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걸음하는 고객 없게 추억 상품까지 완비, 주차장엔 족탕 설치

[GLOBAL_일본] 칫솔만 300종…다이신백화점의 성공 비밀
일본의 내수 시장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무차별적인 경기 부양책이 시작되며 회복세가 뚜렷하지만 아직 일반적이지는 않다. 되레 엔저 유도 때문에 수입 가격이 뛰면서 서민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었다는 혐의가 짙다. 일부 수출 대기업만 가격 경쟁력이 좋아졌을 뿐 회복 온기가 열도 전체에 퍼지지는 못했다. 소매 유통은 그 최전선에 섰다. 길거리 체감 경제학의 확인 무대인 역세권·상점가가 그렇다.

유통시장의 고객 쟁탈전은 눈물겹다. 안쓰럽고 절박하다. 그래도 냉혹한 게 경쟁인지라 밀리면 끝이다. 생활 경제와 맞물린 역세권 주변 상권은 경쟁 축소판이다. 쟁쟁한 라이벌이 많아 영구 패권은 어불성설이다. 단 절대 강자는 있다. 경쟁 업체의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는 비범함이 공통 변수다. 도쿄 서남부의 오타구 오오모리 역세권의 패권은 ‘다이신백화점’이 장악했다. JR역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백화점인데 해당 상권의 시장점유율 70%를 자랑한다. 8개의 인근 점포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사실상 소매 유통만 봤을 때 ‘다이신공화국’이다.
[GLOBAL_일본] 칫솔만 300종…다이신백화점의 성공 비밀
외견은 실망스럽다. 거리 상점가와 맞물린 6층짜리 아담한 건물이 전부다. 메인 출입구는 찾기조차 힘들다. 여기에 많을 때 하루 2만 명이 몰려든다. 연간으로는 400만 명이다. 행사라도 할라치면 아예 인근 도로 전체가 격심한 교통 정체를 벌인다. 명색이 백화점인데 고급감도 거의 없다. 식품 매장은 동네 슈퍼처럼 번잡하다. 더 괴상(?)한 건 운영 방침이다. 상식 파괴의 전형이다. 소매 업체인데도 ‘물건이 아닌 행위(서비스)를 판다’고 소개한다. 다른 말로는 ‘초(超)지역 밀착 전략’으로 불린다. 어정쩡한 지역 밀착이 아니다. ‘팔리지 않는 시대’에 ‘팔리는 점포’를 만든 히트 비밀이 여기에 있다.

다이신은 이미 명물 회사로 유명하다. 성공 사례를 전체·부분적으로 다룬 책만 수십 권에 이른다. 대개 ‘불황에 강한 회사’, ‘싸지도 않은데 흥한 이유’ 등의 타이틀이 붙는다. TV 방송 등 유명 언론의 단골 취재 대상에도 올랐다. 대략 3~4년 전부터다. 2~3년은 몰라도 7~8년 이상 동일 모델로 입소문이 나기가 쉽지 않은데 다이신은 해당 기간에 걸쳐 반복된 검증 실험에 통과한 까닭이다. 특히 ‘인구병(病)’에 빠진 과소 문제의 해결 카드로 지역 밀착을 강조한 점이 설득력이 높다. 블랙홀의 거대 자본에 맞서 사회적 약자 등 ‘서민의 친구’라는 슬로건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타깃 고객의 특화 관리로 승부
경영전략은 단순하되 강력하다. 유통 업체답게 ‘반경 500m, 100% 주의’다. 반경 500m 안에서는 경쟁자의 시장 장악을 불허한다는 포부다. 실천 무기는 ‘고객 제일주의’다. 고객이 원하면 무엇이든 진열·판매하겠다는 의지다. 고객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눈높이에 맞춘 제품 구성을 고집한다. 성공 인자는 얼추 다음과 같다. ▷고객 특화 ▷감동 서비스 ▷지역 밀착 등이다.

가장 강력한 성공 무기는 타깃 고객의 특화 관리다. 핵심 고객은 노인이다. 일본은 4명 중 1명이 고령자(65세 이상)다. 도심부를 벗어날수록 고령 비율은 높아진다. 매장이 자리한 변두리 상권도 마찬가지다. 이곳도 유독 노인 고객이 많다. 전체의 60~70%로 알려졌다. 80대 고객의 쇼핑 풍경마저 흔하다. 걷기도 힘든 굽은 허리로 카트를 가득 채우며 쇼핑을 즐긴다. 어떻게 들고 갈지 고민하는 기색도 없다. 이게 히트 비밀 중 하나인 부가 서비스의 힘이다. 돈이 있어도 일상용품을 제대로 사지 못하는 ‘구매 난민’의 모습은 없다.

심지어 회사는 고령자를 더 챙기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틈새 공략이 아닌 사활을 건 메인 전략이다. 선택은 성공했다. 별로 싸지도 않은데 흑자 행진 중이다. 기꺼이 찾아와 소비하는 충성 고객 덕이다. “고령 고객은 한 번 감동하면 반드시 고정 고객이 된다”는 판단은 파워풀했다.

