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욱 회장 M&A로 종합 식품 그룹 구축…실적도 업계 평균 웃돌아
국내 최초의 조미료 ‘미원’이 58년 만에 새 단장했다. 대상은 1956년 출시한 미원의 맛과 포장 디자인, 제품명까지 바꾸는 전면 리뉴얼 작업을 진행했다.이번 리뉴얼 작업은 “미원이 몸에 좋지 않다는 소비자들의 선입견을 극복하라”는 임창욱(65)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임 명예회장은 “미원의 주성분인 MSG(L-글루탐산나트륨)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이를 단기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더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2년 사이 신제품 다수 출시
리뉴얼의 핵심인 포장 디자인 변경은 임 회장의 장녀 임세령(36) 대상 식품사업총괄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상무)가 총괄했다. 리뉴얼 작업 이전의 내용물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 포장을 쌀 빛깔의 불투명으로 바꿨다. ‘미원이 마약을 연상시킨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포장지에는 미원의 원료인 사탕수수 이미지도 넣어 건강한 자연의 느낌을 강조했다.
제품명은 기존의 ‘감칠맛미원’에서 ‘발효미원’으로 바꿨다. 사탕수수를 발효해 만드는 제조 공법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맛도 바꿨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강화하기 위해 미원의 주성분인 MSG와 핵산(쇠고기와 버섯의 감칠맛을 내는 성분)의 배합 비율을 조정했다.
대상은 ‘MSG 유해 논란’을 겪으면서 미원의 매출이 떨어졌다. 2011년 3520억 원에서 2년 사이 22.3% 급감해 2733억 원(수출 포함)에 그쳤다. 회사 전체 매출 2조8419억 원의 9.6%에 불과하다. 수치는 미미하지만 오너 일가가 미원에 쏟는 애정과 관심은 그 어떤 제품보다 높다. 미원이 대상의 ‘모태 식품’이기 때문이다. 임 회장의 부친인 임대홍 창업주는 1955년 일본으로 넘어가 1년 동안 조미료 제조 공정을 익힌 뒤 이듬해 부산에 동아화성공업을 설립, 미원 생산을 시작했다. 동아화성공업은 1962년 회사명을 ‘미원’으로 바꿨고 1997년 지금의 대상으로 바꿨다. 하지만 오랜 시간 미원(조미료) 또는 청정원(장류)으로만 알려진 대상은 몇 년 전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그 변화는 지난해 급물살을 탔다. 홍초 밸런스워터·홍초스파클링 등의 음료부터 ‘사브작’이라는 스낵 브랜드, 정통컵국밥과 같은 즉석 간편식 등의 다양한 제품을 쏟아냈다.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젊고 친숙한 신제품을 만들어 과거 미원과 장류로 대표되는 조미료와 전통 식품 기업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대상의 변화는 임세령 상무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2012년 말 회사 경영에 본격 투입된 임 상무는 현재 식품사업총괄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청담동에 고급 레스토랑(메종 드 카테고리)도 운영하고 있다. 식품 부문 브랜드 관리를 비롯해 기획·마케팅·디자인 등을 총괄한다. 월 1회 열리는 제품운영위원회를 통해 신제품에 대한 계획과 사후 관리·평가 등까지 관리하며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 대상 제품들의 포장에 많은 변화가 있는 것 역시 임 상무의 주문이 반영된 결과다. 대상 관계자는 “평소 디자인과 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임 상무가 적극적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하면서 기업의 변화까지 이끌어 내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변화와 혁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행보는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상은 올 상반기까지 매출액이 1조254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4% 증가해 업계 평균인 4.4%를 웃도는 성적표를 받았다. 영업이익률도 6%대로 업계 평균인 5%보다 높았다.
언니인 임 상무가 식품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디자인 등에 집중한다면 동생인 임상민(34) 대상 전략기획관리본부 부본부장(상무)은 대상의 신사업과 해외 진출 전략의 큰 그림을 그린다.
대상 변화의 중심에 선 임세령 상무
10년간 출가외인으로 지낸 덕에 뒤늦게 경영 대열에 합류한 언니와 달리 임상민 상무는 오랜 시간 대상에서 경영 수업을 받아 왔다. 2003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한 임상민 상무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존슨앤드존슨 마케팅 인턴십을 거쳐 2007년 처음 대상에 발을 들였다.
