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전용 센서 전격 출시, 파나소닉 등 경쟁사도 눈독

[비즈니스 포커스] ‘무배당 쇼크’ 소니, 자동차 부품서 돌파구
지난 10월 22일 미국 헤지 펀드 업계의 ‘큰손’이자 주주 행동주의자로 알려진 대니얼 로엡 서드포인트 최고경영자(CEO)가 일본 소니의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로엡 CEO가 이끄는 미국 유력 펀드 서드포인트는 투자자에게 보낸 분기별 서한을 통해 소니 지분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로엡 CEO는 이 서한에서 “소니에 제안했던 사업 분리가 유감스럽게도 거절됐다”며 “소니는 단지 비용 절감 등 우리의 요구 사항을 일부 시행했을 뿐”이라고 지적하며 매각 이유를 설명했다.

2013년 5월 로엡 CEO는 소니의 지분 7%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직후인 지난해 10월께부터 소니에 구조 개선 압박을 넣으며 실적이 부진한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분사를 주문했다. 그는 히라이 가즈오 소니 사장에게 서한을 보내 엔터테인먼트 사업부의 지분 20%를 주주들에게 우선 매각하는 방식으로 처분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소니에서 영화· 음악 사업을 분리하고 미국에서 재상장할 것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소니는 “전자 사업과 엔터테인먼트 사업 일체를 운영해야 한다”며 로엡 CEO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한 정보 공개를 늘리고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 증대 방안만을 내놓았다. 소니는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과 손잡고 엔터테인먼트 사업부에서 최소 1억 달러(약 1055억 원)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주주 행동주의자 로엡 CEO의 이번 소니 주식 매각은 가뜩이나 실적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소니에 대해 투자자와 시장 관계자들에게 큰 실망을 준 이슈였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소니에 구조조정을 강력히 요구하던 지난해 10월 로엡 CEO는 일본 소프트뱅크 지분을 10억 달러(약 1조615억 원)어치나 사들이며 대조적으로 베팅 대상을 바꿨다.


7년간 적자 행진…“소니 정신으로 돌아가라”
소니는 올 들어 PC 사업 철수와 TV 사업 분사 등 전자 사업의 구조 개혁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지난 9월의 자사 회계연도 1분기(4~6월) 실적 발표에서 스마트폰 사업에서 약 1800억 엔(1조7717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또한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의 매출도 침체되는 등 총체적 부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소니는 지난 9월 분기 실적 발표에서 총 2300억 엔(2조2639억 원)의 적자를 봤다고 최종 발표했다. 소니의 적자 폭은 점점 커지고 있고 실적 회복은 아직 먼 목표로 보인다. 2014년 회계연도(2014년 3월~2015년 3월) 실적 예상치를 연초 500억 엔 적자에서 2300억 엔(약 2조1900억 원) 적자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7년 동안 여섯째 적자다. 아울러 1958년 도쿄 증시에 상장한 이후 처음으로 무배당 결정을 내렸다.

“지금의 소니는 누가 사장을 하든 똑같을 것이다. 히라이 가즈오 사장이 책임을 지고 그만둔다고 해도 소니의 총체적 난국을 바꿀 인재가 없다. 소니가 벤처기업이었던 때가 아니라 대기업이 되고 난 후 입사해 무난하게 일을 해온 인력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니에서 연구·개발을 하던 한 원로가 소니의 부진을 두고 한 신랄한 비판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언론들도 소니가 혁신에 도전하는 정신을 잃고 중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하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본 경제 주간지 프레지던트는 최근 “소니가 (워크맨이란 혁신 제품으로) 세계적으로 히트한 1990년대 이후부터 대부분의 사업에서 실패했지만 플레이스테이션 비디오 게임기의 성공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고 평했다. 그리고 “소니가 글로벌 브랜드로 찬사를 받을 때 소니의 브랜드 이미지는 기술력도 아니고 이미지 전략도 아닌 세계의 문화를 바꾼 혁신적인 것을 창출하려던 의지 덕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소니 워크맨이 전 세계를 호령하던 시대의 ‘소니 정신’으로 돌아가라는 뼈 있는 경고다.

