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입사, 5년 만에 임원 승진…그룹 내 영업 총괄 맡아

2015년 주목받는 재계 3·4세들 ③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
컨설턴트·기자 경력…현대重 지분 0%
정기선
출생 : 1982년
학력 : 2005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2011년 스탠퍼드대 MBA.
약력 : 2009년 1월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 2011년 보스턴컨설팅그룹 한국 지사 컨설턴트. 2013년 6월 현대중공업 경영기획실·선박영업부 부장.
2014년 10월 현대중공업 상무.
병역 : 학생군사교육단 43기
주식 보유 현황 : 없음




잘나가던 한국의 간판 기업 현대중공업이 풍파에 시달리고 있다. 2014년 1~3분기 무려 3조 원이 넘는 적자를 낸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회장과 사장을 바꾼 데 이어 임원 262명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했다. 지난 1월 14일엔 희망퇴직 실시를 알렸다. 목표 인원은 1500명. 엄청난 구조조정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이는 그간 지속돼 온 방만 경영에 결국 칼을 빼든 격이다. 현대중공업 내부를 비롯해 재계 일각에서는 13년간 이어 온 전문 경영인 체제를 탓하며 곪을 대로 곪았던 상처가 이제야 터졌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황태자 정기선(33) 씨가 임원이 됐다.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한 정 상무는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이다. 이번 승진으로 정 전 위원에 이어 ‘3세 경영’에 시동이 걸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의 임원 승진은 여러모로 의미가 남다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현대중공업은 오랜 시간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돼 왔다. 2002년 당시 오너였던 정 전 의원이 정계에 입문하면서 최대 주주 자리만 남겨둔 채 완전히 경영(당시 고문)에서 물러났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작년 정 상무가 임원이 되며 오랜만에 임원단에 오너 일가가 합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정 전 의원이 위기 탈출 카드로 다시 오너십 경영을 꺼내든 것 아니냐, 3세 경영에 시동을 걸며 후계 승계 작업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몽준 전 의원 측근들 전면 배치
이러한 관측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 또 있다. 지난해 정 전 의원의 최측근들이 현대중공업의 최고경영진으로 복귀한 것이다.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과 정 전 의원의 ‘복심’으로 꼽히는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는 곧 본격적인 정 전 의원의 친정 체제 구축과 함께 (그의 경영 복귀 대신) 아들 정 상무와 최측근들을 경영 전면에 내세워 향후 ‘3세 경영 시대’를 맞이할 채비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오너 경영 체제로의 전환, 후계 승계 작업을 위한 준비 단계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를 두고 현대중공업의 한 간부급 인사는 “‘정기선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밑 작업’이나 다름없다”면서 “최고경영진이 향후 몇 년간 정 상무를 보좌하며 ‘정기선 시대’를 열기 위해 틀을 잡아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 상무의 대외적 활동에서도 이런 포석이 잘 나타난다. 글로벌 선주사 대표들을 두루 만나며 네트워크를 넓힌데 이어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국제 선박·조선·해양 기술 기자재 박람회(SMM)에 현대중공업 차기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임원이 된 정 상무의 역할이 중요한데, 만약 그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면 후계자 자리를 이어 받는 데 자연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의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 상무의 나이·직급·경력이 아직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엔 부족한 게 사실이다.

1982년생인 정 상무는 2005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연세대 시절 학생군사교육단(ROTC)에서 훈련을 받고 임관해 2007년 육군 중위로 제대했다. 아버지인 정 전 의원 역시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ROTC로 복무했다. 2007년 10월부터 1년간 중앙 일간지 인턴 기자를 지낸 독특한 이력도 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9년 1월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011년 스탠퍼드대 MBA를 취득한 정 상무는 3개월 후 보스턴컨설팅그룹의 한국 지사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그리고 1년 9개월 후인 2013년 6월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복귀하며 다시 경영 수업에 들어갔다. 이 당시 재계에서는 정 상무에 대한 뒷이야기가 많았다. 6개월간의 대리 생활을 끝으로 회사를 떠난 그가 4년 만에 회사에 컴백하며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승진한 배경 때문이다. 이때부터 정 상무가 3세 경영 체제를 이끌 시점이 언제가 될지가 업계의 관심사였다.