대상 계열사인 유티씨인베스트먼트 투자심사부 차장으로 입사했다. 유티씨인베스트먼트는 임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벤처캐피털 회사다. 이곳에서 2년여간 업무를 해오다 2009년 8월 대상 PI본부 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상의 PI본부는 업무 개선을 주도하는 핵심 부서 중 하나다. 임상민 상무는 이곳에서 그룹의 ‘경영 혁신’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2010년 8월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2012년 10월 대상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부장)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1년 만인 지난해 12월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대상 관계자는 임 회장의 두 딸이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임 회장의 ‘기반 다지기’ 작업이 있었다. 임 회장은 2009년부터 식품 사업 다각화를 위해 관련 기업들을 인수하고 설립하는 등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2009년 과일차·과일잼 제조 판매 업체인 ‘복음자리’를 인수하고 천일염 제조 법인 ‘신안천일염’, 외식 업체 와이즈앤피(현 대상HS)를 잇따라 설립했다. 2010년 유기농 식품 판매 전문 업체 ‘초록마을’을 인수하는가 하면 식자재 유통 업체인 ‘대상베스트코’를 설립했다. 이어 2012년 소스 전문 업체인 ‘정풍’, 2013년 냉동식품 업체인 ‘진영식품’을 인수했다.
임 회장은 유티씨앤컴퍼니라는 투자회사를 통해 인수·합병(M&A) 전략을 살폈다. 초록마을도 사실 유티씨앤컴퍼니가 처음 인수했다가 이를 대상홀딩스에 되판 기업이다. 임 회장의 이런 과정을 통해 대상그룹은 ‘미원 회사’에서 ‘종합 식품 회사’로 변모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두 자녀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다. 실제로 임세령·상민 자매가 경영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때도 이 3년 동안이었다. 이들의 합류 이후 변화도 두드러진다. 임세령 상무가 대주주로 있는 초록마을은 2010년 말 980억 원대 매출액과 3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지만 현재는 13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복음자리·정풍·진영식품의 실적도 나쁘지 않다. 대상베스트코는 3000억 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100억 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 중이다. 대상HS의 성적도 신통치 않다.
재계 관계자는 “임세령 상무는 대상HS 때부터 경영자적 능력과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고 실무에 밝은 임상민 상무는 그룹의 핵심 부서의 업무를 보고 있어 그룹의 전반적인 상황을 꿰뚫고 있다”며 “포스트 임창욱’이 누가 되는냐와 관계없이 이들은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포스트 임창욱’은 차녀 임상민 상무?
임창욱 회장의 차녀 임상민 상무는 대상의 차기 경영자로 지목되는 인물이다.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의 최대 주주가 임 상무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그를 ‘포스트 임창욱’이라고 부른다.
임세령 상무가 삼성가에서 출가외인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동생 임상민 상무는 꾸준히 대상 내에서의 입지를 다져 왔다. 2005년 대상홀딩스 중심의 지주회사 체제로 바뀐 이후 지분도 꾸준히 늘려 왔다. 총 38.36%의 지분을 갖게 된 임상민 상무는 최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이는 언니 임세령 상무가 보유한 20.41%보다 더 많다. 그러던 중 임상민 상무는 지난 10월 2일 주식 60만 주를 팔아 132억 원 정도를 현금화했다. 이에 따라 언니이자 2대 주주인 임세령 상무와의 지분 차이가 17.95%에서 15.39%로 좁혀졌다.
대상이 3세 경영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는 터라 임상민 상무의 주식 매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주식 매도로 대상그룹의 지배 구조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언니이자 2대 주주인 임세령 상무와의 지분 차이는 여전히 15% 이상 난다.
대상홀딩스는 대상그룹의 지주사로 사실상 대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상홀딩스의 지분 구조는 대상그룹의 후계 구도와 직결된다. 임 상무의 주식 매도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대상 관계자는 “개인적인 목적에서 매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1.6% 매도여서 지배 구조에는 변동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임상민 상무가 최대 주주이자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지만 그의 나이가 34세에 불과한 만큼 차기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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