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나 일본식 물가 하락 가능성 낮아…부실해진 경제 주체 등 걸림돌

[이슈 인사이트] 양적 완화 종료, 미국 경제 대안정기 오나
미 중앙은행(Fed)의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미국 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갈까. 경기 회복세는 이어지겠지만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Fed는 저금리 유지 등 신축적 통화정책을 계속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은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대응했다. 우선 정책 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를 5.25%에서 0~0.25%로 인하했고 이도 모자라 세 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를 통해 대규모로 돈을 찍어냈다.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함께 과감한 통화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미국 경제는 2009년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2008년 하반기에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2009년 1분기까지 3.9% 감소했다. 그러나 그 이후 GDP가 증가세로 돌아서 올해 2분기에는 경제 위기 직전인 2008년 2분기보다 7.0% 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 GDP의 68%를 차지하는 소비가 8.3% 증가하면서 경제성장을 주도했다.


미 통화정책의 세 가지 시나리오
경기 회복으로 고용도 늘고 있다.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2년(2008년 2월~2010년 2월) 동안 비농업 부문에서 일자리가 871만 개 사라졌다. 그러나 2010년 3월부터 고용이 증가세로 돌아섰고 2014년 9월까지 일자리가 978만 개 늘었다. 서비스업에서 고용이 크게 증가했다. 금융 위기 동안 서비스업에서 고용이 440만 개 감소했지만 2010년 3월에서 올해 9월까지 825만 개가 증가했다. 잃어버린 일자리보다 1.9배 더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제조업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223만 개의 일자리가 줄고 70만 개가 늘어 31%만 되찾았다. 고용 회복에 따라 실업률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2009년 10월에 10%까지 올라갔던 실업률이 올해 9월에는 5.9%로 하락해 2008년 8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기 회복과 함께 고용 증가로 Fed는 비정상적인 통화정책인 양적 완화를 마무리하고 정상적인 통화정책으로 복귀하고 있다. 앞으로 통화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경제성장과 물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최근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에서 나온 보고서는 이에 대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시나리오는 양적 완화를 통해 풀렸던 돈이 돌면서 1965년에서 1979년 사이에 겪었던 극심한 인플레이션 상황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Fed가 신뢰를 잃고 금리 인상과 인하를 반복(stop-go monetary policy)하게 될 것이다.

둘째 시나리오는 매우 낙관적으로, 1983년에서 2007년까지 나타났던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와 유사한 상황이다. 이 시기에는 Fed가 신뢰를 받았고 경제성장률뿐만 아니라 물가와 시장 금리가 매우 안정됐다. 대안정기의 중반 이후에는 정보통신 혁명으로 경제 각 부문에서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미국 경제가 고성장과 저물가를 동시에 달성하기도 했다. 이를 ‘신경제’라고 불렀다.

셋째 시나리오는 미국 경제가 1995년에서 2007년 사이의 일본 경제를 닮아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면서 저성장·저물가가 구조적으로 정착된다. 정책금리가 계속 ‘영’(0)으로 유지되고 상황에 따라 또 다른 양적 완화를 단행해야 할 때다.
[이슈 인사이트] 양적 완화 종료, 미국 경제 대안정기 오나
앞의 세 가지 시나리오 중 첫째, 즉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왜냐하면 향후 몇 년 이내에 미국 경제에 내재해 있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완전히 해소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에서 추정한 잠재 GDP와 실제 GDP를 비교해 보면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경제가 잠재 성장 경로에서 아래쪽으로 크게 이탈했다. 2009년 2분기에는 실제 GDP가 잠재 수준보다 7.4%나 떨어졌다. 그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서 ‘아웃풋 갭(Output gap=실질 GDP와 잠재 GDP의 차이)’이 올해 2분기에 4.4%로 축소됐었지만 아직도 미국 경제에 이만큼 디플레이션이 압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아웃풋 갭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수요가 크게 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정부 부채가 GDP의 104%까지 올라가 정부가 수요를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가계와 기업은 신경제 시기에 지나친 낙관으로 빚을 얻어 소비와 투자를 늘렸지만 이제 부채를 줄여 가는 과정에 있다. 단기간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해소되기 어렵고 그래서 물가는 계속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돈이 도는 속도도 줄고 있다. 미국의 통화승수(M₂÷본원통화) 추이를 보면 2008년 8월에 9.2배였는데 올해 9월에는 2.8배로 떨어졌다. Fed가 대규모로 돈을 찍어냈는데도 경제가 능력 이하로 성장(마이너스 아웃풋 갭 존재)하고 통화승수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물가가 안정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유럽 등 해외 수요 약화도 발목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 경제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정책 금리를 크게 올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또 다른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한데, 그중 일본식 디플레이션이 전개될 확률도 그리 높지 않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경기순환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2009년 6월을 저점으로 올해 10월까지 64개월 확장 국면을 이어 가고 있다. 경기 확장이 1854년 이후 33번의 경기순환에서 평균 39개월, 1945년 이후 11번 경기순환에서 58개월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이번 경기 확장 국면은 상당히 길게 진행되고 있다.

2009년 6월을 저점으로 시작된 이번 경기 확장 국면이 이처럼 과거 평균보다 길어진 것은 시기적절한 재정 및 통화정책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 근저에는 셰일가스의 역할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셰일가스는 에너지 가격을 하락을 통해 생산 비용을 낮춰 미국 경제의 총공급 곡선을 우측으로 이동시켰다. 이와 함께 셰일가스는 가계의 소비지출 중 10~15% 정도로 추정되는 에너지 비용을 감소시키고 그 대신 다른 소비지출을 늘려 총수요 곡선도 우측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미국 경제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이나 일본식 디플레이션을 겪을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1983년에서 2007년에 나타났던 ‘대안정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분석이 나오겠지만 그 정도로 장기 호황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의 경제 주체가 그 시기보다 훨씬 더 부실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부채가 1983년에는 GDP의 37%(1997년 62%)였지만 올해 2분기에는 102%로 급증했다. 민간 부문의 부채는 1983년에 GDP의 134%에서 2009년에는 293%까지 올라가 경제 위기의 원인이 됐고 이제 줄어드는 과정이 전개되고 있다(2014년 2분기에는 244%로 낮아졌다). 게다가 해외 수요도 녹록지 않다. 유럽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도 고성장의 후유증(과잉투자로 기업 및 은행 부실)을 겪고 있다. 국내외 각 경제 주체가 수요를 창출해 아웃풋 갭을 해소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앞으로 2~3년 동안은 미국 경제에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해소되는 과정이고 그래서 Fed는 신중한 금리 인상 등을 포함해 통화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용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도 거품 영역에 접어든 주가는 더 큰 거품을 만들고 나중에 그 충격은 그만큼 클 수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