부가 서비스의 핵심은 감동이다. 제품 진열부터 감동은 발휘된다. 다이신의 제품 라인업은 상상 초월이다. 무려 18만 종을 판다. 진정한 ‘백화(百貨)’점이다. 웬만해선 빈손으로 되돌아갈 일이 없는 다양성을 구비했다. 인근 매장과는 비교 불가다. 압권은 식품 매장이다. 노인이 선호하는 절임 상품은 300종을 웃돈다. 된장은 출시 제품 전부를 완비했을 정도다. 계절 과일 단일 품목도 20~30종류 이상이다. 칫솔도 300가지가 넘는다. 반려동물용 사료는 그 종류만 1만 가지 이상이다.

일반 매장에선 한참 전에 사라진 이색 상품도 많다. 재래시장 창고에 먼지 덮인 채 잊힐 법한 추억 상품도 수두룩하다. 노인 고객 전용 상품도 많다. 일상생활의 불편·불안을 경감시킬 실버 상품은 기본 품목이다. 최고급 매장에서나 팔림직한 고가 제품도 있다. 인테리어 매장에선 250만 엔짜리 페르시아 융단이 심심치 않게 팔려 나간다. 전문점이 아니면 취급 불가의 품목까지 두루 갖췄다. 다만 무게중심은 고기능의 최신 제품보다 익숙한 과거 제품 위주다. 고객이 이를 원해서다.


70세 이상 노인에 도시락 무료 배달
쇼핑 환경은 고령 친화적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해 통로를 넓혔다. 진열 공간이 넓으면 좁아지기 마련인데 이곳은 예외다. 힘들면 쉬도록 곳곳에 의자도 설치했다. 탈의실에는 앉아 갈아입도록 필수로 갖췄다. 무료 송영 버스도 운영한다. 회원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송영 버스 출발지인 5층 주차장에는 정원과 함께 족탕을 설치한 세심함도 엿보인다. 그렇다고 노인만 대접받는 것은 아니다. 지역 밀착답게 현역 인구의 내점 확대 노력도 많다. 체험 활동과 강좌 개최 등이 일상적이다. 특히 ‘자녀 동반’ 프로그램이 돋보인다. 노인·현역을 아우르는 신구 조합의 점포 구성을 위해서다.

서비스는 돈이다. 그러니 효율은 좀 낮다. 대량 입하를 포기한 대신 10~20%는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부감은 별로다. “다른 데 없는 걸 팔면 그 정도는 낸다”는 주의다. 직원도 덩치 대비 많다. 1인당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12%로 업계 평균보다 높다. 이는 서비스를 위한 현장주의 때문이다. 아웃소싱 없이 코너 직원이 상품 조달부터 판매 단계까지 아우른다. 현장 직원이 고객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봐서다.

지역 밀착 아이디어는 진화된다. 배달 서비스가 그렇다. 원류는 2008년의 ‘행복 배달’이다. 임산부·장애인은 물론 70세 이상 고객이면 집까지 쇼핑 물품을 배달해 준다. 금액 제한은 없다. 전담 직원이 배치돼 배달 과정에서 접점 기회를 더 넓히는 기회도 안겨줬다. 2009년 별도의 ‘배달 도시락’까지 도입했다. 500m조차 걷기 힘든 노인을 위해 도시락 값만 받는 배달 무료 서비스다. 500엔짜리로 메뉴는 매일 바뀐다. 영양 균형을 맞춘 건강 지향적인 메뉴로 노인 입맛에 맞췄다. 여기엔 별도 목적도 있다. 이게 감동적이다. 도시락 배달 과정에서 고객과 대화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목적이다. 건강 상태 등 문제 발생 때는 사전 등록된 가족·친지에게 연락해 준다. 타이틀인 ‘안전·안심의 맛있는 도시 락’다운 특별한 마음 씀씀이다. 이 밖에 ‘통상 배달(3000엔)’, ‘당일 배달(2000엔)’도 가능하다.

다이신은 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여느 유통 업체처럼 점포 확대에 사활을 걸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한때 점포가 7개까지 늘었지만 외형 확대는 부채 증대로 연결됐다. 회사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오너 지분을 매입한 니시야마 히로시 현 사장이 구원투수를 맡은 때부터다.

건축사사무소 출신인 그가 50년 넘게 지역·고객과 호흡해 온 신뢰 관계에 베팅한 것이다. 백화점 재개장 공사를 맡은 게 인연이었다. 그는 지역사회의 신뢰라는 무형자산만으로 생존과 성장 여지를 발굴해 냈다. 노인 특화는 그 고민의 산물이다. 그 덕분에 그는 단 1년 만에 본점을 제외한 분점을 다 없애고 빚마저 털어냈다. 그다음부터는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흑자 행진 중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