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안와르 콩고
지금까지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충격적이다. 한 줄 카피가 먼저 와 박힌다. “당신이 저지른 학살을, 다시 재연해 보지 않겠습니까?” 우리네 근현대사를 곱씹게 만드는 ‘액트 오브 킬링’은 사상 최초로 가해자의 입장에서 학살을 재구성한다. 1965년 쿠데타를 일으킨 현 인도네시아 군 정부는 반공 명목으로 100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지식인·농부·중국인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단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대학살의 주범들은 국민 영웅으로 추대되며 호화롭게 산다. 원래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려고 했던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군의 위협과 방해가 심해지자 차라리 카메라의 방향을 돌려버렸다. 감상적인 영웅주의에 취한 학살의 주범들이 몸소 당시를 재연하게 함으로써 감독은 그들이 스스로의 살육전을 객관적으로 보게 했다. 상징적으로 배치된 판타지 장면들을 거치면서 어느새 영화는 거대한 역할놀이가 되어 간다. 카메라가 주목하는 것은 주도자 안와르 콩고다. 연기를 하며 그 당시 자신이 살해한 희생자의 자리에 앉게 된 그의 이마는 언제부턴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불현듯 그가 공포에 질린 채 말한다. “내가 … 잘못한 건가요?” 2004년부터 자그마치 8년간 촬영한 영상은 1000시간 분량. 그걸 159분으로 졸여낸 영화에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순간이 많다.
세월호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들’도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깨닫고 안와르처럼 참지 못할 욕지기를 느낄 날이 있을까. 그날을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꼭 봐야 할 타산지석이다.
퓨리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
출연 브래드 피트, 로건 레먼, 샤이아 라보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부대의 둔중한 전투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 한복판에서 탱크를 지휘하는 브래드 피트에게선 어느덧 서늘한 연륜이 묻어난다. 죽음도 나누는 끈끈한 전우애와 새파란 신병(로건 레먼 분)의 뜨거운 드라마, 실제 미독 탱크들을 되살려 낸 고증까지…. 감독은 ‘분노의 질주’ 각본가 출신으로 스토리가 빈약한 순간조차 숨 막히는 액션으로 너끈히 채운다.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감독 김덕수
출연 김상경, 문정희, 채정안, 조재윤, 방민아, 남보라
초등학생 아영(최다인 분)이 학교 나눔의 날에 아빠(김상경 분)를 내놓는다. 명문대 학력이 아깝도록 10년째 백수인 아빠다.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려고 아예 중고나라에도 내놓았더니 삽시간에 아빠 주문 전화가 폭주한다. 분만실에 가야 하는 미혼모 등 딸의 등쌀에 아내(문정희 분) 몰래 울며 겨자 먹기로 뛰어든 아빠의 렌털 사업은 어느 틈에 ‘빈자리’를 어루만지는 위로가 된다.
모던발레 채플린
감독 소니아 파라모
출연 타일러 갈스터, 아멜리아 월러
헐렁한 바지에 중절모, 지팡이를 짚은 콧수염의 신사. 찰리 채플린의 영화 속 캐릭터 ‘리틀 트램프’가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모던발레 채플린’은 20세기 무성영화의 아이콘이 간직했던 꿈과 분신 리틀 트램프의 이야기를 모던 발레로 해석한다. 독일 라이프치히 공연 실황으로, 271년 전통 오케스트라가 채플린의 자작곡 ‘스마일’과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을 전한다.
나원정 맥스무비 기자 wjna@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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