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의 죽음 복수하려다 참패한 유비…복수보다 용서가 내게 이로워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복수와 용서는 동전의 앞뒷면
악당들이 나타나 아버지를 비롯해 일가족을 몰살시킨다. 가문은 풍비박산이 난다. 어린 아들은 이를 악물고 복수를 꿈꾸며 입산한다. 좋은 스승을 만나 10년 동안 피눈물 나는 수련 끝에 엄청난 무공을 갖는다. 성인이 돼 하산한 주인공은 원수를 갚는다. 복수는 홍콩 무협 영화의 단골 메뉴다. 할리우드 영화도 비슷하다. 사랑하는 이를 구하거나 복수하기 위해 주인공이 악당들과 고독한 투쟁을 벌이는 스토리는 얼마나 익숙한가.

그리스 신화의 메디아는 복수의 화신이다.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와 결혼한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 눈이 먼다. 메디아의 보복은 도를 넘는다. 남편 이아손과 그의 새 아내 글라우케는 물론이고 그녀의 아버지까지 죽이려 든다. 심지어 이아손과의 사이에 난 친아들 둘까지 죽이고야 만다.

중국에서 복수의 대명사로 불리는 오자서(伍子胥)는 부친을 죽인 자기 나라의 왕(초평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절치부심한다. 오나라 왕 합려를 도와 드디어 초나라를 무너뜨린 오자서는 합려에게 건의한다. “왕이시여! 제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기회를 허락해 주소서!” 일등 공신이 되어 금의환향한 오자서는 이미 죽은 초나라 평왕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어 수백 번 채찍질을 한다.


복수심은 자연스러운 감정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에 따르면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는 것은 보편적이며 여기서 쌓인 감정이 원수를 갚는다든지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이렇듯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는 보복 행동은 사람만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낙타의 참혹한 복수 이야기가 있다. 어떤 낙타가 길을 잘못 들었다가 열네 살짜리 소년에게 심하게 맞았다고 한다. 낙타는 묵묵히 처벌을 참아 냈다. 며칠 후 짐도 없이 소년만 태우고 길을 나선 낙타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 이르자 소년의 머리를 물고 하늘 높이 올렸다가 사정없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소년의 두개골은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과 한국의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은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원한을 품고 억울하게 죽은 이의 영혼이 산 사람 앞에 나타나 자신을 위해 복수를 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덴마크 왕자 햄릿의 아버지는 자신의 동생 클라우디우스에게 암살당했다. 장화와 홍련 자매는 계모의 학대와 계모 소생 남동생들의 계략에 빠져 차례로 연못에 몸을 던진다.

‘삼국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관우의 죽음이다. 요충지 형주성이 오나라로 넘어가고 맥성(麥城)으로 물러난 관우의 군대는 오나라 군대와 조조의 군대에 동시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군량미는 떨어지고 구원병도 오지 않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관우의 군대는 탈영병만 늘어 갔다. 오나라 여몽은 맥성의 북쪽에 복병을 숨겨두고 북문을 뺀 지역을 집중 공격하는 계략을 썼다.

결국 관우는 아들 관평과 함께 여몽에게 사로잡혀 손권 앞으로 압송됐다. 관우가 끝내 귀순하지 않자 손권은 관우를 참수했다. 손권은 형주성을 손에 넣고 관우까지 없앤 여몽의 공로를 높이 사서 잔치를 벌였다. “여몽! 그대의 공이 크다. 내가 내리는 술잔을 받으라.” 술을 받아 마시려던 여몽이 갑자기 손권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푸른 눈에 붉은 수염을 한 쥐새끼야! 네 몸이 나를 알아보겠느냐?” 관우의 혼령이 여몽에 씌운 것이다. 여몽은 눈·코·입 할 것 없이 얼굴 전체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관우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놀란 손권은 관우의 수급을 낙양에 있는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가 상자를 열고 관우의 머리를 보고 한마디했다. “관운장! 오랜만이오. 그간 별고 없었소?” 그 순간 관우가 갑자기 감긴 눈을 부릅뜨고 수염을 부르르 떨며 조조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게 아닌가. 조조는 기절했다. 그 후로 매일 밤마다 조조의 잠자리에 관우의 혼령이 나타났다.

한편 관우의 생사도 모른 채 성도에 머무르고 있던 유비에게도 관우의 혼령이 나타났다. 유비가 한밤중에 책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누군가 등잔불 아래 서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관우라는 것을 안 유비가 반갑게 맞았다. “관우 아우! 연락도 없이 이 밤중에 어찌 왔는가?” “형님! 부디 저의 원수를 갚아 주십시오!” 관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주성에서 관우가 죽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유비는 그 자리서 혼절했다.


복수는 단기 이득, 용서는 장기 이득
한날한시에 죽기로 도원에서 결의했던 의형제 관우가 죽자 유비는 크게 낙담했다. 그는 곧장 관우의 복수에 돌입했다. 관우의 구원 요청을 받고도 응하지 않은 자신의 양아들 유봉의 목부터 베었다.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동오를 정벌하겠다고 선포했다. 제갈량과 조자룡이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 정벌이 불가함을 간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러나 장비마저 죽고 이릉전투에서 대패한 유비는 백제성으로 달아났다. 관우와 장비를 위한 복수도 실패하고 전투에서도 참패한 유비는 울화병을 얻었다.

‘삼국지’ 초반부 동탁이 죽고 어느 정도 세력이 안정되자 조조는 자신의 아버지 조숭을 모셔오게 했다. 조숭의 일행이 서주 땅을 지날 때 서주 태수 도겸이 이들을 환대하고 부장 장개를 시켜 호송하도록 했다. 그런데 장개가 재물에 눈이 멀어 조숭 일가를 몰살하고 재물을 탈취해 달아났다. 조조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대학살을 자행했다. 도겸의 잘못이 아니라는 간언도 무시했다. 조조군대는 ‘보수설한(報讐雪恨)’이라는 깃발을 세우고 서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한을 푼다” 는 뜻이다.

서기 200년 헌제가 장인 동승에게 조조 암살 조서를 내렸다. 이에 격분한 조조는 헌제의 첩 동귀비와 장인 동승을 죽여 보복했다. 이때 동귀비는 헌제의 아이를 임신한 지 5개월째였으나 직접 동귀비의 목을 졸라 죽였다. 4년 후 다시 헌제의 암살 조서를 받은 복황후의 아버지 복완도 거사가 사전에 발각돼 죽임을 당했다. 복황후도 곤장을 맞고 죽었다. 마초가 조조에 대항하다가 죽은 자신의 아버지 마등의 원수를 갚으려다 실패한 이야기, 원소의 아내 유 씨가 원소 사후에 원소의 첩들을 무자비하게 죽여 복수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심리학자 마이클 매컬러프에 따르면 복수는 인간이 진화하면서 사회적 딜레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택한 해결책이다. 복수는 가해자의 2차 도발을 방지하고 잠재적 가해자의 도발을 방지하며 권선징악의 효과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복수가 그리 쉬운가. 요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함무라비 법전 시대가 아니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복수를 할 수밖에 없다. 뭔가 다른 선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크고 작은 일에 상처받고 복수에 중독된 사람들. 피해를 당한 과거 상황에 발이 꽁꽁 묶인 채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복수와 용서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고 생각하는 매컬러프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이기심(즉 복수)으로 얻는 단기 이득과 협력(즉 용서)으로 얻을 수 있는 장기 이득 사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택할 것인가?”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