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주 왜 밀려났나’ 재계 해석 분분…신격호 건재 과시한 ‘경고 조치’

롯데가(家)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물음표가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5일 일본 산케이신문이 신동주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일본 내 롯데그룹 자회사 임원 해임 사실을 보도했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26일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롯데 이사, 롯데상사 대표이사, 롯데아이스 이사에서 해임됐다. 곧이어 9일에는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직에서도 해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해임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전혀 없다.

재계에서는 그 배경을 둘러싸고 갖가지 추측만 난무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결정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1년여간 신 전 부회장이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롯데제과의 지분 매입 경쟁을 벌인 직후여서 그 관심이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다. 이번 결정이 신 전 부회장 스스로 사퇴 의사를 밝히는 ‘사임’과 달리 강제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퇴임’이라는 점 때문이다.
신동주 해임, ‘신동빈 천하’ 신호탄 될까
‘한국=신동빈, 일본=신동주’ 공식 깨졌다
‘일본=신동주, 한국=신동빈.’ 롯데그룹의 후계 구도는 지금까지 이와 같은 공식이 정설로 굳어져 왔다.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은 둘 다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행보를 걷게 된다. 신 전 부회장은 10년간 일본 미쓰비시상사에서, 신 회장은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경력을 쌓았다. 두 사람은 모두 각각 33세가 되던 1987년과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했다. 이후 신 전 부회장이 일본에서 경력을 쌓아 온 반면 신 회장은 1990년 한국석유화학에 입사하며 한국에 건너와 1997년 한국롯데의 부회장을 맡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특히 두 사람의 결혼 문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며 “신 회장은 일본에서도 황실의 먼 친척 집안과 혼맥을 맺은 반면, 신 전 부회장은 재미 교포 출신의 부인을 맞았는데 굳이 한국에 들어와 결혼식을 올렸다”고 전했다. 1990년대 후반 지금과 같은 후계 구도가 굳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신 회장이 일본을 맡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다.

신 회장은 1985년 6월 일본 굴지의 다이세이건설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둘째 딸 마나미 씨와 결혼했다. 현재 신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씨도 일본 국적으로 확인 된 바 있다. 신 전 부회장은 1992년 롯데USA 부사장 시절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던 조은주 씨와 결혼했다. 그는 “원래 신 총괄 회장은 일본 내에서 오래전부터 일본의 유력 정치인들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해 왔는데 차남인 신 회장의 혼맥도 이를 통해 맺어진 것으로 안다”며 “혼맥 자체가 차남 쪽이 일본 내에서 입지를 쌓기에 유리한 측면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후 후계 구도가 명확해질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신 전 부회장의 해임 이후 신 회장이 일본롯데까지 경영 활동의 보폭을 넓힐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여기에 두 형제의 서로 다른 경영 스타일도 이 같은 전망에 가능성을 더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은 온순하면서 방어적인 학자 스타일”이라며 “상대적으로 신 회장은 냉철하면서 적극적인 기질이 강해 신 총괄 회장으로부터 경영자로서 능력을 더 인정받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2011년 이후 각각 한국과 일본을 책임지고 있는 두 형제의 경영 성과만 보더라도 이 같은 차이가 드러난다.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내에서 내실을 키우며 보수적 경영 스타일을 고수해 온 반면 신 회장은 2011년 하이마트 인수 성공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그룹의 외형을 확장해 왔다. 그 결과 현재 매출 규모만 보더라도 한국롯데가 일본보다 10배 이상 크다. 일본 롯데그룹 홈페이지에서 업적 부문을 확인해 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일본롯데의 매출은 4077억9300엔(약 4조 원), 한국그룹은 55조4186억 원으로 나타나 있다. 이 관계자는 “일본롯데는 계열사 대부분이 제과나 유통업에 치우쳐 있는데다 최근 10여 년간 장기 불황을 겪으며 성장이 정체돼 있는 상태”라며 “반면 한국롯데는 석유·화학·건설 등 다양한 업종이 포진해 있어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를 섣불리 ‘후계 구도의 변화’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박종렬 HMC투자증권 연구원 “해임의 배경이나 모든 것이 가려져 있는 상황에서 어떤 가능성도 속단하기는 이르다”며 “무엇보다 현재로서는 지배 구조 등에서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장남인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내 핵심 계열사에서 해임되며 후계 구도에서 밀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여전히 신 전 부회장이 롯데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언제라도 치열한 지분 경쟁에 돌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룹 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롯데쇼핑만 보더라도 신 회장 13.5%, 신 전부회장 13.5%로 지분율이 동일하다.


재계 “한국 경영권 노린 신동주에 경고”
롯데그룹 지배 구조는 74개 계열사가 순환출자 고리만 417개에 달할 정도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그러나 핵심은 ‘호텔롯데→롯데쇼핑→기타 계열사’다. 그룹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롯데쇼핑은 롯데호텔이 지배하고 있다. 금감원 전자 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호텔롯데는 롯데쇼핑 주식의 8.8%를 보유하고 있다. 말하자면 롯데호텔이 한국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셈이다. 그런데 이 호텔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곳이 일본의 롯데홀딩스다. 롯데홀딩스는 호텔롯데의 최대 주주로 19.2%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지분 27.65%를 보유한 광윤사다. 롯데홀딩스와 광윤사는 비상장 회사이기 때문에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신 총괄 회장이 광윤사의 최대 주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신 총괄 회장이 올해 93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롯데그룹에서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신 총괄 회장이 여전히 정정하고 롯데그룹의 경영에도 적극 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 회장도 경영상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면 파워포인트를 가장 크게 확대해 신 총괄 회장에게 보고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신 총괄 회장은 여전히 잘못된 점을 정확하게 짚어낼 만큼 예리해 보고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안다”며 “이번 신 전 부회장의 해임 역시 신 총괄 회장이 최종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해임 결정이 향후 롯데가의 ‘후계 구도 변화’를 나타내는 신호탄일지 아닐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신 총괄 회장이 신 전 부회장에게 주는 ‘경고’라는 것은 꽤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 8월부터 약 1년에 걸쳐 롯데제과의 지분을 사들이며 신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일으킨 바 있다. 롯데제과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지분 7.86%를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승계 과정 의미가 큰 계열사다.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롯데제과 지분 차이는 2010년 1.4% 포인트에서 2013년 1.65% 포인트까지 벌어졌다가 현재는 신 전 부회장 3.96%, 신 회장 5.34%로 1.38% 포인트로 다시 차이가 좁혀졌다. 여기에 최근에는 신 전 부회장이 롯데알미늄을 통해 한국 계열사의 지배권을 확보하려고 했다는 정황이 밝혀지며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2014년 3월 말부터 신 회장이 롯데알미늄 이사회에서 배제됐고 그 직후 롯데알미늄의 임원 명단에 신 전 부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올라 있었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롯데 측은 “단순 기재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깐깐하고 보수적인 신 총괄 회장이 이 같은 장남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겼을 수 있다”며 “신 총괄 회장이 여전히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두 아들은 물론 롯데그룹 차원에서도 확인해 주는 조치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