펴낸 ‘2014년 벤처기업 정밀 실태 조사’에 따르면 현재 확인된 벤처기업의 수는 2만9067개다. 조사 당시 9978개와 비교하면 무려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 벤처기업들의 창업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일까. 2014년 현재 벤처기업 창업자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남자(96%), 40대(45.5%), 대졸(51.4%), 엔지니어 전공(63%)’이다. 이 같은 키워드를 2001년 닷컴 붐 당시와 비교해 보면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창업자의 연령이다. 2001년 결과에서는 30대가 48.6%로 가장 많고 40대가 35.5%를 차지했다. 당시와 비교해 현재 창업자의 연령이 높아진 만큼 과거 창업 경험이 있는 경우가 2014년 조사에서 16.8%로 나타났다. 이들의 평균 성공 및 실패 횟수는 각각 1.2회였다. 2000년대 닷컴 버블이 그야말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부딪치는 것이었다면 최근의 스타트업 붐은 창업자들 역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성 창업자의 증가도 눈에 띈다. 2001년만 하더라도 남성 최고경영자(CEO)가 96.7%로 압도적인 비율을 보인 반면 2014년 조사 결과에서는 여성 CEO가 7%까지 늘어났다.

벤처 업종의 분포를 살펴보면 2014년 조사 결과에서는 일반 제조업이 51.0%로 가장 높고 첨단 제조업이 20.6%, 소프트웨어 정보통신이 16.9% 비율을 보였다. 2001년 반도체 장비와 통신장비 등 첨단 제조업이 40.6%, 소프트웨어·정보통신 서비스 26.4%, 일반 기계 및 전기기기 등의 일반 제조업 25.5%와 비교하면 업종별 순위에 변화가 보이는 부분이다.

이렇듯 2001년 닷컴 붐 시대와 비교해 최근의 벤처 업계는 시장의 규모가 커진 만큼 국내 경제에 있어서도 당당하게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의 2014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벤처기업의 평균 자본은 23억9996만 원, 부채가 35억2002만 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벤처기업의 총매출액은 약 198조7000억 원 정도로 추정되는데, 기업당 평균 매출액은 68억3711만 원으로 전년 대비 10.2% 증가한 비율이다.

임경준 벤처기업협회 과장은 “특히 2013년 대기업·중소기업·벤처기업 간 경영 성과를 비교해 보면 벤처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대기업 및 중소기업보다 높았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은행에서 비교한 2013년 대기업·중소기업·벤처기업 간 경영 성과를 보면 매출액 증가율은 대기업 0.3%, 중소기업 5.6%에 그친 반면 벤처기업은 10.2%에 달한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국내 벤처 업계의 성장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고용 효과다. 벤처기업의 총 고용 인력은 71만9647명으로 추정되며 이는 기업당 평균 24.7명에 달하는 것이다. 전년 대비 4.2% 증가한 규모다. 외국인 근로자는 기업당 0.6명으로 나타났다. 벤처기업의 56.2%가 2015년에 평균 1.5명을 채용할 계획 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국내 벤처 업계가 의미 있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수·합병(M&A) 시장의 활성화 부문이다. 실제로 2014년 벤처 실태 조사 결과에도 이 같은 인식이 나타난다. 벤처기업의 2.1%만이 M&A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벤처 관계자들은 “M&A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스타트업에 투자한 자금이 회수되는데, 국내에서는 여전히 이에 대해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일례로 최근에도 국내의 한 포털 대기업이 어느 벤처 업체를 M&A한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 벤처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 중인 다른 벤처 업체들이 “대기업이 자신들의 사업 영역을 침범한다”며 반발했고 결국 대기업이 “국내에서는 관련 서비스를 하는 업체를 M&A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얘기가 벤처 업계에 돌고 있는 중이다.

임경준 과장은 “M&A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절차를 간소화하고 M&A 전문가나 중개 기관을 육성하는 등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러나 우선적으로는 M&A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기업의 성장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보다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시급히 인식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