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부족하고 개인 소유로 인식…부작용 줄일 경영 시스템 필요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 변경죄, 항공기 안전 운항 저해 폭행죄와 형법상 강요,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이번 사태로 조 전 부사장에 대한 법적 처벌은 물론 대한항공이 입게 될 유·무형의 피해와 함께 불매운동 조짐 등 대내외 기업 이미지 추락에 따른 장기적인 손실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대한항공 사태를 기점으로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구속,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조세포탈·횡령·배임 등의 구속 기소, 류원기 영남제분 대표이사 부인의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 등과 같은 최대 주주에서 비롯된 위험인 ‘오너 리스크’가 다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기업 그룹 오너가의 도덕적 해이가 기업 리스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한국의 독특한 ‘재벌 체제’ 때문이다. 오너의 도덕적 해이로 문제가 발생한 SK·CJ·한진·한화·태광 등의 기업은 대기업집단의 총수가 있는 집단이다.
한국 경제 위협하는 3·4세 ‘오너 리스크’
싸늘해진 국민 시선…기업 이미지에 치명타
이번 대한항공 사태는 대기업 그룹 총수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오너 리스크가 기업 이미지와 미래에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는 대기업의 부실 경영과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로 인해 이미 한국은 1997년 쓴 고배를 마시며 지금까지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재벌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동안 이들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크고 작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번번이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일명 ‘대기업 봐주기’ 관행이 계속 이어져 온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이들이 저지른 기업 범죄의 피해자인 국민과 소액 주주들의 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눈덩이처럼 커져 왔고 대기업 오너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현재 상당수의 대기업들은 3·4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거나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대기업의 1·2세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뤄 낸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국민들도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 이뤄진 ‘대기업 봐주기’ 관행이 사회적으로 용납됐다. 반면 전 세대들이 이뤄 놓은 성장을 발판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3·4세들의 경영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은 이전과 달라졌다.

이들이 소유하거나 소유하게 될 경제적 부에는 국민들의 노력이 함께 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대한항공 사태처럼 그들이 물려받게 될 기업을 개인 소유로 착각한데서 온 행동에 더욱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3·4세대 후계자들은 태어나면서 물질적인 풍요의 혜택을 누려 왔다.


초고속 승진…능력 검증 기회 없어
현재 한국 대기업의 지배 구조는 특정 대주주 및 그 친족의 소유 집중에 기초한 직접적이고 전일적인 지배 체제이자 소유·지배·경영의 일치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전문성이 부족한 총수의 폐쇄적·독단적 의사 결정이나 기업의 수익성과 효율성 저하를 가져오는 무분별한 사업 확장이 가능했던 것도 이사회·감사 등 내부의 통제장치나 자본시장·금융시장의 작동에 기초한 외부적 감시가 모두 부재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다른 총수가 있는 집단에 비해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비율이 현격이 높은데 비해 경영진 및 지배 주주의 독단적인 의사 결정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의 사외이사 비중이나 참석률이 다른 그룹에 비해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한국 기업의 이사회는 경영자가 이사로 선임되는 내부 이사가 절대 다수로, 경영 정책을 결정하는 기능과 함께 집행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사활이 걸린 핵심 전략 결정권이 전문적인 판단이나 기업의 이해관계인들에 대한 고려 혹은 그들의 참여가 배제된 채 오너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독단에 의해 행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전문 경영인 체제 하에서는 경영자가 단기간의 경영 실적을 토대로 성과를 평가받기 때문에 단기간의 이익 감소와 리스크를 수반하는 연구·개발(R&D)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을 기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문 경영인은 오너보다 자신의 보상과 고용 안정을 위해 단기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 그룹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오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한국 경제 위협하는 3·4세 ‘오너 리스크’
이전의 대기업의 창업주나 2세는 그들의 개인적 성향이나 능력이 검증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3·4세들은 어린 나이에 입사 후 고속 승진을 통해 일반 직장인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자리에 손쉽게 올랐다. 이들이 경영능력을 검증받거나 리더십을 갖췄다고 대외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절차에 따라 기업의 고위직에 재직하게 된 것이다. 대외적으로 검증이 안 된 오너 일가의 경영 참여와 가업 승계는 기업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내부의 위기 대응 관리능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SK그룹의 오너 리스크 관리 활동이다. 한국 기업의 특성인 오너 중심의 경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2014년 2월 27일 대법원이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의 실형을 확정한 뒤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이 SK그룹 내 등기 임원직에서 사퇴했다. SK그룹은 총수의 장기 부재에 따른 리스크를 불식하기 위해 오너 경영 체계를 대체할 경영 시스템을 정비했다. 오너 지도하에 계열회사를 운영하던 기존의 선단식 경영 대신 계열사별 독립 경영을 하면서 사안에 따라 협력하는 ‘따로 또 같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특히 계열사의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 결정을 위해 지주회사인 (주)SK가 맡고 있던 계열사 사업 관리 및 조정 업무를 SK그룹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로 이관하고 지주회사는 지배 구조 개선, 재무관리 강화, 자체 신규 사업 개발 및 실행 통한 가치 창출에 집중하도록 했다.
한국 경제 위협하는 3·4세 ‘오너 리스크’
또한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구속 이후 한동안 비상 경영 체제를 운영하다가 SK그룹과 같은 그룹 전략기획협의체를 신설해 총수 부재에 따른 경영 공백을 채우고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있다.


오너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경영 한계
LS그룹은 2014년 구자열 LS 회장, 구자엽 LS전선 및 가온전선 회장, 구자명 예스코 회장 등 오너 일가가 그룹과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는 대신 기업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이사회 의장으로 전문경영인들을 선임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기업 경영 방식을 도입했다.
한국 경제 위협하는 3·4세 ‘오너 리스크’
한국 대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오너 경영에 있다. 미래 성장을 위한 장기적 과감한 의사 결정과 그 의사 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계열사의 자금 동원력은 오너 경영 체제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오너 경영 체제에서는 오너의 문제가 곧 기업 전체의 문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위기 대응 리스크 관리를 발 빠르게 할 수 있는 전문 경영인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내부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오너 경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트에 노출돼 있는 경영 환경에서 혼자만의 완벽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너는 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한 조직 장악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오너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와 함께 3·4세 승계 과정에서 우려되는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3·4세들은 기업을 마치 개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져 그들의 전횡으로 오너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들은 3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에 임원 자리에 오르고 초고속 승진만 거듭해 승계 받을 기업 밖이나 기업 내에서 다양한 경험을 습득하는 단계를 거치지 못한 채 승계 받을 기업에서 리더로서의 경험만 하게 돼 제대로 경영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따라서 3·4세들이 기업 조직의 여러 사업과 기능을 현장에서부터 시작해 체계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기업 내부의 우수한 미래 인재들과 교류해 신뢰를 쌓으며 커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역량 있는 미래 오너로 육성돼야 현재 국내 대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오너 리스크를 감소시킬 수 있다.


김명서 EFC 지속경영가능금융센터 책임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