그는 부장 재임 시절 울산 본사에 주재하면서 경영기획팀과 선박영업부 부장을 겸임하며 재무·기획·영업 등 사업 전반에 걸쳐 경영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2014년 10월 부장이 된 지 1년 만에 상무로 승진했다. 이에 따라 그는 2009년 기준으로 입사한 지 5년 만에 임원이 된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현대중공업에서 일한 기간을 따져보면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임원은 근속 연수 15년 차 이상이 대부분이다.

울산 현장에서 정 상무를 지근거리에서 경험한 내부의 한 관계자는 “본인 역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알고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기술 분야에는 아무래도 취약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많이 노력하는 게 보인다. 정 상무의 표정을 보면 늘 열의가 넘친다. 정 상무에게 보고할 때 많이 놀랐는데, 전문 엔지니어링 용어나 기술, 흐름에 대해 많이 익혔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 상무에게 품의서를 올리면 그는 ‘경제성’에 대한 평가를 많이 한다. 엔지니어들이 경영·경제 부문에 약하지 않나. 그런데 그가 엔지니어들의 부족한 역할을 채워 주고 있어 크로스체크가 잘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정 상무가 기술과 경영에 두루 지식을 키워 나간 데는 숨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기술 부문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중추 조직인 중앙기술원의 수장인 ‘이충동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경영 부문은 전략·기획 및 재무 전문가인 ‘이재성 전 현대중공업 회장’이 맡았다. 내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직원들끼리 그는 ‘운 좋다’는 말을 자주 했다. 사수가 좋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충동 부사장이나 이재성 전 회장이 정 상무를 많이 돕고 가르쳤다”고 했다. 지난해 자리를 떠난 이 전 회장은 정 전 의원과 서울 중앙중·중앙고·서울대 경제학과 동기 동창으로 50년 지기의 막역한 사이다.


‘소탈하고 인사성 바른 편’ 직원들 평가
사수의 역할이 컸던 것일까.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실제 정 상무는 영업과 R&D 분야에 관심이 크다고 한다. 상무 승진과 함께 예정된 일 역시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3사의 조선 영업 총괄 조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이다.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내 신축 빌딩으로 조선 영업 조직을 통합, 이전하게 되면 해당 조직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해양·화공·발전 플랜트 설계 역량을 상암동 DMC로 결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상무를 자주 접하는 내부 한 관계자는 “그는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서울에서 영업 조직과 R&D를 맡고 싶어 한다. 이쪽 파트는 전문 기술직에 비해 조직이 젊다. 플랜트 사업에도 꽤 관심이 많은데 지금 벌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플랜트 사업건 등 올해 또는 내년부터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여 그의 존재감 역시 그맘때부터 부각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정 상무의 리더십 평가도 피해 갈 수 없다. 울산 본사 현대중공업 직원들에 따르면 “정 상무에 대해 딱히 말(소문)이 안 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 워낙 처신을 잘하는 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직원은 “육군 중위 출신이라 그런지 남자들 사이에서 리더십이 나타난다. 시장통 허름한 밥집이나 술집에서 같이 어울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키가 크고 덩치도 좋은 사람이 직원들에게 살갑게 다가오니 직원들도 큰 부담 없이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소탈하다’고 알려진 그의 성격이 잘 나타난다. 또 다른 직원은 “인사성도 바르다. 재벌이 맞나 싶을 만큼 소탈하다”고 했다.

물론 정 상무를 향한 따가운 시선도 있다. 울산 본사에 근무하는 한 임원은 “경력도 부족하고 젊은 나이에 상무가 된 것은 대주주의 아들이니까 가능한 것 아니냐. 어떤 능력으로 상무가 됐는지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최대 주주인 정 전 의원과 달리 정 상무는 울산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많을 것이다. 본인이 취하는 행보가 아버지(정 전 의원)의 그림자라고 생각하고 회사를 위해 책임감 있는 행동을 했으면 한다”고 따끔한 충고를 남겼다.

정 상무가 후계자 자리에 오르되 그 시기는 향후 10년 후쯤을 기대하는 의견도 있다. 10년쯤 후엔 현대중공업의 전문 경영인 시대가 막을 내리고 정 상무를 주축으로 움직이는 ‘오너 경영 시대’가 올 것이란 관측이다. 정 상무의 사촌 형인 정의선 현대·기아차그룹 부회장과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이 그랬듯이 말이다.

현재 정 상무는 현대중공업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오너 일가 중에서는 최대 주주인 정 전 의원만이 771만7769주(10.15%)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속 과정에서의 세금과 지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역시 업계의 관심거리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