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규제·기존 산업과 갈등, 소비자 주도의 새로운 신뢰 시스템이 원동력

[우버 세상을 바꾼 혁신의 힘] 소유에서 접속으로…몸살 앓는 지구촌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세계적인 철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 2001년이니 벌써 15년 전 얘기다. 그는 다가올 시대를 ‘접속의 시대’라는 말로 표현했다. 내 것이 아니더라도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해당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접속’이 가능한 시대라는 얘기다. 근사한 저녁 파티에 초대 받은 당신. 만약 당신이 파티에 어울릴만한 멋들어진 수트를 ‘소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접속해 누군가의 옷장에 잠들어 있는 수트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이른바 공유경제(Sharing Economy)다.


매년 80% 이상 가파른 성장
‘물품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서로 대여해 주고 차용해 쓰는 개념으로 인식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 지식백과사전에서 공유경제라는 단어를 찾으면 나오는 정의다. 어딘지 거창하고 복잡하지만 쉽게 말하면 필요한 물건을 ‘같이 쓰자(셰어링)’는 얘기다.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의 최고경영자(CEO)인 브라이언 체스키는 “미국에는 전동드릴이 8000만 개나 있지만 평균 사용 시간은 각각 13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로 그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사람들이 전동드릴을 소유하는 것은 일종의 자원 낭비라는 얘기다. 공유의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내 집의 빈 ‘공간’을 공유하는 에어비앤비, 내 ‘시간과 재능’을 공유하는 단기 아르바이트 중개 서비스 태스크래빗, 주차장에서 놀고 있는 차량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우버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이는 대여나 심부름센터와 무엇이 다를까. 대여 서비스는 중간 사업자가 필요한 물건을 구비해 놓고 대여료를 받는다. 대여 가격을 결정하는 사람도 사업자이고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도 사업자다. 그러나 공유경제 모델은 소비자들이 직접 자신의 소유를 나누며 콘텐츠를 늘려 간다. 그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가치를 누릴 수 있다. 말하자면 한국의 전통적인 품앗이나 2000년대 초반 유행한 아나바다 운동 역시 공유경제의 뿌리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최근의 공유경제는 단순히 절약의 미덕을 강조하는 사회운동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공유경제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2008년이다. 로렌스 레식과 요차이 벤클러 하버드 법대 교수는 기존의 상업 경제와 구분 지어 위키피디아, P2P처럼 소유하지 않고 협업을 통해 서로 공유하는 인터넷 현상을 이 단어로 지칭했다. 그러던 것이 2010년에 들어와 ‘위 제너레이션’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 ‘메시’의 저자 리사 갠스키 등에 의해 그 의미가 오프라인까지 확장됐다. 개인의 재화를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이를 통한 새로운 사업 모델도 급속히 진화하고 있다.

에어비앤비가 대표적이다. 세계 190개국 3만4000여 개 도시에 60만 개 이상의 숙소를 공유하고 있는 이 업체는 창업 6년 만에 기업 가치 평가액이 100억 달러(약 11조 원)에 이르렀다. 2012년 25억 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2년 만에 4배 가까이 불어났다. 세계 최대 호텔 기업인 힐튼(기업 가치 219억 달러), 메리어트(159억 달러)와 어깨를 나란히 해도 손색없는 규모다. 머지않아 에어비앤비가 이들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 호텔 업체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 전문 연구 기관 메솔루션에 따르면 2013년 세계 공유경제 규모는 51억 달러(약 5조 원)·2010년 8억5000만 달러, 2011년 14억7000만 달러, 2012년 27억 달러 규모임을 감안하면 연평균 80% 이상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공유경제가 이처럼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정보기술(IT)의 발전 외에도 경제적·사회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믿음의 진화’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그 이유를 분석했는데, 가장 먼저 ‘중산층의 부진’을 들었다. 기술과 세계화가 중간급 기술이 필요한 직업군의 고용 기회를 크게 감소시켰고 그에 따라 소득 역시 감소했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소득원이 필요해졌고 빈 방을 빌려주거나 다른 사람의 심부름을 대신해 줌으로써 그 대안을 찾은 셈이다. 성낙환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의 분석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한다. 그는 “에어비앤비만 보더라도 여행객은 보다 싼값에 숙식을 해결하고 집주인은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라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경제성장이 정체되면서 소비 비용을 줄이거나 추가 소득원을 마련하려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소셜 미디어 시대의 ‘사회적 신뢰’에 대한 변화 역시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원시 경제에서는 신뢰가 얼굴을 맞대고 만들어졌다면, 대량생산 경제에서는 크고 안정적인 기업 브랜드로부터 신뢰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제는 소비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새로운 신뢰’가 작용한다”고 밝혔다. 모르는 이에게 내 집을 공개하거나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낯선 이와 내 물건을 나눠 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답이다.


국가·도시마다 대응 방식 제각각
실제로 2011년 에어비앤비의 신뢰에 치명타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1주일간의 해외 출장 동안 빈집을 내놓은 미국의 한 여성이 집 안의 물건을 도둑맞은 것이다. 당시 에어비앤비는 40여 개의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 핵심이 바로 ‘평판 시스템’이었다. 예컨대 페이스북에 믿을 만하다는 추천을 받는 기능을 만들어 놓고 이 추천 수를 참고해 거래를 결정하도록 한 방법이다. 협력적 소비를 주창한 레이츠 보츠먼은 “신뢰 같은 평판 자본(Reputation Capital)이야말로 공유경제의 화폐”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유경제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존 산업 분야는 물론 정부 규제 등 낡은 제도와도 충돌을 빚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간 거래가 늘어나면서 산업 가치 사슬이 파괴되고 기존 전문 서비스 업체나 유통업체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우버 논란은 이미 프랑스·영국 등에서는 택시 운전사들의 대규모 파업 사태로 이어지며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택시 운전사들은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자신들은 택시 면허를 받기 위해 돈을 지불했는데, 우버는 면허 없이 수익을 얻는 영업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불공정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한 각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입장 역시 제각각이다. 미국 내에서도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우버 영업을 승인했지만 버지니아 주에서는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우버를 이용해 택시 영업을 하면 1만 유로의 벌금을 내도록 규제하고 있다.

에어비앤비나 태스크래빗도 마찬가지다. 기존 호텔 운영 업체들은 에어비앤비가 사실상 숙박 업체의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방 규정 등의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세금 또한 내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실제 에어비앤비는 2013년 10월 뉴욕시로부터 영업 허가 없이 숙박업을 운영했다는 혐의로 탈세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전문 임대 사업자가 에어비앤비를 통해 임대 사업을 운영하며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는 신고에 따른 것이다. 태스크래빗 역시 기존 일용직과 기능직군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성낙환 책임연구원은 “공유경제를 두고 기대보다 낮은 품질에 실망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있고 경기 침체에 따른 일시적 유행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제기되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기존의 제도나 서비스들이 해결해 주지 못했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그 효용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아직은 명확한 관리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기존 시스템과의 마찰이 불가피한 게 사실”이라며 “점차 소비자들의 사용 경험이 축적되고 관련 제도가 보완되면서 초연결 시대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