반면 소니와 오랜 경쟁 관계에 있는 파나소닉의 부활 조짐은 소니와 대조적이다. 파나소닉 역시 소니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분기(4~6월) 영업이익 823억 엔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의 642억 엔보다 28.2% 증가시켰다. 시장의 전망치인 668억2000만 엔을 크게 웃도는 액수다. 매출도 1조8500억 엔으로 전년 동기 실적인 1조8200억 엔에서 1.5%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파나소닉이 과거 영광의 상징이던 플라스마 TV 등 백색 가전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자동차와 태양광 패널, 기내 영상 장비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 틈새 비즈니스에 투자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2년 전 쓰가 가즈히로 파나소닉 사장이 침몰 직전 파나소닉호의 선장 자리에 오를 당시 내건 슬로건은 바로 ‘반전 공세’였다. 쓰가 사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본사 조직을 단 150명으로 줄였고 취임 후 2년 만에 20명 이상의 임원을 퇴임시켰다. 그리고 조직 개편으로 자동차 부문, 주택 부문, B2B 솔루션을 주력 사업으로 두고 본사 R&D본부에 속해 있던 기초 연구 인력 1000명을 반으로 줄여 각 사업부에 전진 배치하는 등 과감한 개혁에 나선 덕분이었다. 파나소닉은 또한 주력 사업으로 자동차 부품 사업 등을 주목하고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부품소재·장비에 사활 건 일본 기업들
자동차 부품 등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한 부품 소재와 장비 산업에 일본 주요 기업들은 주력 사업으로 집중하며 사활을 걸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캐시 마쓰이 일본 담당 수석 전략가는 “소비자 가전 시장에서 일본이 명백히 경쟁력을 잃은 상황에 첨단 소재와 고부가가치 부품 분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소니도 차세대 주력 사업으로 자동차 부품 사업에 전격 진출했다. 지난 10월 16일 소니가 공개한 최신 제품은 소비자 가전 기기가 아닌 차량 탑재 카메라용 화상 센서다. 주차 및 안전 주행을 위한 카메라 센서는 무인 자동차 개발에 있어서도 중요한 기술이다.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소니의 센서 제품은 애플 아이폰뿐만 아니라 소니의 스마트폰 엑스페리아 등에 탑재돼 있다. 소니 측은 자동차용 센서 제품 출시와 관련해 “이 제품은 우리의 첫 차량 전용 센서다. 우리는 이 시장이 큰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소니가 TV·PC·스마트폰 등 가전의 비중을 줄이는 한편 핵심 사업으로 삼은 3대 분야는 게임·모바일·센서다. 지난 1분기 실적에서 소니의 센서 부문은 174억 엔(1708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전년 동기 대비 91% 급등한 수치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 간에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도 위협적이다. 히타치·도시바·NEC 등 여러 대기업들도 이 같은 시장의 흐름에 맞춰 주력 사업 분야를 부품 소재와 장비 등으로 되돌리고 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드컴퍼니의 오쿠노 신타로 파트너는 지난 10년간 높은 성장세를 유지한 일본 기업 42곳 가운데 약 3분의 1은 자동차 부품이나 화학·엔지니어링 등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기업들이라며 “여전히 제조업이 중심이지만 과거와 전혀 다른 제조업으로 무게중심이 옮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프레지던트는 파나소닉의 한 기술 임원이 궁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니에 대해 던진 훈수를 소개했다.

“소니는 전자에 강하지만 파나소닉만큼이나 기계에는 약하다. 메카트로닉스(기계와 전자를 융합)가 약하면 아무리 기술력이 있어도 단순한 부품 조립 업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결국 전자 및 하이테크 분야에서 자사만의 제품을 만들고 그로부터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부가가치를 평가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소니의 재기는 워크맨처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파급력 있는 제품을 내놓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공통된 주문이다. 소니가 과거 혁신 제품에 도전하던 기업 문화를 다시 살리지 않으면 부활이 어렵다는 것이다. 자동차 부품 사업에 신규로 진출한 소니가 ‘워크맨’의 혁신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